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자 .04

by 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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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다리는 풀어져 급히 지쳐갔다. 갑자기 차가운 물줄기가 몸을 감싼다. 냉탕에 들어간 것 같은 한기에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차가운 물 뭐야!'



몸을 담글 때부터 이미 보통의 수영장의 온도보다 낮았었다. 그런데 지금 더 물이 차가워지고 있는 것이다. 따뜻한 물이 필요한 것 아닌가? 케비넷 키 반납할 때 꼭 한마디 해야겠다.




신분증과 바꿔 가던 짧고 오동통한 손만 떠올랐다. 이런 말은 얼굴을 보면서 해야 하는데 아쉽다.



상급자의 유려한 발 진동은 이제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멀어졌다. 휘어진 팔과 흐물거리는 다리로 수영이라기보다는 부유하는 입장이 되었다. 해파리가 되고 나니 한심해져 버렸다. 보잘것없는 이런 삼류 수영장에서 첫날 체면을 구기고 있었다.



'모모는 뭐할까'



며칠 전부터 쇼핑몰에 가자고 조르던 모모였는데 이야기나 들어줄 것을 그랬다. 지금 즘이면 아마 햇살 길게 들어오는 창가 어딘가에서 수영장 물 대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작은 모모였다.




"이 동네 수영장 있더라. 알아?"

차에 올라타니 모모가 방향지시등을 넣으며 말했다.


"정말? 이런데?"


"저기 뒤쪽 길 끝까지 가면 있어, 파랗고 둥근 색 건물"

턱을 힐끗 기울이며 말했다.


"이 블록 끝에 있다는 거야?"


"응, 한적하고 깔끔해 보이던데"



유턴이나 차선 변경을 놓치는 일이 잦은 모모의 우연한 발견이었다. 이 지역으로 출근을 시작한 지 3년이 되어가지만 주변에 뭐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주택가가 아니었다.


사무실 대각선 앞에는 발전소가 있었고 그 옆으로 바다를 맞대어 컨테이너 부두가 끝도 없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거대하게 넓은 도로는 컨테이너 박스를 실은 트럭이 24시간 다녔다. 중간중간 한적한 갈래길에는 주차된 빈 트레일러 사이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자동차만 머물다 사라지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 수영장이라니,

이런 곳에서 수영하는 사람이라니,

이런 곳에 바다사자라니.



거센 물결에 몸이 위아래로 흔들린다.

어느새 바다사자는 되돌아와 해파리 옆을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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