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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냉이 Jan 24. 2022

같은 걸로, 한 잔 더

물냉이의 저주

2021년 가을, 버즈샵에서 운영하는 음&식 콘텐츠사이트 업테이블에서 연재 제안이 왔다. 

쓰는 동안 재미있었다. 


'같은 걸로, 한 잔 더' 모음.


1화. 초코볼 실험

"이야기를 듣던 나는 말했다. 이 실험엔 근본적인 오류가 있다. 대상의 뇌에 '화를 내면 초코볼이 나온다'고 각인될지, '화를 빨리 풀면 초코볼이 나온다'고 각인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C는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젠 부장이 화를 내도 자신의 서랍 속 초코볼을 생각하면 마냥 작아지지만은 않는다고. 초코볼을 부장에게 건네며 C는 생각한다. 지금 당신은 날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급자가 아니라 내 작은 초코볼 실험의 피실험자일 뿐이다. 내가 준 간식에 기뻐하고, 그걸 무의식에 각인시킬 대상일 뿐이다. 당신만 날 컨트롤하는 게 아니다. 내 비록 부하 직원이지만, 나도 당신을 컨트롤한다."


2화. 밥상머리 교육

"비판하는 일은 기분이 좋다. 공정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상대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듯한 착각도 든다. 그걸 어떻게 아냐면, 내가 식탁에서 배운 게 칭찬뿐은 아니어서다. 식탁 위의 매서운 말들이 싫었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 내가 그러고 있었다. 누구든 붙들고 싸우던 때, 내가 서 있는 지반이 허물어져 버릴 것처럼 불안하던 때, 나는 주변에 상처를 주고, 꼭 그만큼의 분량으로 돌아오는 상처를 받았다. 그냥 그렇게 지낼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숨만 쉬어도 자존감이 낮아지던 그 시기를 홀로 돌파할 자신이 없었다. 많은 것을 끊고, 나쁜 말도 끊었다. 단점을 지적할 때 상대가 작아진다면, 반대로 장점을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은 커지겠지. 어쩌면 그렇게 커진 사람들이 나를 구해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한 번 해 봤으니까, 이번에도 할 수 있다."


3화. 지옥까지 한 잔만 더 

"딱 한 잔. 이 한 잔이 우릴 태우고 지옥으로 흥겹게 내달릴 코끼리 열차다. 물색없는 술꾼들은 천진난만하게 생긴 이 작은 열차에 반감 없이 올라 엔도르핀의 서울대공원에 입장하곤 두 잔 세 잔 네 잔 기억나지 않는 몇 병을 해치워 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내일은 온다. 숙취도 온다. 약속한 것보다 더 마셔버린 죄, 몸이 버틸 수 있을 때 몸을 돌보지 않은 죄, 마실 수 있는 한도까지 꽉꽉 채워 마셔버리느라 체력을 저축하지 않은 죄로 숙취가 온다. 숙취는 서럽다. 모두가 비웃고 아무도 위로해주지도 않는다. 온전히 내 탓이다. 이제는 오래가기까지 한다. 하루로 해결되지 않는다. 금요일에 즐거웠던 나는 소중한 주말이 마치 가을걷이가 끝난 논바닥처럼 버석하게 말라가는 꼴을 본다. 그보다 더 버석하게 마른 허수아비 같은 꼴을 하고, 침대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내 하찮은 인생이나 복기하면서 말이다."


4화. 단골 손님의 자세 

"주인과 손님은 서비스와 돈을 서로에게 제공하는 관계지만, 동시에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지금 이 순간의 동반자이며 이 공간의 동거인이다. 기껏 섭외한 내 위성 집에서 지금처럼 계속 환대받고 싶은 나는 좋은 손님이 되려 노력한다. 공동생활수칙이라도 짜듯 몇 가지 원칙도 세웠다. 먼저, 날 기억해주길 바라지 않는다. 주인에게 필요 이상으로 말을 걸지 않는다. 다른 손님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며 터줏대감인 양 굴지도 않는다. 앉았던 의자는 집어넣고 떠난다. 술에 취해 잔을 깨거나 신청곡을 강요하지 않는다(실제로 후자는 끊느라 꽤 고생했다). 영업시간 끝났는데 딱 한 잔만 더 하겠다고 떼쓰지 않는다(이 버릇은 코로나 때 싹 고쳤다) 등등. 솔직히 매번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주인들의 너그러움에 기대어 그럭저럭 진상까지는 안 갔다고 볼 수 있으니, 다시 한번 단골집 아니면 내 쉬어갈 곳 어드메일까 싶다."


5화. 요리 잘하는 법

"여기 양파가 한 알 있다."


6화. 동태탕 먹는 사람들

"젖은 나비처럼 지치는 날이 있다. 해코지 한 번 당하지 않았는데도 종일 넘어지기만 한 기분이 드는 날, 실수 없는 마무리를 하고도 텅 빈 기분이 드는 하루. 생일에도 출근을 하듯 그런 날에도 퇴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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