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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Soo Kim Jun 01. 2017

#3. 멈추며 나아가는 잉카의 옛 수도

세 번째 정거장, 페루 쿠스코(Cusco)

아르마스 광장


이카Ica에서 17시간을 달려 이름마저 찬란한 쿠스코Cusco에 도착했다. 옛 잉카인들이 '세계의 배꼽'이라 칭했다는 쿠스코는 성스러운 느낌이 여전히 남아있다. 캠핑카도 아닌 버스를 타고, 고작 1번의 휴게소를 드른 것 치곤 몸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구시가지까지 가기 위해선 놀라운 흥정 기술을 사용하여 택시를 타야했고, 몇 일간의 편안한 잠자리를 책임져 줄 숙소도 탐색해야 했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쿠스코를 내리쬐는 태양은 야속할 만큼 뜨거웠다. 



가까스로 구시가지에 도착해 숙소까지 잡은 우리 일행은 조금 이른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고, 숙고 끝에 쿠스코에서 유명하다는 한식당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몇 m 거리밖에 되지 않았지만 급격하게 쏟아지는 피로에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고, 눈꺼플도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가방을 들고 쿠스코의 고갯마루를 오르락 내리락 했으니 마지막 남아있는 힘도 모두 소진되었으리라 생각하며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음식 냄새가 코 끝을 스쳐갔고, 순식간에 긴장이 확~ 풀리면서 다리까지 떨리기 시작했다. 한식을 선택한 건 참 잘한 일이라며 입을 모아 이야기한 뒤 정신없이 그릇을 비워냈다. 쿠스코에서의 첫 날, 이렇게 페루가 아닌 한국을 만났다.


액자 속의 그 도시

쿠스코 대성당
라 콤파냐 데 헤수스 성당


호스텔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으로 향했다. 파란 하늘은 어제보다 더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고,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붉은 테라코타 지붕은 햇살을 받아 영롱한 빛을 뿜어낸다.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건 쿠스코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2개의 성당이다. 

건물 형태, 색상 여러모로 비슷한 모양을 한 두 성당은 광장 중앙을 응시하며 무게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어디 비슷한게 이것 뿐일까. 기나긴 항해 끝에 페루에 당도한 피사로Francisco Pizarro는 손쉽게 쿠스코를 점령한 뒤 잉카의 신전과 왕궁을 그들의 발 아래 두려했다. 그래서 위라코차Wiracocha신전이 있던 자리엔 쿠스코 대성당Cusco Cathedral을, 우아이나 카팍Huayna Capac의 궁전이 있던 자리엔 라 콤파냐 데 헤수스 성당Iglesia De La Compania De Jesus을 세웠고, 현재 많은 페루인들은 정복자가 전해준 종교 가톨릭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쿠스코 구시가지에서 성당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옛것과 새것의 공존

스페인 풍의 건물


피사로에게 점령된 쿠스코는 스페인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기 시작했다. 건물은 스페인 풍으로 다시 지어졌고, 그들의 생활양식도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몇 일 머물렀다 떠나가는 여행자가 이 모든 것을 담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지금 여기에서의 느낌에 충실하는게 내 몫인 듯 하다.


쿠스코 스타벅스
스타벅스에서 바라본 아르마스 광장


쿠스코를 본 어떤 사람은 내게 "쿠스코는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 했다. '세상에 아름답고 낭만적인 곳이 얼마나 많은데...' 그저 한 여행자의 추억앓이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쿠스코의 한 중앙에 서 있으니 그의 말에 70%는 동의할 수 있을 듯 하다. 3-4걸음만 걸어도 숨이 멎을 듯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니 '정말 숨이 멈춰버리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쿠스코는 너무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느끼기도 전에 온 몸으로 전해지는 '고산병'의 징조는 '아름다움' 보다 '두려움'을 먼저 선물했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쿠스코의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선 한 동안 3보 1멈춤이라는 페이스 조절이 필요했다.


쿠스코 골목길
옛벽과 새벽으로 보이는 돌담


아르마스광장을 중심에 두고 거미줄 형태로 뻗어나간 골목길에선 쿠스코의 옛 모습이 남아있어 또 다른 매력을 만나게 된다. 잉카제국의 대표 건축양식이었던 돌벽은 지금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비롭게 끼워맞춰진 돌벽은 막강한 스페인도 어쩔 수 없었는지 돌벽 위로 그들의 건물을 쌓아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 스페인이 남긴 건물은 찾아보기 힘들단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던 지진이 잉카의 흔적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진정한 승리자는 잉카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12각돌을 찾아가는 길
12각돌


웅성웅성웅성~ 많은 골목길을 헤매고 난 뒤에야 그 유명하다는 12각돌을 찾았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부터 여러 사람에게 12각돌의 위치를 물었건만 모두들 다른 곳을 가리켰다. 그 중 몇 몇은 12각돌 자체를 모른다고 했다. '이것 또한 우리에게만 유명했던 걸까?'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미리 도착한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 안도한다. 잉카의 제사장으로 분장한 한 아저씨가 12각돌을 지키고 서 있으면서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 '조심해', '건드리지마'라며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자는 관광객들과 기념촬영을 하기도 한다. 


쿠스코 기념품점


12각돌이 있는 골목은 돌벽 외에도 볼거리가 가득한 기념품 샵이 쭉~ 이어지는데 이 중에는 '꽃보다 청춘'에서 방문했다고 한국어로 광고하는 곳도 있다. 누가 무엇을 사갔는지 친절하게 적어두고, 한국인이 지나칠 때면 한국어로 호객행위도 한다. 매스컴의 영향력은 실로 놀랍다.



쿠스코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관광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 기념품을 만들거나 판매하는 사람, 전통 복장을 하고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 등등... 그들이 사는 땅은 척박하고, 주어진 조건 또한 편한게 없으니 관광산업은 상대적으로 쉽게 경제적 부를 가져다 주었으리라. 하지만 이젠 그 마저도 쉽지 않은 듯 하다. 관광객들은 조금 더 까다로워져 입맛을 맞추기가 쉽지 않고, 한층 엄격해진 도시관리로 경찰관들이 오갈 때마다 짐을 싸서 자리를 옮겨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해가 지면 더욱 빛나는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에서 바라본 산 크리스토발 성당
산 크리스토발 성당에서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


쿠스코의 추억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 줄 산 크리스토발San Cristobal 성당으로 향했다. 평평한 광장에서 조차 한 발 내딪는 것이 힘든 이곳에서 언덕 위로 올라간다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그냥 포기해버리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다행히 천천히, 쉬엄쉬엄 올라간 그 곳에서 바라본 쿠스코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여느 야경 포인트처럼 지리멸렬한 자리 싸움을 하지않아도 돼 더 좋다.



'이 장엄한 풍경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일까'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벅차오르는 듯 하면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느낌, 그냥 온전히 담아두는 수 밖에는 방법이 없다. 살다보면 오늘을 떠올릴 날이 있을 것이고, 그렇게 추억을 되새기다 보면 그 느낌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릴 날도 있겠지. 다시 쿠스코에 오게 된다면 다시 이 자리에 서서 물어봐야 겠다. 나에게, 혹은 이 도시에.



오렌지 빛으로 휘감긴 골목길은 대낮의 그것과는 다른 멋이 있다. 도시의 뒤안길에서 잠시 멈춰서면 켜켜이 내려앉은 시간의 내음이 그윽하게 다가온다. 그러니 어찌 멈춰서지 않으리오.


아르마스 광장의 여행자들

다시 광장으로...

오래된 도시는 젊은이들의 차지였다. 여러 갈래로 뻗어나온 연주와 노래가 묘하게 어우러지고 도시의 분위기는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오래 전 잉카인들이 터전을 닦고, 스페인의 정복자가 스쳐지나간 이 자리에 페루인들과 각국의 여행자들은 서로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어우러진다. 쿠스코에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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