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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Soo Kim Oct 17. 2023

#8. 국경, 그 경계 너머

잠시 쉬어가는 곳, 출입국 관리사무소


걸어서 국경 넘기


Khasani: 볼리비아 - 페루 국경


다른 나라로의 여행, 그 첫 관문은 국경을 넘는 일이겠지.

긴장과 불안을 감내하며 나를 샅샅이 훑고 지나가는 따가운 눈길을 참아내면 잠시 후 찾아오는 흥분과 설렘.

그 묘한 자극에 이끌려 자꾸만 어디론가 떠날 생각을 해.



38일간의 남아메리카 여행동안 12번의 경계를 넘나들었어.

때론 엄격하게, 때론 스쳐지나가는 듯, 또 어떤 때엔 흔적도 없이.

그럴 때면 주도권은 늘 그들에게 있어.

이 순간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세상에 없는 고분고분한 어린아이가 되어야만 해.


까사니 마을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넘어가는 경계에는 '까사니'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어.

페루 까사니, 볼리비아 까사니. 

나라는 다른데 도시 이름이 똑같다 보니 이곳이 국경인지, 도시 경계인지 여행자로선 가늠하기 힘들지.

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달라지는 화폐, 그것이 국경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

돈의 위용을 새삼 느끼게 되지.


볼리비아 입국 관리소


페루 - 볼리비아 국경의 유일한 규칙, 

"도보로 국경을 건널 것!"


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규칙이 바다와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내 나라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일이기에 상상보다 짜릿함을 줘. 두 발로 국경을 넘는다?! 상상해 본적 있니?

내 경험과 가장 이질적인 풍경이었어.


그렇게 흥분된 마음을 안고 남미의 많은 나라들 중 유일하게 비자를 요구했던 나라 볼리비아에 무사히 도착했어.


광야 오두막집의 위력

볼리비아 출국 사무소


IT 발달로 여행 정보 얻기가 많이 수월해진 반면 여행자에겐 한층 더 고도화된 기술을 요구하지.

바로 '팩트 체크'

분명 팩트는 하나인데 그 주변을 맴도는 수많은 정보 찌꺼기들.

진흙 속에서 진주를 가려내듯 주의집중, 크로스 체크, 더블 체크...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 어디에나 헛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잊지 말아야 해!


Portezuelo del Cajon: 칠레 - 볼리비아 국경


"여권 보여주세요."

"그리고 출국세 15불 내세요"

"..."


"출국세 15불 내세요!"

"볼리비아엔 공식적인 출국세가 없다고 들었어요!"

"안내면 심사할 수 없어요!"


세상 길었던 몇 초간의 실랑이 끝에 내 여권은 그의 손을 벗어났어.

그리고는 

"불합격"


이 건조한 사막에 나는 여권과 함께 버려진 셈이지.

그러니 결국 나는 그들에게 고분고분해질 수 밖에 없었어.

긴 줄 끝에서 리셋, 다음 번엔 이렇게 말했지.


"여권과 출국세 15불 여기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여행자에게 완전한 팩트체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그러고 보니 볼리비아 - 칠레 국경에서 또 한번의 헤프닝이 있었어.

소금 사막을 떠나 아타카마 사막으로 가기 위해 볼리비아 현지 여행사를 통해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했지.

이동 교통수단, 식사, 잠자리, 가이드까지 모두 포함한 패키지로 예약했으니 걱정할 건 아무 것도 없었어.

하.지.만.

해발 4,500m 고도 위 볼리비아-칠레 경계에 우리를 내려놓은 가이드가 이렇게 말했어.

"여기에서 칠레버스로 옮겨 타. 비용은 너희가 내야 해!"

이건 무슨 소리지?


"우리는 모든 비용을 이미 지불했어. 그러니 칠레 버스비도 너희가 책임져야 해."

"난 그런 이야기 들은 적 없어."

"아니, 분명 사장님이 칠레 아타카마까지 가는 버스도 포함이라 하셨어."

"놉.... ... 그럼 잠시 확인해볼게."


그리고 잠시 후 하얀 콜렉티보가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볼리비아 쪽으로 달려가는게 아니겠어.

그 순간 우유니에서 만난 우리 일행은 대동단결하여 콜렉티보를 향해 내달렸지.

서 있는 것도 힘들었던 4,500m 고지에서 있는 힘을 다해 달려 콜렉티보를 붙잡았어. 누군가는 콜렉티보의 앞을 막아서고, 나는 오른쪽, 또 하나는 왼쪽 문을 붙잡고 움직이는 차에 매달렸어. 

국경에 있던 모든 시선이 우리를 향했지만 부끄러움이고 뭐고 우리의 권리를 사수해야 했어.


결국 그는 칠레행 버스비를 치르고 웃는 얼굴로 우리와 인사를 나누고 돌아갔어.

기분 나쁘지 않냐고?

여행을 하다보면 이런 일들은 숱하게 일어나. 그 때마다 내 기분을 망칠 순 없잖아?

오히려 흥분해서 달려간 내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도 있는걸.


순간순간 부딪히는 상황에서 내 감정을 지키는 일!

그거 하나면 언제든 행복한 여행을 할 수 있어.



4,300km의 경계 어딘가


안데스 산맥과 드넓게 펼쳐진 포토밭


여행 중 만난 수많은 경계 중 가장 다이나믹한 곳은 칠레였어.

4,300km. 지구에서 남북으로 가장 긴 국경을 가진 나라.

북쪽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을, 남쪽으로는 겨울왕국을 지척에 두고

매 순간 4계절을 모두 가진 나라, 칠레.


Paso Internacional los libertadores: 칠레 - 아르헨티나 국경


아르헨티나를 떠난 버스는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 한참만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국경지대에 도착했어.

'여기에서 길을 잃으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광활하고 건조한 안데스 속에서 티끌만한 점으로 남을 나를 생각하니 아찔해졌어.

티끌의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부산하게 살았던 걸까.


칠레 입국 관리소


안데스를 사이에 두고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에선 약간의 운이 필요하기도 해.

눈이 오거나 돌이 굴러 떨어지면 그대로 '멈춤'

그야말로 이 땅이 나를 받아주기를 염원하며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게지.


음악을 듣기도 하고

다운받아 놓은 영화를 보기도 하고 

그래도 아직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상상 속의 나와 대화를 시작해.


그 날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Cerro Castillo: 아르헨티나 - 칠레 국경(파타고니아 관문)


북쪽의 땅이 건조하다면 

남쪽으로 이어진 경계는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로 가득차 있지.

파타고니아의 관문인 세로 카스티요Cerro Castillo가 그런 곳이야.


푸른 색의 아르헨티나와 붉은색의 칠레가 만나는 곳.

춥진 않은데 옷깃을 여미게 하고

조금 더 움츠리고, 조금 더 가라앉고

해가 났다가 금새 얼음비가 내리기도 하는 곳


그래서 남쪽에선 혼자보단 함께가 더 좋은 것 같아.


경계 위 경계 없음


Aduana Iguazu 출입국 검문소(아르헨티나)


경계를 넘기에 가장 수월했던 곳은 이과수에 있는 아르헨티나 - 브라질 국경이었어.

정말 이과수 폭포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어.


언어가 다르니 문화도 많이 다를 것이고

브라질의 악명높은 치안을 생각하면

검열수준이 최고일 것 같은데 왠걸...

택시 기사 아저씨를 통해 모든 것이 일사천리.

난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었어.


경계가 무너지며 브라질이 좀더 가까워진 느낌?


국경을 넘듯 내가 가진 편견을 넘어서는 것

오늘을 여행하는 내게 주어진 의무라고 생각해.


Ponte Tancredo Neves: 아르헨티나 - 브라질 국경(이과수 형제애 다리)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서


12번의 경계를 넘으며 국경을 넘는 것에도 어느새 의연해지더라.

어쩌면 경계는 그런 것일지도 몰라.

서로 다른 공기가 만나 조금씩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


다가오는 여행에서 나는 어떤 다름을 만나 내 삶을 채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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