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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모지민 Mar 29. 2023

청담 빌라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살고 있습니다

장흥 유원지로 들어가는 초입에 위치해 있고 근방에는 두리랜드나 장욱진 미술관 등의 유명 명소가 허다합니다

오늘은 혹시라도 탈 서울을 꿈꾸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저희 집 근처에 있는 청담 빌라를 소개할까 합니다

빌라에 대한 소개는 뒷부분에 이어서 늘어놓겠습니다

2021년 이사 올 때만 해도 저희 집 건물만 새로 지어져 있었으나 한국 너무 잘 알지 않습니까

멀쩡한 건물을 뚜드려 부수고 깨서 자고 일어나면 건물 하나가 뚝딱

놀랍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지금 제 집 주위는 셀 수 없이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름도 제 각각 휘황찬란합니다

브라운 힐, 휴가든, 포시즌, 청담빌라 등등

저희 집 왼쪽으로는 두리랜드가 있고 더 가서는 청련사와 권율 장군묘 문화재와 가나 아트센터, 장욱진 미술관등이 있습니다. 앗! 송암 스페이스 센터도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듣기만 해도 매우 흥미진진한 곳으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문화재와 절, 미술관과 스페이스 센터와의 조합이라니 그런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끝도 없이 이어진 길을 차로 달리다 보면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에 꺄아악! 하고 연거푸 비명을 지르게 될 것입니다

북한산에서부터 이어진 산맥의 아름다운 능선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넓디넓은 호수에는 잔잔한 물이 출렁출렁 흐르고 그 호수 위에 떨어진 눈부신 햇빛을 보고 있자면 

너무 눈이 부셔서 가방에 챙겨 온 선글라스를 그 자리에서 찾게 될 것입니다

광활하게 펼쳐진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탄성이 그저 절로 나옵니다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눈부신 장관의 연속입니다

두리랜드는 그 유명한 탈랜트 임채무가 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처음 이사를 와서 작은 방 서재에서 두리랜드 바이킹이 보였습니다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의 신나는 비명 소리가 들리기도 했고요

저는 차를 마시면서 그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을 참 좋아했습니다

이곳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 큰방이든 거실이든 어느 방에서나 산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결정적 이유도 이것입니다

집에서 산을 볼 수 있다니 전에 살던 집에서는 고작해야 옆집의 허물어진 대문이 다였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두리랜드마저도 재개발 난리통을 피해갈순 없었나 봅니다 

현재는 포시즌이라는 4개의 건물이 그 자리에 빼곡히 들어선지라 이제 저희 집에서는 두리랜드 옥상만 간신히 보일뿐 이유 없이 새로 들어선 건물만 보고 지낸 지 오래입니다

집 앞 모텔과 호텔이 팔려서 새로 짓는다는데 만약 그 높다란 건물로 인해 산이 보이는 시야를 가리게 된다면 별안간 날벼락이 아닐수 없겠습니다. 그 흉한 꼴은 정말이지 상상하기도 싫군요

여하튼 저는 더 이상 바이킹이 굴러가는 풍경을 제 집에서는 볼 수 없게 되었다는 말씀이지요

두리랜드는 장사도 안된다는데 마저 없애 버리지 참나 여하튼 그렇습니다

두리랜드를 지나 높은 곳에 자리한 청련사 절에 가서 종종 시간을 보내는데요

참 좋은 게 말이지요 그 큰 법당은 언제든 가도 사람이 없어서 온전히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종교는 없습니다만 부처님 앞에 앉아 있으면 마음 깊은 곳에 내게 강 같은 평화가 찾아오더라고요

앗 이 표현은 기독교 성경에서 나왔던 거 같은데 헷갈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이 없을 때면 자전거를 타고 가 지글지글한 속내를 비우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종종 청소를 하는 보살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시고 행사가 있는 날엔 밥과 떡도 챙겨 주십니다. 이번 신정에는 떡국을 먹고 왔습죠. 맛은 그냥저냥이었습니다

작년 여름에 대대적으로 1년에 한두 번 열리는 큰 행사가 있었는데 그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수많은 불교 신자들로 인파가 붐볐습니다

갈때마다 코빼기도 안 보이던 스님들을 그날 처음 보았습니다. 그날은 특별한 날이라 나오셔야만 했나 봅니다

한여름 그 안에 낑겨 있다가 오도 가도 못하고 바람 한점 없는 습한 날씨에 마스크 안으로 숨이 턱턱 막혀 오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공연에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아니하여 보다 말고 결국 토끼긴 했습니다

한국 무용수들까지 와서 춤을 추는데 저도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절에서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상이 불순하고 뼛속까지 더러운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턱도 없는 일이지요

수 많은 곳에서 공연을 했지만 절 법당 앞에서 한다면 이 또한 역사가 될듯합니다

앗 그러고 보니 해남 미황사에서 영화 모어 촬영을 했군요. 그 장면은 이랑의 신의 놀이 곡에 맞춰 잠시 나옵니다. 절에서 춤 추는 드랙은 제가 최초이지 않을까요. 드론을 날려 촬영 했는데 미황사의 전경을 볼수 있는 명장면이 연출 되었습니다

청련사는 납골당이 있어 매일 상조차가 왔다 갑니다

매일 초상은 나고 엄청난 비즈니스의 세계가 돼버렸죠. 결국 돈 냄새가 풍기는 그런 절입니다

절에 나와 건너편 석현천 계곡에 앉아 물소리를 들으면 마저 정화가 되고 비워짐에서 채워짐으로 이어집니다

어떻습니까, 이 모든 패키지는 무려 '무료'입니다

저희 집 뒤편으로는 90년대 대학생들의 엠티 성지로 들락날락하던 역사 속의 장흥역이 있습니다

폐역이 된 지 오래되었고 현재는 흉흉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버팅기고 있습니다

2024년이면 십수 년 만에 재개를 한다는데 한국 너무 그렇지 않습니까

정치인들은 매번 선거 때마다 공약을 내세우고 목청은 얼마나 큰지 말만 디지버지고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저는 더 이상 그것들의 농간을 믿지 않습니다

장흥역을 지나면 미술가들이 작업할 수 있게 지은 컨테이너로 만든 건물들이 있습니다

파주 헤이리 예술 마을의 작은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요. 건물 이름은 아트 갤러리이고 크게 세 덩어리가 있습니다. 여기는 월세로만 쓸 수 있고 입주한 작가들만 해도 스무 명이 넘는다고 하니 자리를 잘 잡은 셈이지요

외벽에는 피카소나 달리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컬러풀한 색으로 칠해진 이곳이 장흥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건물입니다. 왜냐하면 세련됐으니까요. 서울 한복판에 내다 놔도 뒤지지 않을 건물입니다

그 단지 위로 올라가다 보면 이런저런 공장들이 있고 멀쩡한 산을 깎아 만든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공동묘지 이름은 신세계 수목원입니다

그런 곳이 있는지 내내 모르고 살다가 작년 연말에 만난 이지송 감독님을 알게 되면서 그곳을 가보게 되었습니다. 자전거로 운동을 갈라치면 도로에 쌩쌩 달리는 차들을 피해 자전거 도로가 있는 한적한 곳으로 가기까지 이만저만 피곤한 일이 아닐 수가 없는데요

그래서 이 꼴 저 꼴 보기 싫어 자꾸 운동을 차일피일 미루게 되는데 이 묘지는 그런 걱정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묘지라 새로 묘를 파는 일꾼들이나 묘를 찾는 유가족들 외엔 한산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리하여 운동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써 일주일에 며칠은 꼭 가려고 합니다

묘지는 보통 걸음으로 총 40분 집에서 왔다 갔다 하는 시간까지 다 합쳐 1시간이면 떡을 치고도 남습니다

이지송 감독님을 저는 오라버님으로 칭하는데 요즈음은 오라버님과 일주일에 서너 번은 오릅니다

이 분은 그 옛날 열두 시에 만나요 브라보콘을 만든 한 시대를 풍미한 1세대 cf 감독님이십니다. tmi이지만 전설의 여배우 박정자의 남편이시지요 호호호. 저는 그런 대단한 분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공동묘지를 천천히 기어 올라가면 코가 뻥 뚫리는 경험을 하게 되지요

어떻습니까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해보고 싶지 않습니까. 얼마 안 되는 정상에 오르면 저희 집도 보인답니다. 묘지 위로 산은 이어져 있고 가도 가도 끝이 없지만 저는 무리하지 않고 간단 코스만 왔다 갔다 합니다

묘지를 찾은 조문객들이 놓고 간 형형색색의 꽃들이 이곳의 분위기를 한층 화사하게 해 놓았습니다

참으로 생뚱맞게 브라질 상파울루에서나 볼법한 예수 그리스도 상이 있는데 천주교에서 그 땅을 사 영역표시라나 어쩐다나 참 어지간합니다

묘지 투어를 마치면 오라버님 작업실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기도 합니다

밤에는 그곳에 둥지를 튼 미술작가들과 와인을 마시기도 하고요

저는 밤 9시면 몸져누워야 하는데 매일 이지송 오라버님의 부름으로 요즈음의 생활이 들쑥날쑥입니다

INFJ인 제게는 조금 버거운 일이지요. 여러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걸로 모자라 매번 즉흥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에 당혹감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지송 오라버님은 하필 INFP라서요 그의 즉흥성은 아무도 못 말립니다

J와 P의 만남이라니 그러나 저러나 이지송 오라버님은 요즘 제가 가장 심취해 있는 사람인데 저는 초등학교 이후로 한 사람을 이렇게 열렬히 만나본적이 없습니다

곧 네팔로 트레킹을 가신다는데 2주간 못 만날 것을 생각하니 시원섭섭합니다

쓰잘데기없는 말이 길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청담빌라에 대해서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담빌라 이름만으로도 세련이지 않습니까

청담동에서 눌러 살아갈 수 없는 한을 이곳 장흥에서 풀어보는 것도 대리만족이 될 듯하기도 하고요

세련지게 잘 빠진 30평형이고 방세 화장실 둘 주차는 무조건 가능합니다

이곳 장흥은 주차가 잘된다는 것이 거주자들에겐 꿀인 거 같습니다

서울은 주차가 힘들어서 월주차를 하는 둥 난리를 치더구먼요

특이점이라면 층고가 일반 아파트나 빌라보다 많이 높습니다

제가 이곳으로 올 때 최종적으로 결정한 부분 중 하나도 이것입니다

전에 살던 은평구 역촌동 집은 집도 좁은 데다 천장이 낮아서 사는 동안 제대로 숨을 쉬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게 은근히 높아서 찬장에 그릇 하나 꺼내려면 매번 의자까지 대동시켜 난리 부르스를 쳐야 합니다

물론 키가 190 이상이라면 이것도 문제 될게 없이 거뜬합니다

층고가 답답해서 천장을 때려 부신 가수 김완선네 집 보셨죠? 그건 보통 쉬운 작업이 아닌데요 돈 들여 그런 고단한 짓을 안 해도 되는 집입니다. 손 볼 게 없으니 돈은 확실히 굳은 셈이지요

벽은 하얀 몰딩 처리로 깔끔함이 천장을 찌르고 문 손잡이는 일괄 금장처리 되어 있습니다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오는 중간문과 방마다의 문은 연한 민트 그린색으로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을 인테리어를 살린 신의 한 수가 되겠습니다

금장으로 된 조명과 크고 작은 등 하나하나 여기저기 세련으로 하염없이 덩더쿵 심지어 욕실의 파티션과 거울 프레임 샤워기도 깡그리 금색이랍니다

어떻습니까 당장 이곳으로 이사 오고 싶지 않습니까

물론 제가 사는 집과 청담 빌라는 다르지만 업체가 같은지라 보나마다 별반 다를게 없이 지어졌다는 말씀이지요. 더 세련 됐음 했지 절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청담 빌라니까요

이름만 듣고 찾아왔다가 청담스럽지 않음에 그들의 발걸음이 헛된 실망감을 줄 수는 없겠지요

천편일률적으로 죄다 똑같이 지어진 건물들 지긋지긋하지 않습니까. 적어도 장흥 청담빌라에서는 그 꼴 안보실수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집구석은 모르겠습니다. 가본 적이 없으니까요

셀 수 없이 많은 건물 어떻게 다 가봅니까. 제가 부동산 종사자도 아니고. 개씹이나 덩더쿵 안 봐도 뻔할 텐데 말이지요. 

본론으로 들어가 제가 청담빌라를 소개하는 이유는 지은 지 1,2년이 지났는데도 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분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죠

저희 집과 휴가든 정도를 제외하고는 입주가 30퍼센트 미만입니다 

수십억 쳐들어서 지어 놓고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으니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입니까

속이 터져 사망하기 일보 직전인 건물주가 입주할 사람 알선해 주면 건당 백을 주겠다고 하네요

백만 원이면 프리랜서인 제겐 매우 큰돈입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말이지요

2024년도에는 경외선도 생긴다고 했으니 속는 셈 치고 이사를 오셔도 나쁠 거 같진 않습니다

어차피 폐역에 철로도 있고 해서 언젠가 생기긴 할 겁니다

자가용이 있으면 장흥에 사는 건 개씹이나 껌이지요

저는 이제야 면허를 땄고 머지않아 똥차를 사서 운전 연수를 받아야 하는지라 갈길이 멀지만요. 찬찬히 스텝 바이 스텝으로다가 살아가는 중입니다. 뜬금 천금 없이 뉴키즈 온 더 블록의 스텝 바이 스텝이 듣고 싶네요

그 옛날 99년인가 강남 타워 레코드에 조던 나이트가 와서 이브게니랑 싸인 받으러 간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옛날 사진 좀 찾아봐야겠네요

여하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는 참 살기 좋은 곳입니다

운전도 못하는 제가 대체 무슨 깡으로 대체 무슨 이끌림으로 이곳까지 오게 되어 이렇게나 평화롭고 아름답게 살고 있는지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 서울에서 사는 건 상상도 못 합니다. 그 시장통 속에서 북적거리며 

여기서 지내다가 서울 나가면 숨이 턱턱 막혀 옵니다. 출퇴근 시간에 전철을 타면 아 이것이 지옥이구나 싶고요. 저는 자연에서 개떼를 풀어놓고 흙에서 뒹굴며 사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그 최종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여기 장흥 집을 만난 것이고요

구파발까지 25분 거리이고 사실상 위치 상으로는 서울에서 강동구 가는 거리보다 훨씬 가깝습니다

장흥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북한인데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북한에 발을 디딜 수 있을 겁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통일입니다!!! 하고 싸이렌이 울려 퍼지는 순간 뛰쳐나가면 금방이니까요

강남 사는 것들 보다 최소 한두 시간 이상은 먼저 도착할 수 있습니다

지는 거 싫어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승부욕 상승 시켜 주는 일일 테지요

머지않아 통일이 된다면 저와 함께 손 잡고 끼스럽게 달려가 보시지요

서울 것들은 무조건 in 서울이어야만 하고 서울 벗어나면 무슨 큰일 나는 줄로만 아는데 대체 언제까지 그 숨 막히는 곳에 있을 생각이십니까. 당장 마음을 바로 고쳐 먹으시기 바랍니다

뉴욕에선 뉴저지에서 배를 타고 전철을 타고 기본 두 시간 왔다 갔다 하는데 그런 것에 비하면 장흥에서 서울 접근은 일도 아니지요

사람들은 제게 묻더군요 왜 그런 곳에 사느냐고 그런 데서 어떻게 다니냐고 학을 떼더군요

그럼 매일같이 서울을 나 댕기는 저는 뭡니까. 매일 저와 함께 좁아터진 마을버스를 비집고 타는 사람들은 또 무어란 말입니까

버스 배차 시간이나 좀 늘려 주지 집 앞으로 오는 19번 버스는 하루에 꼴랑 9대이고

집에서 15분 이상 걸어 큰 도로로에서 타는 360번은 35분 간격으로 옵니다

가끔 배차 시간 안 맞으면 그날 일진은 사정없이 사나워집니다

단점이 있다면 이거 하나랄까요. 이 꼴 저 꼴 보기 싫으시면 차를 사면 되는 것이고 여유가 된다면 택시를 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요. 하지만 매우 유감스럽게도 택시 잡기가 매우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이곳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가용으로 이동하기에 양주시에서도 개씹이나 알바가 아닌가 봅니다

아님 죽을 때까지 집을 나서지 않는다면 문제 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죽으면 곧장 바로 청련사에서 장을 치르고 신세계 공동묘지에 묻히면 되는 것이니까요

저는 벌써 이곳 장흥에 온 지도 2년이 되어갑니다. 시간 참 빠르지요

운전도 못하는 제가 처음엔 어찌 살아가나 망막하기도 했습니다만 서울에 살 때 보다 한 시간가량 더 일찍 나가면 되더구먼요. 조금 돌아가고 조금 천천히 살면 되는 것입니다

바르게 빠르게만 살다 가는 정말 빠르게 자빠질 수 있습니다

간혹 집에 돌아올 때 피곤해서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일 땐 구파발에서 택시를 잡아 탔습니다만 이젠 택시비가 상당히 올라 그 짓도 못하게 됐습니다. 택시는 그만 졸업했습지요

이사 오라고 해 놓고 불편함을 늘어놓은 거 같은데 어쨌거나 이건 저의 사정이고 차만 있으면 세상 살기 좋은 곳이랍니다. 믿어 주십시오

남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오는 곳인데 여기 주민들은 허구한 날 장흥 유원지의 아름다움을 맛보며 살아가니깐요

저는 차만 사면 매일 파주 출렁다리까지 드라이브를 갈 생각입니다. 고소 공포증이 심한 저에게 위험천만한 출렁다리를 걸으며 보는 호수의 경관도 일품입니다.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동공도 바운스 바운스

돌아오는 길에 오랑주리 식물카페에서 아아도 마시고요. 

이곳은 규모가 역대급이고 들어서자마자 가득한 녹색 식물들로 어떻게 이런 곳이? 하고 입이 떡 벌어집니다

마치 공룡이 없는 주라기 공원에 와 있는 거 같기도 하고요

정말 차를 사게 된다면 머지않아 제2의 인생이 펼쳐질 것만 같습니다. 두근두근 쿵쿵 하염없이 신명이 납니다

저는 작년에 책을 출간하고 영화까지 개봉하였으니 그것이 제 인생 1막이라고 치자면 2023년은 완연한 인생 2막입니다

작년 파리 한국 영화제로 파리 갔을 때 만난 안은미 현대 무용가 선생님은 

'지민아 너는 이제 산을 하나 더 넘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네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

파리 노천 카페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있던 손이 파르르 떨며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아이쿠야 이제 간신히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나 힘들게 왔는데 또다시 산을 넘으라니

그 분명한 어르신의 지당한 말씀에 철썩 주저앉아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2022년 인생 1막을 찬란하게 마무리하였고 2023년은 신생아로서 0에서 다시 출발합니다

근데 뭔가 예감이 좋습니다. 그 길에는 마침 개나리와 진달래 봄이면 빼놓을 수 없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산에도 들에도 겨울 내내 움츠리고 있던 꽃과 풀잎들이 살아나고 있고요

볕이 좋고 적당한 바람이 하염없이 제게로 불어옵니다. 저는 그 바람에 숨을 쉽니다

저와 함께 출발하실 분들은 당장 백만 원을 챙겨 손을 번쩍 들어주십시오

그저 아름답기만 할 장흥에서의 삶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멈칫할 시간이 없습니다. 다 나가가기 전에 조금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버스 떠나고 손 흔들면 차 안 세워줍니다

그럼 잠시 광고 듣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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