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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Soo Kim Mar 20. 2017

#1. 일단 떠나보자, 남미여행!

첫 번째 정거장, 페루 리마


주문을 걸다!


세계일주를 꿈꾸는 것이 더 이상 황당한 일이 아닌 요즘이라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번엔 정말 멋진 여행을 떠나보자!'라고 생각하다가도 경제적 여건, 시간적 여건, 상황적 여건...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다 보면 결국 제일 먼저 포기하게 되는 것이 여행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작한 나만의 방법이 있다. 바로 주문을 거는 것이다.

"간절히 원하면 꼭 이루어진다."라는 말처럼 가고 싶은 여행지가 생겼을 때, 끊임없이 되뇌다 보면 언젠가는 꼭 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온 마음을 그곳에 집중한다. 때론 꿈꾸는 여행지 사진으로 가득한 다이어리로 1년을 채우기도 하고, 때론 그곳에 가게 된다면 무엇을 할지 목록을 적어보기도 한다. 또 이미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실제로 갈 수 있게 된다면 더 없는 행복일 테고, 그렇지 않다 해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즐거운 시간이 되기 때문에 나에겐 최고의 위로이고, 최고의 준비다.



이런 내게 꿈꾸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지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남아메리카 대륙이었다. '여행의 끝판왕', '여행의 꽃', '미지의 세계' 등 다양한 수식어로 여행자들을 유혹하지만 쉽사리 응답할 수 없는 곳! 그래서인지 남미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정말 갈 수 있을까?'가 따라붙었다. 그런데 정말 세상 일은 알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남미를 가야겠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순식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가겠다는 생각보다 '이제 그곳을 꿈꿀 용기 정도는 생겼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결국 나의 주문은 "남미여행"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남미로 떠났다.




45ℓ 배낭에 무모함 한 가득


"전 남미여행을 위해 2년을 준비했어요."

"1년간 스페인어 강좌를 수강했구요. 남미여행에 대한 책을 대부분 다 읽었어요."

"전 남미여행 준비모임에 6개월 동안 참여했어요."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살사댄스도 배웠어요."


그렇다. 남미여행은 그야말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곳이다. 여행의 시작 지점과 끝 지점을 정해야 하고, 정확한  루트를 파악한 후 대략적인 여행기간을 가늠해야 한다. 스쳐가도 괜찮을 곳과 시간을 두고 둘러봐야 할 곳을 나누고, 나라마다 요구하는 각기 다른 서류들을 체크해야 한다. 스페인어 강좌까지는 아니어도 필수 스페인어도 몇 가지 외워야 하고, 저렴하면서도 만족도 높은 숙소와 맛집을 찾아두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17,840,000㎢에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13개의 나라가 모인 대륙을 여행한다면 이 정도의 수고쯤이야 기꺼이 감수해야겠지만 사실 그러지 못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앞세웠지만 귀찮음이 가장 컸고, 몇 사람의 여행기를 통해 거의 대부분이 비슷한 루트와 방식으로 여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왠지 현지에서도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거기다 '여권'과 '지갑'만 들고 떠나는 여행을 한번 해보라는 지인의 말 한마디가 나를 자극했다.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그럴 수야 없고, 남미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만 한채 무작정 공항으로 향했다.


남미여행 코스(리마 in - 산티아고 out)


일찌감치 도착한 공항에서 발권을 마치고 출국장으로 향하려는 찰나, 여행자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평소에는 '조금 조심하고 말지 뭐' 했을 테지만 쿠바 입국을 위해서는 여행자보험이 필수요건이라 없어서는 안 될 서류였기에 공항에 있는 여행자 보험센터로 향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내게 들려왔다.


"입국하시는 국가 중 쿠바가 있으신가요? 쿠바는 저희 보험사와 협약 체결이 이루어지지 않아 쿠바를 방문할 경우 여행자보험 가입이 불가능하십니다."

"네? 가입이 안된다구요?" 

"네, 그렇습니다. 저희 보험사뿐만 아니라 현재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그럴 거예요."


주위를 둘러보니 공항에 있는 보험회사 중 반쯤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고, 다른 곳들도 문을 닫기 위한 준비를 하는 듯 보였다. 무엇보다 다른 곳에서도 가입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 너무나 절망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간절한 곳을 꼽으라면 두 말없이 '쿠바'라고 할 정도인데 서류 부족으로 입국 거부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머릿 속이 하얘졌다. 순간 내 여행 준비가 얼마나 어이없었는지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숙소는 도착 당일 하룻밤밖에 예약하지 않았고, 볼리비아 비자 신청도 안했고, 쿠바 비자(투어리스트 카드)도 구입하지 않았고, 심지어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방법 조차 찾아보지 않았다. 그저 45ℓ짜리 배낭 겸 캐리어에 옷을 비롯한 일상용품 몇 가지, 비상약품, 시간 때우기용 E-book 몇 권, 바우처(마추픽추&와이나픽추 입장권, 구간 버스표)가 전부였으니 40일 남미여행치곤 참 무모하다 싶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나. 어쩔 수 없으니 일단 가보자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올라탔다.


KLM 인천-암스테르담-리마행 비행기


경계심이 미안함으로 바뀌는 순간, 여행은 시작된다.


먹고 자고, 자고 먹고를 반복하며 암스테르담 공항 8시간 대기를 포함해 페루 리마까지 32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여전히 몽롱한 정신을 채근하며 지금부터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되뇌이며 공항을 빠져나왔다. 짙푸른 어둠이 내려앉은 공항 입구는 시장터 마냥 시끌벅적 어수선했다. 이내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묵주를 목에 건 아저씨가 다가와 먼저 흥정을 시작했다. 자고로 흥정이란 먼저 시작하는 사람이 굽힐 수 밖에 없다는 개똥철학으로 무심한 척 있다가 밀당을 시작했다. 

'이 시각에 시내까지 가려면 택시를 타는 것이 가장 좋고, 그린택시가 가장 안전하고, 자신은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택시기사이고...' 대사를 외운 배우처럼 매끄럽게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다른 한 귀로 자연스럽게 흘러나갔고 흥정방법에 대해 써놓은 인터넷 글만 머릿 속에서 맴돌았다. 보통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40-60솔 정도라 하니 중간정도만 되도 좋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택시기사는 처음부터 60솔을 불렀고, 그 가격에서 한 푼도 깎아줄 수 없다고 우겼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마음 한켠에선 그냥 탈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왠지 처음부터 너무 쉽게 타협해선 안된다는 생각에 몇 사람과 더 이야기를 나눴다. 설상가상... 80솔까지 올라갔다. 이 정도 되면 아무 쓸데없는 개똥철학은 버려버리고, 내가 갈 길을 찾아야 한다. 공항에서 환전한 60솔이 전재산인 나는 겁도 없이 60솔에 OK를 하고 택시로 향했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일반 주차장에 택시라는 표시도 없는 차에 타라는 것이다. 정말 택시가 맞는지 몇 번을 다시 확인하고, 면허증까지 몇 번을 주고받은 끝에 출발할 수 있었다. 가격 흥정에만 신경 쓴 탓에 페루에선 일반 승용차로 택시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동하는 중에도 혹시나 아무 데나 가서 내려놓는게 아닌가 싶어 GPS를 켜고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앳된 택시기사는 숙소 앞에 도착해 호스텔 이름을 다시 한번 확인한 뒤 가방과 나를 내려주었다. 잘 가라며 인사하고 숙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한 후 택시는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갑자기 미안함이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워낙 치안과 안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탓에 무턱대고 사람을 의심했던 내가 민망하고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겠지만 그렇다고 경계심이 내 여행을 좌지우지하게 놔둬선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을 한 켠에 각인시키며 있는 그대로의 남미를 느끼기 위해 여행의 마음을 다시 세팅한다.


   ▶ 남미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 https://moreworld.kr/1064


 * 긴장한 탓에 공항에선 사진이 없네요. 다음 여행기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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