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진 선택

by 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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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하루의 시작은 어느 지점일까.


젖은 머리칼을 어스 라이 털고 수건을 머리에 덮은 채 부은 눈으로 속옷을 뒤적거리는 이 장면 일 것이다. '스포티하게 삼각? 쌀쌀하니 사각? 회의 발표가 있으니 아끼는 브랜드로 집을까, 할 일이 많으니 노브랜드로 할까.' 언제나처럼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지갑과는 난이도가 다른 문제이다.


정신없는 아침, 숨 한 모금 내쉴 정도로 짧은 시간이지만 선택지는 보유 장 수만큼 많다. 큰 노력을 들여 준비해야 하는 특별한 하루가 아닐지라도 그런 점에서는 고르는 즐거움이라 하겠다.


하루의 기대를, 도피를, 방어를, 신을 위해 가장 근사한 속옷과 최적의 양말을 고른다. 이곳은 가장 멋대로 할 수 있는 최후의 장소일 것이다. 매일매일 오색 찬란 경계를 허물 수도 있고, 한 장으로 일주일의 삶을 버티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작은 낭만을 누리기에 아침 시간은 자비가 없다. 머뭇거림과 두 어번의 재선택 찬스 사용은 다음 버스를 타야 하는 페널티가 된다. 묵과하지 못할 만큼 상태가 안 좋거나 혹시라도 다른 사람의 것이 섞여 있어 - 상상하기 싫지만 - 다리라도 끼워 넣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만약 출근해서 바뀐 사실을 알았다면 그 하루에 위로의 건배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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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 또 올려도 하루 종일 흘러내려 발뒤꿈치까지 내려가니 이제는 집에 가자마자 버려야겠다. 애써 끈질기게 선택한 당신과의 추억도 결국 이렇게 늘어져 버리고 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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