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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모지민 May 06. 2023

주체적인 삶으로서의 모라

모라를 몰고 마곡동 엘지아트센터로 가는 오월 사일 AM 8:30

차에 시동을 걸고 네비에 목적지를 입력하는데 엉덩이에서 미적지근한 샘물이 흘렀다

그것은 설사였다

잠 깨려고 공복에 무참히 들이킨 커피가 화근이었다

이미 나오기 전에 몇 바탕 비워 내고 왔는데도 연약한 창자는 멈출 줄을 모르고 성실하기만 하다

천만다행인 것은 건더기도 냄새도 그다지 없는 그저 흙탕물이었다

시동을 끄고 집으로 올라가 샤워기로 물을 분사해 항문을 세척했다

약통에서 지사제를 꺼내 털어 먹고 똥으로 젖은 옷은 세탁기에 내던졌다

나가기 바쁜 아침에 똥 싸는데 시간을 낭비하다니 하루의 시작부터 난리부르스를 쳤으니 오늘은 단언컨대 좋을 일이 있을 것이야!!!

전날부터 이 옷을 꼭 입어야 한다고 역삼동에서 마곡동으로 새로 단장한 엘지아트센터에 대한 나의 야심 찬 옷이었건만

너무 아쉽지만 조금 비슷한 옷으로 신속히 바꿔치기하고 부리나케 출발했다

장흥 농협 주유소에 들러 3만원 어치 휘발유를 넣었다. 경차는 주유도 할인이 되니 비싼 고유가 시대에 부담이 덜하다

혹시라도 몰라 화장실에서 한 번 더 비워 내려고 변기에 앉았지만 흐르는 건 그저 소변뿐

장흥 일영리에서 고가도로를 타고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지불하고 그냥 직진하면 될 것을 우려한 대로 역시나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네비를 확인하지만 길이 갈라질 때 지금인지 조금 이따인지 매번 그것이 너무나 헷갈리는 것이다

과속이 붙은 상태에서 매우 잽싸게 판단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너무나 내 맘 같이 되지 않는 것이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헤매어만 하는지 초보는 괴롭다

가까스로 빠져나오면 얄짤없이 다른 톨게이트가 나오고 요금을 다시 지불해야 한다

톨게이트 여성 직원에게 사정을 얘기해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

그렇게 운전초보 티를 팍팍 내며 피 같은 돈 수십억을 도로에 뿌리고 다니는 요즈음이다

좋은 일이 벌어지기는커녕 촉이 제법인 나의 예지력이 운전대 앞에선 어김없이 아작 난다

한 번 더 실수하면 미팅 시간에 늦을 수도 있으니 볼따기를 후려치고 머리채를 바짝 세웠다

그렇게 저렇게 하염없는 고속도로를 지나 강서구로 진입했고 신도시라 그런지 도로는 한산해서 좋았다

그곳에 새로 지은 엘지아트센터는 덩어리가 커서 눈 감고도 찾을 수 있었다

건너편에는 엘지 기업 건물이 있었는데 어쩜 그리 멋대가리 없다냐 넌 그냥 너무 한국 빌딩이구나!!!

그나저나 대부분의 공연장은 주차장 들어가기까지가 복잡한데 엘지는 정문에 바로 주차장 입구가 나왔다

공연시간이 아닌지라 주차장도 널널했고 지하 3층 적당한 자리에 모라를 주차하고 1층 로비로 올라갔다

열 시에 도착했으니 1시간 10분 정도 걸린 거 같다. 길을 헤매지 않았더라면 1시간 안으로 도착했을 것이다

일생 헤매다가 두 시간은 족히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이로서 나 오늘 운전 성공적이라 하루의 시작이 영롱한 빛으로 반짝거렸다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의외로 운전초보자인 나였고 9월에 공연할 블랙박스 앞에 앉아 기다렸다

AM 10:30 공연 관계자들은 정확히 시간을 맞춰서 왔다

아트센터 관계자들과 다 같이 인사를 나누고 블랙박스 공간에 들어갔다

어제 기자회견으로 갔던 세종 S시어터와 매우 흡사한 구조였다

내가 이곳에서 9월에 연출로서 출연자로서 공연을 하게 된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일이다

이번 작품이 엘지 개관작 두 번째 작품으로 선정되었으니 이만저만 부담도 크다

게다 생에 첫 연출이다 보니 할 일도 공부도 할게 태산일 것이지만 염려는 저만치 집어치우고 일단 이 공간에 젖어 보기로 하자

공연장 특유의 냄새가 잠시 나를 타임머신에 태우고 백투 더퓨쳐~~~

대망의 구월이여 그날이여 어여 오라!!!!

완벽한 방음으로 대극장 바로 옆 블랙박스에서의 공연이 동시에 이루어져도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니 신형 극장은 다르구나 싶었다

우리가 쓰게 될 대기실을 둘러보고 관계자가 그린룸이라는 흡연실이 있다고 하자 기획자와 안무가등은 일제히 "잠시만요" 나란히 담타를 가졌다

2012년 역삼동에서 라카지 뮤지컬을 공연할 때도 흡연실이 있었는데  2022년에 지어진 건물에 흡연실이라니 너무 의아했다

요즈음 세상은 호텔에서도 담배 한 대 피우려면 세상 멀리 나가야 하지 않는가

여기 공연 때 흡연자들은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수고스러움이 덜어져 좋겠더라. 그렇다면 나도 한대 빨아 삐리봉?

화장실은 대극장과 연결이 돼있어서 용변을 볼 때 대극장 공연 사람들과 마주친다고 했다

다른 공연장은 극장과 극장 사이가 완전히 나뉘어 있는데 이 또한 참 재밌는 건축 설계였다

이번 엘지는 일본의 저명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했다고 한다

연습실도 그 무엇도 새것이었고 그것이 참으로 좋았다

역시 옛것은 옛것대로 새것은 새것대로 극장이란 곳은 좋기만 하다

구 엘지와는 확연히 다르게 롯데 콘서트홀 공연장 마냥 내부는 공명감이 좋은 고급진 나무로 되어 클래시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의자나 건물 외벽은 회색톤을 쓴게 인상적이었다

이윽고 완전히 탈바꿈한 대극장을 들어섰는데 탄성으로 입이 쩍 벌어졌다

얼마 전엔 이자람이 공연을 마쳤고 아직 몇 번의 공연이 이루어지지 않은 극장에 다른 예술가들보다 내가 먼저 이 자리를 밟고 있다는 게 한없이 영광스러웠다

마음 같아선 빌리 엘리엇처럼 그랑줴떼를 뛰어 무대를 힘껏 날고 싶었다

관계자: 이번 블랙박스 공연이 성공적으로 잘되면 다음번엔 대극장에서 하셔야죠

나: 그건 무조건입니다. 지금 계약하실까요

일제히 깔깔깔

나는 대답은 언제나 당당하다

이어 회의실에 들어가 이번 공연에 대한 브리핑 시간을 가졌다

나는 연출가로서 출연자로서 의도와 포부를 조곤조곤 말했다

의외로 말을 잘하고 있는 내 세치혀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교양과 품위를 알맞게 갖추었다

아트센터 관계자는 영화 모어를 매우 감동 깊게 보았다며 이번 공연도 기대 중이라고 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2023년에 단 하나의 작품이 있다면 우리의 작품이라고 했다

일제히 깔깔깔!!!

9월 공연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상세히 늘어놓겠다

아직은 엠바고!!!


어제의 세종 S시어터 오늘의 엘지아트센터는 모두 관계자로서 무료 주차 특권을 누렸다

다음 미팅 장소는 청담동. 강서구에서 강남은 멀기도 하더라

하지만 청담동에 모닝을 끌고 가는 건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 동네에 들어서기 전부터 보이는 것은 죄다 외제차. 그렇다고 주눅이 들 나도 아니긴 하다. 왜냐하면 난 숭구리당당하니까!!!

의상 미팅이 있어서 부티크에서 주차를 하는데 발레파킹하는 직원들이 저 모닝 똥차 저거 애쓴다 하며 보고 있었다

비좁은 공간에서 역시나 초짜인 나는 초짜인 티를 팍팍 내며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난중에 부티크 대표가 내려와 모어님 오셨어요 하니까 그제야 직원들

직원남: 아니 진작에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저는 돌려서 나가는 줄 알고 보고만 있었습니다

나: 제가 쌩 초보라서요 벤츠, 포르셰를 박을수 없어 하염없이 헤매고 있었지요’ (알면서도 모른척한 건 아니규? 니씨염뚜)

청담동이라 그런지 발렛차킹 직원들은 세련된 슈트를 입고 있었다

부티크 건물 주차장에 국산차 모닝은 나뿐이었고 듣도 보도 못한 외제차뿐이었다

그래도 난 모라가 젤로 이쁘고 기특하다

2층으로 올라가 처음 만난 디자이너와 인사를 하고 29일 한남전당 공연에 입을 옷을 의논했다

디자이너는 내 공연 소식을 접하고 꼭 의상을 제작해주고 싶다 하셨다

패션쇼와 영상 작업들을 보여 주는데 오 마이갓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한국이 낳은 세기의 디바 나윤선이 아닌가

나: 꺄아악!!! 저 이분 완전 팬이에요

디자이너 : 저 윤선언니랑 완전 친해서 제 의상 많이 입어요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나른한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디자이너는 의상실에 찾아와 옷을 고르고 무대에서 자신의 옷을 입고 공연하는 나윤선의 사진들을 보여 주었다

나는 그저 연거푸 꺄아악!!! 비명의 도가니탕이었다

나: 공연 때마다 찾아가서 엘피와 시디에 싸인 받았었는데 혹시 제가 윤선님을 이곳에서 영접할 수 있을까요

디자이너: 그럼요. 이번 6월에 한국 와요. 근데 그 언니 너무 바빠

일단 이 대단한 사실을 똑똑히 알겠으며 놀라움을  삼키고 옷을 주섬주섬 골라 입어 보았다

첫 착장 두 착장 쉴 새 없이 갈아치웠다

그러다 다섯 번째 옷을 입어 보았을 때 나는 입을 닫지 못했다

나: 다자이너님 이게 제가 찾던 바로 그 옷입니다. 이것입니다!!!

디자이너 : 오호라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나는 거울 앞에서 심봤다를 외쳤다

디자이너는 내가 입은 옷을 찍기 바빴다

하도 찍어 대길래 보답한답시고 쇼맨십을 발휘 해 곱디고운 옷자락을 휘날리며 펄쩍펄쩍 춤을 추었다

디자이너 : 어쩜 이렇게 맞춘 듯이 옷을 흡수하세요?

나: 저니깐요

옆에 있던 한남전당 대표는 지민 씨 에너지가 너무 쌔서 옷이 못 받쳐 둔다고 했다

나: 그건 사실이에요. 냐하하

나는 눈을 깜빡깜빡 거리며 겸손함은 일도 없이 자근감으로 코가 부티크 천장을 찔렀다

난 나로서 존재로서 굳이 애써 갓 데뷔한 신인 아이돌처럼 차렷하고 싶지 않다

옷을 무상으로 해준다는 이유로 쉽사리 갑의 자리를 빼앗길수는 없는 법

먼저 그들이 제안을 했고 아쉬운척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는것을 깨달아 버렸다

여하튼 오늘 두개의 미팅이 아름답게 마무리 되었다

일정을 마치고 압구정 갤러리아를 거쳐 오는데 지옥이 따로 없었다

한 차선에 두대의 차들이 꼼짝 마라 멈추었고 4차선의 버스와 차들이 동시다발로 들이미는데

이러다 아차 하는 순간 들이 박을수도 있겠다 싶어 초집중력을 발휘해서 운전대를 꽉 쥐었다

그 사이에 끼여 오도 가도 못하는 모라가 서있는 아스팔트가 공포로 울부짖었다

겨우 아주 겨우 접촉사고 없이 그 혼잡한 도로를 빠져나와 간신히 성산대교를 탔다

하필 퇴근시간이라 정체는 끝도 없이 이어졌고 어딘지도 모를 길을 사정없이 밟다 간신히 의정부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운전대를 잡은지 한 시간 반이 지났을 무렵 막히는 도로에서 한계치를 넘은 내 방광이 어여 당장 싸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하도 커피랑 이것저것 공복에 쳐마셨더니 올게 온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이 무슨 난감한 일이람? 입에서는 니씨염뚜를 남발했다

엘지와 청담에서 온갖 교양 있는 척해놓고서는 순간 김수현 작가 드라마에서 하유미의 교양? 대사가 생각났다

차안에 있는 물병에 싸자니 병은 너무 작고 또 거기에 어떻게 조준해서 쌀 것이며 머릿속은 복잡하고 가운데 다리는 괴롭고 방광과 정수리에서 지진이 났다

순간 뒷좌석에 마침 요강처럼 생긴 가죽 가방이 생각나서 내용물을 의자에 냉큼 쏟고 내 거시기에 갔다 댔다

근데 그것도 도저히 각이 안 나왔고 아직 핸드폰 문자도 못 보는데 운전하면서 오줌을 싼다고? 그것도 차 안에서?

차들은 쌩쌩 달리고 옷에 지리기 일보직전 초등학교 이후로 고추에 그렇게 힘을 준건 처음이었다

터지기 일보직전인 방광을 부여잡고 의정부 고속도로 갓길에 급 정지! 매우 천만다행인 것은 1차선에 있었다

미친 듯이 풀때기를 헤쳐 올라가 빤스를 내리고 쪼그려 앉아 2천 년 된 오줌을 한숨에 쉬~

그래 이 맛이야 에구구구 살겠다 싶었는데 위에서 산책하는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를 보고 웃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내겐 최선의 선택이었다

고속도로애서 내리지도 못하고 하마터면 모라 안에서 방뇨를. 그리고 그 냄새 어쩔 것이야

아침엔 설사로 오후엔 오줌이라니 하여간 내 속창시 어지간히 염병이다

안도의 숨을 쉬는 순간 발리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치마 트임 사이로 풀때기가 보였다

허겁지겁 빤스를 올리면서 풀이 쥐어 뜯겨 고스란히 빤스 고무줄에 걸려 따라 온것이다

우아하게 살긴 글렀다고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구러

오늘은 장흥에서 마곡동 마곡에서 청담동 압구정 갤러리아 퇴근 지옥길을 뚫고 무사히 장흥으로 귀가에 마침표를 찍었다

참말로 신기하다

운전대만 잡으면 진땀 빼던 시간이 가고 비로소 내가 강 같은 평화가 찾아왔다

심지어 이제 쌩쌩 달리는 운전이 즐겁기까지 하다

이것이 인간들이 그토록 말하던 운전 하면 자유를 찾는다 인 걸까

나는 왜 이제야 시작한 걸까

그동안 대체 왜그러고 산것일까

어쩌면 나는 애초에 타고난 운전체질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허비한 사연이다

사연은 수많은 이야기를 낳고 그 이야기로 운전하지 않은 삶과 운전하는 삶이 빼곡해질 예정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모라를 데려 온 지 한 달 만에 이룬 실로 엄청난 성과다

면허를 따고 장롱에 쳐 박아 두었다면 절대 알 수 없을 이 자유!!!

세상은 자유뿐인데 나의 연약함이 그 발목을 40 평생 붙들고 있었다

이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는 게 세상 그 무엇보다 짜릿하고 행복하다

그리하여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천천히 가고 싶으면 천천히 빨리 가고 싶은 빨리

털 난 물고기 모어에서는 운전 못하는 삶을 수차례 반복하며 주체적으로 살 수 없는 삶의 비애가 하염없이 쓰여있는데 이젠 운전으로서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로 뚜드려 고쳐야 할 판이다

나는 겁이 많아 할 수 없다고 엄살 부리며 살았던 아니야! 한 치욕스러운 못난 과거를 깊이깊이 반성한다

인생은 이렇게 저렇게 완성되어 가고 여물어 가고

인생은 그렇게 저렇게 아름다운 순간들이 절로 찾아오누나

고맙다 모라야. 나 지금 되게 많이 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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