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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Soo Kim Jan 20. 2018

#5. 긴 길의 끝에 만난 고대도시

네 번째 정거장, 페루 아구아스 깔리엔테스(Aguas Calientes)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녘, 여전히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켜 짐을 챙겼다. 앞으로 3일간, 내게 필요한 짐과 그렇지 않은 짐을 나누고, 어떤 고난도 감수하겠다는 굳은 마음까지 챙겼다. 어색한 여행동반자들과 눈맞춤으로 인사를 대신한 채 우리를 실은 새하얀 콜렉티보의 네 바퀴는 마추픽추로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향하는 길1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향하는 길2


언덕길을 오르며 내려다 보이는 쿠스코 시내는 처음보는 도시처럼 생경하다. 저 도시를 활개치던 나는 꿈 속을 헤맨건가 싶다가 창 밖의 아름다운 시골 풍경에 다시 정신을 빼앗겼다. '이런 길이라면 가볼만 하겠는데?'라는 생각도 잠시, 건조하고 삭막한 길, 길, 그리고 또 길이 나왔다. 말이 길이지 길게 이어진 비포장 도로는 나를 샌드백처럼 이리저리 흔들어댔고, 낭떠러지 절벽을 외줄타기 하듯 달리기도 했다. 마치 콜렉티보 앞 범버에 불도저를 달아 없는 길을 만들며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콜렉티보에 함께 탄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세상 저 구석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나를 팔아버리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지난한 길을 달린다.



3시간여 달렸을까, 휴게소에 들러 겨우 한 숨 돌린다. 콜렉티보에서 사람들이 내릴 때 마다 험난한 길을 함께하는 동지란 생각에 친근감이 급상승한다. 화장실도 무료로 이용하고 좋아진 기분으로 산장을 둘러보는 그 때, 저 쪽에서 기차 한 대가 기적을 울리며 달려간다. "비켜, 아무도 내 길을 막을 수 없어!"라고 말하듯 앞만 바라보고 달리는 기차엔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이라는 이름이 당당히 적혀 있다. 마추픽추를 찾아낸 바로 그 사람, 하이럼 빙엄. 그의 이름을 박제한 이 기차는 마추픽추로 가는 여러 방법 중 가장 럭셔리한 여행 방법이다. 6-7시간 콜렉티보를 타고 힘겹게 도착하는 나의 여행이 가장 저렴한 여행이라면, 하이럼 빙엄을 탄 사람들은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식사와 음료를 2시간 정도 즐기면서 낭만적인 여행을 한다. 한없는 부러움으로 기차의 꽁무니를 뒤쫓다 다시 콜렉티보에 올라탔다.


하이드로일렉트릭 기차역


그렇게 한 번의 휴게소를 더 들른뒤, 콜렉티보의 종착지인 하이드로일렉트릭Hydroelectric에 도착했다. 누군가에겐 마추픽추 여행의 시작점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마추픽추 여행의 종착지인 만큼 다양한 얼굴의 여행자들이 뒤섞여 있다. 저렴한 여행을 선택한 나는 이 곳에서도 기차를 뒤로 하고 철길을 따라 2시간 정도 걸어야 한다. 그나마 조금 위로가 되는건 이 길을 걷는 사람이 나 뿐이 아니라는 것. 금새 숨을 헐떡이겠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마음을 품고 걷기 시작했다.



불과 몇 분 만에 사람들 사이의 말은 줄어 들고, 우르밤바강Urubamba River의 세찬 물소리만이 귓 전에 가득하다. 다들 그래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그냥 걷는다. 



그래도 언제나 끝은 있는 법, 휘어진 길 끝으로 건물 모퉁이가 보이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어렴풋이 들려온다. 바로 이곳이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 진짜 마추픽추로의 여정이 시작되는 곳이다. 지친 몸과 마음이 의지할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도 있었겠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산 아래 작은 마을은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매력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미리 숙소를 예약했던터라 빨리 샤워하고 쉬어야겠다는 단꿈에 빠진 것도 잠시, 예약했던 숙소에 문제가 생겨 다시 나그네의 신세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골목을 오가며 다시 찾은 숙소는 지친 마음을 위로하듯 더운 물을 내어주었고,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모든 상점들이 촛불 하나에 의지해 있던 그 때에도 썩 밝진 않았지만 스위치 하나로 켤 수 있는 등불도 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감사와 위로가 되었다. 

조촐한 저녁식사를 마친 후 버스티켓을 구입하고 진짜 마추픽추를 위해 일찌감치 하루를 접는다. 


곧 만나자, 마추픽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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