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어 모지민 Apr 25. 2023

Oh, Lord! I saved my daddy!!!

이천이십삼년 사월 십칠일 월요일

전날밤 형수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다음날 아침 가족 단톡방이 떠들썩하고 이어 엄마와 누나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빠 : 오늘 오냐?

엄마 : 아들 올 수 있어?

누나 : 지민아 올 거지?


그 덕에 여기저기 뿔뿔이 흝어져 사는 모씨 집안 온 가족이 남양주시 장례식장으로 출몰했다

명절에도 다 모이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핏줄의 힘은 짙고 강하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자식새끼들 넷에 손주 여섯까지 둔 엄마 아빠는 인간으로 태어나 한 시대에 엄청난 대 가족을 형성하였구나

그 아이들이 훗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그렇게 뿌리에서 뿌리를 삼대에서 사대로 뻗어 나간다는 게 신기하고 거룩하게 느껴졌다

내 슬하에 있는 건 오직 '끼'일뿐이니 남길 수 있는 게 이름 석자라도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에서 시흥 누나네 집으로 일제히 출동하려는데 아빠는 굳이 내 차를 타야겠다고 하셨다

차는 매형, 동생, 내차까지 총 3대였고 75km가 넘는 꽤 먼 거리였다

형수님 가족들이 걱정된 눈초리로 안된다고 위험하다고 뜯어말렸다

비범하게 살기로 한 나는 떨리면서도 왜 때문인지 아빠를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한번 가보기로 했다

언젠가는 맞아야 할 매인 데다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예감이 불쑥 들었다

대찬 용기만이 전부인 험난한 여정은 삽시간에 시작되었다

장흥면 일영리 동네 드라이브도 아니고 한번 운전대를 잡으면 고속도로에서는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미처 아니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대체 그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여전히 의심스럽다

매형 나 동생순으로 출발

매형의 차를 놓치면 집에 못 갈 수도 있으니 바짝 추격하며 순조롭게 잘 따라갔다

그런데 오르막길에서 액셀을 세게 밟는데 그만 차가 나가지 않는 것이다

정신이 1도 없는 상황에서 오르막길이라 그런가 하고 말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리지 않은 것이다.

사이드 미러를 닫고 운전한 적이 몇 번 있긴 한데 하필 이 중요한 때에 이런 큰 실수를 범하다니 초짜에겐 별의 별일이 다 생기는구나 식은땀이 났다

그 찰나에 다른 차가 끼어들었고 그 먼 길을 네비도 잘 못 보는 생 초짜 운전 신입생이 네비에 의존해서 갈 자신이 없었지만 곧바로 연약한 정신머리를 꽉 붙잡았다

그때 브레이크가 갈려서 중간에 차가 퍼지지 않은 것 만으로 신께 감사해야 했다

끝도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최선을 다해 끼어들고 제법 잘 굴러가다 길이 양쪽으로 나뉘는데 하필 다른 길로 간 것이다

돌아 돌아왔던 길을 다시 가고 네비에 표시된 거리는 줄지 않고 더 늘어나기만 했다

핸들을 쥔 손과 어깨에 힘이 한껏 더 들어가고 과연 내가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공포와 의구심이 등짝으로 서늘하게 흘러내렸다

바로 전날 내부순환로 잘 못 탔다가 은평구에서 망원동까지 무려 세 시간 만에 도착했던 직후라 자신감이 꼬리를 내렸다

그날은 고속도로 타고 부산에 안 간 게 어디냐며 호되게 맞은 매를 겸허하게 받아들였지만 나야 공부하는 마음으로 고생한다 쳐도 아빠는 대체 무슨 죄!!!

그러면서도 항상 우아한 자태로 꼬리를 쳐들고 있는 모모를 생각하며 운전에 열중했다

차를 산 날로부터 매일 전화하셔서 운전 잘하고 있냐 그 말 한마디 물으시고 전화를 끊던 아빠는 내가 씩씩하게 운전하는 꼴을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이번 구정에 내려가 면허 시험 보고 있다고 했을 때 그제야 아빠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아빠: 진작에 했어야지. 그동안 그러고 다니느라 고생 많았다

엄마 : 워메 우리 아들이 운전한다고?

엄마는 덩달아 기뻐하셨다


그 아름다운 기억을 끄집어내는 순간 순식간에 다시 다른 길로 들어섰다

이젠 정말 안 되겠다 싶어 갓길에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웠다


아빠 : 왜 그냐

지민 : 어 그게... 그니까 잠깐만 기다려봐 봐


크게 쉼 호흡을 하고 다급히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를 들고 있는 손과 목소리가 떨렸다. 길을 잘못 들어서 좀 늦는다는 말만 하고 잽싸게 끊었다

이 길로 다시 하염없이 가느냐 불법 유턴을 해서 돌아가느냐의 기로에 서서

유턴해서 돌아가려는데 안돼!!! 하고 나를 죽이려는 차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참담한 심정으로 엑셀을 꾹 밟았다

길은 이어져 있는 법!!! 똥구멍 힘주고 다시 가보자

중간중간 휴게소가 있고 그때마다


지민: 아빠 화장실 안 가도 괜찮아?

아빠: 그냥 가야


나는 휴게소에 들러 대리라도 불러 이 살얼음판인 지옥길에서 황급히 벗어나고 싶었는데 내 속을 모르는 아빠는 그저 빨리 가자고만 하신다

휴게소를 지나 그저 한없이 달려야만 하는 고속도로에서 아빠의 걱정을 사지 않기 위하여 목놓아 울지도 못하고 잘하는 척 태연한 척해야 했다

도심 거리에 있다면 여기저기 도와달라고 아우성을 쳤을 텐데 고속도로에는 아빠와 나 그리고 사이드 브레이크도 안 내리고 갈려가며 달리는 안쓰러운 모라 (나의 차) 뿐이었다

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 설상가상 돌아가는 방법조차 모른다

이정표에는 듣도 보도 못한 낯선 지역의 이름뿐 대체 그놈의 시흥은 언제 나오는 것이냐

장흥인지 시흥인지 한 끗 차이인데 너무 멀고 너무 하염없어 눈물이 앞을 가렸다

감기로 몸도 안 좋은데 왜 따라간다고 해서 사서 고생인지 후회가 막심했다

그렇게나 하염없이 달렸는데 계기판에는 비정하게도 50km가 더 남아 있었다

운전해 보니 한국이 세상이 이렇게나 큰 땅덩어리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포도시(겨우) 장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서울만 왔다 갔다 했던 내 눈앞에 펼쳐진 대지!!!

이다지도 가혹한 체험 삶의 현장이 또 있을까 싶었다

경기도에서 경기도 가는 일도 이리 하염없는데 목포나 부산은 그저 에구구구 언감생심!!!

천만다행인 것은 모라에 엄마가 타지 않은 것

오늘 아침에 동생 차로 올라온 부모님은 건강상의 문제로 차를 타는 거 자체가 고역이다

그런 두 분 다 내 차를 탔더라면 노친네들 비명횡사했을 것이 농후!


지민: 아빠 괜찮아?

아빠 : 괘안해야


정말 괜찮은 것일까 타들어가는 내 속내를 알기나 하는 것일까

어찌 저리 태평한 것일까 죽음도 두렵지 않은 것일까

하긴 이미 애진작에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셨는데 이건 일도 아니겠지

그저 나만 똥줄이 타고 이 지옥이 얼른 천국으로 바뀌길 핸들을 더 세게 움켜쥐며 빌고 또 빌었다

봄은 왔는데 모라 안에는 오뉴월 서리로도 모자라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 닥쳤다

죽기 살기로 끼어들고 기어이 기어이 km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그제야 안도의 숨을 길게 내 쉬었다

아빠를 죽이지 말라고 하늘이 돕는구나!!! 신이시여 제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은 6시가 훌쩍 넘어가고 마침 석양이 졌다


지민: (끼스럽게 떨리는 목소리로) 아빠 석양이 너무 아름답다

아빠: 응 (언제나 단답형 그리고 침묵)


비로소 내게 강 같은 평화가 찾아왔고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오늘 이 지난한 하루도 우리네 인생도 저렇게 지겠지. 그런데 지는 것도 참 아름답다

4남 1녀 중 당최 나란 물건만 운전을 못하고 명절에도 나만 대중교통으로 그 먼 곳을 갔었는데

그런데 어찌하여 내 부모는 단 한 번도 나보고 운전해라 마라 단 한 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을까

그것이 참으로 미스터리!

운전에 운자도 생각 못하고 살아온 내가 올해 들어 무슨 기적의 바람이 들었는지 면허를 따고 따자 마자 차를 사고 지금 이렇게 위험천만한 고속도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맹렬히 달리는 나 자신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불안감 속에서도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을 아름다운 결말을 생각했다

그때의 최고로 치솟는 감정은 아빠를 태우고 그렇게 아빠를 모시고 목적지로 향하는 것

이거 과연 실화인가

부모는 자식을 낳아 똥구멍까지 닦아 주고 그 보살핌이 끝나면 사회로 나간 새끼들은 고군분투 살아가다 또 다른 가족을 형성하고 그 사이 저물어 가는 부모를 역으로 살펴 주어야 하는 시간이 온다

자식 사랑은 내리사랑인지라 그 무엇으로도 제대로 갚을 수는 없지만서도

그것이 인생의 순리라면 지금 이 순간은 보은 해야 할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다

그리하여 나는 곧 엄마와 가족들이 있는 시흥으로 가게 되고 말 것이다

쉼 없이 달린 모라는 석양의 아름다운 기운을 받아 무사히 아주 무사히 가까스로 시흥 톨게이트를 지났다

다시 한번 날숨을 크게 내쉬었다. 휴우~

마음에선 연거푸 모지민 잘한다!!! (더글로리의 문동은 빙의) 손바닥에 불이 나게 박수를 쳤다


지민: 아빠 누나한테 전화 좀 해봐

아빠 : 네가 해야

지민: (말을 버벅 거리며) 아빠 나 지지 지금 우우운전 때문에 빨리!!!


찰떡같이 알아들으신 아빠가 전화를 걸어 내게 바꿔 주신다


지민: 아니 아빠가 말해. 이제 시흥 왔다고 금방 간다고. 어여여!!!

아빠: 어, 다 왔씨야


내 혈관이 막힌 아빠는 가끔 내 이름도 한참을 생각해서 말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한테 전화해라 마라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내가 오죽하면 아빠를 시켰겠냐고 운전하면서 핸드폰을 보거나 전화를 거는 일은 아직 상상할 수가 없다

것도 신호도 없는 무지막지한 도로에서 눈의 동공을 초등학교 이후로 가장 동그랗게 뜨고 오직 직진만이 가능하다

코가 석자인 내가 그 와중에 시흥에서 마냥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 가족들은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걱정은 커녕 세상 태평하게 드러누워 있을 수도 있다

누나의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빠를 이 불구덩 속에서 탈출시켜 주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닌 게임이다

이윽고

그토록 찾아 헤매던 도심 속으로 모라가 진입했다

도심 입구에는 날 위한 오색찬란한 무지개 테이핑이 쳐져 있었다

죽기 살기로 무사히 마라톤을 마친 모라의 범퍼가 테이프를 커팅식을 가졌다

모라야 나는 고난과 역경을 뚫고 살아남았어. 고맙다 모라야!!!

순간 그 머나먼 여정을 안전하게 이끌어준 모라와 포기하지 않은 내가 그리고 인내해 준 아빠가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도로에선 4중 추돌 2중 추돌 사고가 나있었고 그로 인해 도로가 막히고 그럼에도 나는 접촉 사고 하나 없이 안전하게 아주 안전하게 꼬박 세 시간 만에 최후의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저녁 7시

나를 기다리다 지친 가족들이 외식하러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어렵게 서럽게 눈물의 상봉!!!


엄마를 보자마자


지민: 엄마 나 지금 죽고 싶어!!! 당장 죽여줘!!!

엄마 : 연설해쌌네. 우리 아들 장하네


엄마는 엄살 부리는 내가 귀여운지 죽는다고 웃었다


누나: 지민아 너 맨발로 운전했어?

지민: 어 너무 무서워서 신발 벗어 재꼈어

매형 : 지민이 진짜 대단하다. 대차게 잘하네. 네가 지환이 보다 운전실력이 더 낫다

매형의 칭찬은 들리지도 않았고 그저 살아 돌아왔음에 아빠를 보호했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벌렁 거리는 심장 박동수는 거칠게 뛰었다

도로에서 떡실신 안 한 게 천만다행이지 싶었다


지민: 누나 나 멘탈 나가서 주차 못하겠어 도와줘

누나: 그래 알았어

지민: 지환아(남동생) 운전하는 거 왜 이렇게 힘드냐

지환: (동생도 웃으면서) 고생했네. 첨엔 다 그래


아빠는 그저 흐뭇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신다


장어집으로 가서 숯불에 장어를 지글지글 구우며 기름진 장어의 기름이 내 목구멍으로 쉴 새 없이 와리가리했다

이렇게 맛있는데 이렇게 살아 있는데 지옥처럼 느껴졌던 도로 위에서의 세 시간이 그저 찰나였음으로 최후는 그렇게 순탄하게 그러므로 찬란하게 종결되었다

그날 나는 아빠를 죽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식은 애비를 지켜야 한다

나는 아빠를 지켰다


작가의 이전글 각자 각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