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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대체로 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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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최솜 Aug 09. 2022

대체육을 대체할 말은 없나요?

그건 왠지 거부감이 들어서요.

고깃집에 간 것이 아니었어도, 우리 가족의 외식 메뉴는 늘 고기였다. 짜장면에 탕수육은 단무지보다도 더 먼저 기본으로 따라붙었고(짜장면에 들은 고기 정도로는 고기라 부를 수 없다), 파스타 집에서는 베이컨이라도 꼭 들어 있는 것으로 주문했으며, 샐러드를 고를 때 조차도 당연히 치킨 텐더가 올려진 것으로 선택했다. 한식이고 중식이고 일식이고 양식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음식의 국적보다 중요한 것은 튀겼던지 구웠던지 삶았던지 간에 아무튼 고기가 들어 있느냐 하는 것이었으니까.

우리 집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자리를 메우는 것이 탄수화물이 되지는 않게 하자고 다짐했지만 생각만큼 다양한 채소 요리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쩍쩍 달라붙도록 기름진 소고기 구이를 대신하느라 식용유 사용량이 점점 늘어났다. 성장기 아이의 단백질 섭취량을 유지하기 위해 달걀프라이, 달걀말이, 달걀 볶음밥.. 을 만드느라 열심히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부었고, 자신 없는 생선 요리는 조림 대신 구이로만 만들어서 온 집안을 기름내와 비린내로 가득 채웠다.

"이건 아닌 것 같아."

외식이라면 모를까, 환경 파괴에 일조한다는데 집에서까지 사 먹지는 말자고 마음먹은 식재료인 아보카도를 딱 한 개만 샀다. 닭고기와 소고기를 넣지 않은 부리또나 화이타, 퀘사디아를 시키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가지 못했던 멕시칸 레스토랑 대신 복숭아 요플레와 후추로 간을 하고 스위트 칠리소스를 곁들인 부리또를 만들어 먹었다. 아이에게 새로운 비건 메뉴로 양념깻잎을 권해주었고, 김치찌개라고 볼 수도 부대찌개라고 볼 수도 없는.. 굳이 이름을 지어본다면 '케첩김치라면찌개'라고 해야 할 것 같은 희한한 찌개를 끓여 먹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맛이 제법 괜찮은 코다리 조림 밀키트를 집 앞 밀키트 전문점에서 찾았다.

조금 나아졌다가 다시 나빠졌다가.. 다시 나아졌다가 또 나빠졌다가.. 그렇게 나. 나 거리는 식생활을 유지하던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비건 육포 광고를 보게 되었다. 질겅질겅 씹는 욕구를 해소하느라 원 플러스 원 행사로 사놓은 진미채 두 봉지를 다 먹어갈 무렵이었다.

“육포라고? 게다가 갈비 맛? 양꼬치 맛? 그래 이거야!”

홀린 듯이 접속한 쇼핑몰에서 배송비를 아낀다는 명목 하에 아직 신뢰도 0인 비건 식품들을 쓸어 담았다. 식물성 고기만두, 식물성 김치만두, 식물성 떡갈비 각각 하나씩, 식물성 육포는 매우 많이. 콩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큰 나는 몰라도 아이는 좋아할지도 몰라. 아이가 싫어하면 어지간한 건 다 잘 먹는 남편이 있으니까. 그런 생각으로 마지막 결제 완료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배송받은 식품들의 포장에 적힌 ‘대체육’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나는 입맛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고기’라는 단어가 ‘육’이라는 한자어로 표현될 때, 이유는 모르겠지만 야만적인 분위기를 느끼곤 한다. 조금 과장하면 호피무늬 털가죽 옷을 대충 둘러 입은 원시인들이 피를 뚝뚝 흘리며 거칠게 생고기를 뜯는 장면이 그려진다.(그렇게 보면 물론 육포도 다를 바 없지만, 나는 보통 육포를 가스불에 구워 먹어왔기 때문에 그을음의 향에 이미 달큰하게 취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갑자기 든 생각인데 그럼 쥐포는.. 육도 아니고 쥐인 쥐포는.. 아아.. 나 어떡하지? ㅜㅜ) 거기에 ‘대체’라는 단어가 가지는 낫 오리지널, 한계가 있는,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에 고기 ‘육’ 자를 붙인 ‘대체육’이라는 단어는 콩고기나 짝퉁 고기 같은 말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고기 흉내를 낸 것‘이라도’ 먹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건 아니었다. 까짓 거 안 먹으려면 안 먹고도 평생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저 채식 생활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러기에는 고기 흉내를 내느라 으깬 콩을 주물러 반죽해 놓은 것 같은 특유의 맛과 식감이 영 적응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름 ‘대체육’도.

괜히 헛돈 썼네, 됐어, 그냥 갈비양념으로 만든 무조림이랑 버섯볶음이나 먹어, 하고 다시 마음을 고쳐 먹은 즈음 아이와 나에게 대체육 보다 더 큰 고비가 닥쳤다.

그것은 심각한 수준의 빈혈 진단이었다.

아이는 알레르기 때문에 혈액검사를 하다가 알게 된 것이었고 나는 몇 년째 빈혈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으나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인데, 다른 이유로 병원을 들락거리다 내과 의사의 경고를 받게 된 것이었다.

“채식.. 좋은데요, 그런데.. 그건 건강할 때 얘기고요.. 지금 환자분은 수혈을 받아야 할 지경이거든요. 빈혈약 드시고 계신다면서요. 그런데도 이렇다는 건.. 휴. 붉은 고기 조금씩이라도 드셔야 해요. 그거 안 드시고는 치료가 어려워요. 이러다 심장에 이상 와요. 일단 빈혈약 복용량을 두 배로 늘려봅시다.”

아.. 나는 그렇다 치고.. 그럼 우리 아들은 어떡하지, 의사한테 차마 어린 아들도 빈혈인데 고기를 안 먹는데요, 소리는 하지 못하고 혼자서 내적 갈등의 구렁텅이로 점점 깊게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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