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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모지민 Mar 26. 2023

그저 일과

참으로 요상하다

요즈음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매일 같은 두통과 울렁증이 없다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던 이것들까지 극성을 부렸다면

오늘 아침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눈을 떴을까

이렇게 저렇게 시간은 가고 벌써 10월 2일

오늘의 기상 시간은 8시

어제 9시에 누웠으니 꼬박 11시간을 잔 셈이다

11시간의 숙면이라니 별다른 꿈도 없었고

내겐 흔치 않은 일이라 시계를 보고 그저 놀랐다

모모는 항상 내가 일어날 때까지 침대 한켠에서 기다린다

모모는 밤새 내 숙면을 돕는 수호신!!!

친구가 맡긴 고양이 뽈뽈이는 옷 방에 깔아 놓은 겨울 아투터 위에서 셋방살이를 한다

두 마리의 생존을 확인하고 다용도실에서 감자를 캐고 커피를 내린다

발은 지압패드에 올리고 주먹으로 겨드랑이를 좌우  50회씩 친다

이게 아침에 하면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된다나 어쩐다나 해서

매일 같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나의 아침의 별거 아닌 루틴이다

방마다 놓인 냥이들 물을 갈고 밥통에 먹이를 확인하고

커피가 다 내려지면 커피를 들고 기민하게 컴퓨터에 앉는다

이런저런 기사를 확인하고 달력에 어제 먹은 약과 현재의 컨디션 상태를 적는다

양호할 때는 동그라미 그렇지 않을 땐 사정없이 X를 친다

커피가 위와 장으로 들어가면 어김없이 신호가 오면 변기에 앉는다

짧은 용변 후 샤워기로 항문을 처리하고 다시 컴퓨터에 사뿐히 앉는다

주로 들어가는 사이트는 쇼핑몰

사도 사도 살게 또 생긴다는 게 그저 놀랍다

카드빚 통장의 잔고를 살펴야 할 때이다

곧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 닥치는 겨울이 오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은 또 얼마나 추울까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해였으니 그 열을 식히는 데는 더 낮은 온도가 나를 기다릴 것이다

주로 9시 언저리에 짐볼로 십여 분간 스트레칭을 한다

몸은 에구구구 소리를 내며 길게 내뱉는 숨에 다소곳이 누그러진다

아침엔 몇몇 사람들에게 활기찬 하루 보내세요 라는 이모티콘을 보낸다

대부분은 답이 없고 그나마 깨어있는 자들이 날 반긴다

일부는 나와 시간이 반대인 해외에 살거나 아님 나처럼 아침형 종달새들

오늘은 오래간만에 이대 수경화실에서 누드모델일을 하고 서울패션위크 일로 이상봉 디자이너와 미팅이 있어 나로서는 절대 갈 일 없는 청담동을 들려야 한다

올해 누드모델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한 달 내내 아무리 많은 수업을 나가도 통장에 들어오는 금액은 50이 채 안된다

큰 공연을 하면 수백을 받는 내가 물론 그런 공연들은 자주 있는 게 아니기에

꾸준한 일이 필요해서 누드모델일을 붙잡고 있었지만

그것도 벌써 어찌어찌 4년은 되어 가고 누드모델일은 미래가 없다는 결론이 났다

왔다 갔다 길에서 시간을 버리고 수업 두 시간에서 네 시간 혹은 온 종일 하다 보면 벗은 채로 하루가 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다 벗어 재껴 진 처량한 허물만이 나를 애처롭게 감싸고 있다

살갗이 쓸리고 마음은 아리고 처음 누드모델 일에서 느꼈던 뭔가 내 안이 채워지는 감정과는 오래전 이별하였다

지난번 우리 만화연대 수업에선 한없이 비좁은 더블 침대 사이즈만 한 무대에서

마네킨처럼 퍼포먼스를 취해야 하는데 영락없이 현진영의 슬픈 마네킹!!! 그저 죽고만 싶었다

어떤 무대는 극도로 화려하고 어떤 무대는 이태원 쇼처럼 시궁창이다

나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참 그러하다!!!

사비를 털어서라도 가려고 했던 파리의 사악한 비행기 가격에 다시 한번 좌절

파리 프로그래머에게 일부 지원이 가능하냐고 구차하게 부탁을 했지만

파리 쪽에 물어보고 알려 준다고 했는데 이 또한 가능성이 없다

가능성이 없는 일에 왜 이렇게 진을 빼고 속을 새까맣게 태워가면서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기다리는 일은 너무 하염없어서 눈물만 난다

일기를 쓰는 와중에 광고로 올라온 전에 찜해 둔 신발을 보러 갔는데 내가 원하는 칼러 사이즈는 품절이란다

오! 마이갓!!! 절망으로 무릎을 쳤다

무조건 보일 때 사야 하거늘 한발 미루다 된통 품절 귀싸대기를 맞으니 잠이 다 깬다

어젠 파리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파리 할아버지와 간신히 연락이 닿았다

그 옛날 할아버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거짓말처럼 파리행 비행기를 보내주는 기적이 찾아오면

깨 벗고 나가 일영리 계곡에서 미친년처럼 춤을 추겠다

날씨가 제법 추워져서 고추는 오그라 들겠지만 나는 기꺼이!!! 그리고 마땅히!!!

점쟁이한테라도 찾아가서 묻고 싶다

내가 파리를 갈 수 있소 없소?

힌트가 있는 삶을 산다면 얼마나 편할까

도움이 안 되는 일들은 깡그리 피해 가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일들에서만 애씀이 얼마나 옹골진 삶인가

예지력을 조금 발휘해 본다면 파리행은 먹구름이다

말이 씨가 되고 역시나 나는 변치 않는 패스미스트이다

며칠 전 절에 가서 파리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내 피 같은 화폐를 불전함에 넣고 기도 했건만

부처님은 내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의지하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저 바빠서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어젠 자카르타에 사는 J님과 통화를 하면서 끝끝내 울고 말았다

나는 파리에서 영화 모어를 보고 애증 덩어리가 되어버린 이 아이를 떠나보낼 마음으로 간다고 했더니

J님은 " 누군가는 파리에 잡으러 가는데 모어님은 놓으러 간다"

어떻게 모어님은 나는 전혀 상상도 못 한 곳으로 마음이 가 계신지 다시 한번 모어님에게서 배운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마음이라면 파리 가는 것에 힘껏 마음을 보태겠다고 하셨다

두 시간 넘게 통화를 했고 그 시간 안에서 서로의 목소리가 더 또렷해지고 영롱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우린 감사하다는 진심 어린 말을 끝으로 긴 통화를 끝냈다

내 주위엔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 사는데 나는 그것에 걸맞은 삶을 살았던가

비록 지금은 몹시 애달프지만 그럼에도 좀 더 힘을 내어 애를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일기를 쓰면서 커피와 계란 두 알도 해치웠다

나의 건강을 걱정하는 이들이 보내 준 구운 계란과 이런저런 식량들

그저 고맙고 이거 참 실속 있다

어젯밤은 도무지 귀찮아서 밥 대신 과일로 저녁을 때웠다

밥 맛도 없고 밥을 먹을 의지는 더 없기만 하다

오늘 아침의 날씨는 내 속과 같이 찌그러져있고 오후에는 비마저 내린단다

이대를 갔다 청담동 그 으리으리한 명품샵들 사이에서 장흥 끼순이가 보내야 하는 일요일의 일과

어서 통증으로 퉁퉁 부은 이 하루가 지나가길

내일 아침은 빛과 새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씻고 슬슬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

장흥 뻐꾸기는 오늘도 이를 악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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