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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Apr 24. 2023

가혹한 서른님, 따듯한 차장님(수상록)

제5회 직장인 문예대상(2010)

2010년, 누구에게나 한번은 찾아온다는 그 ‘서른님’이 내게도 찾아 왔다. 낯설고 반가울리 없는 ‘서른님’ 을 내 힘으로는 도저히 피해갈 수 없었나보다. 서른님이 찾아온 것도 모자라 나는 3년 다닌 회사까지 그만둬야하는 상황까지 오고야 말았다. 이유는 계약만료였다. 그렇게 되고 보니, 엄동설한 내 쫒기는 것 마냥 서른은 내게 참 가혹했다. 아니 ‘서른님’ 은 참으로도 가혹하셨다.



이십대 때도 힘들었던 취직이 삼십대가 되고 보니, 더 힘들다는 걸 나는 뼈속까지 느낄 수 있었다. 서류에서조차 연락 오는 회사가 거의 없었고, 면접을 봐도 나이 때문인지 단번에 꺼려했다. 여기저기 발로 뛰며 취직을 위해 노력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괜히 의기소침해지고, 그나마 있었던 자신감마저 사라졌다. 괜한 자격지심에 사람들을 만나기도 싫을 만큼, 나는 점점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허무하게도 하는 일 없이 8개월이 지나, 가을이 서서히 찾아들었고, 그 와중에도 취직을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일단 뭐든 하고 보자란 생각으로 여기저기 서류를 넣었다. 그렇게 어렵게 찾았던 직장, 아쉽게도 3개월의 계약직이었다. 하지만, 2010년 한 해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러 보내기 싫어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난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욱 감사했던 것은, 내 서류만 보시고 합격을 시켜줬다는 것이다. 3년의 경력만으로, 얼굴도 모르는 나를 신뢰하는 회사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비록 3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가을을 걱정 없이 보낼 것 같은 마음에 불안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출근 하루를 남기고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친한 친구가 하늘로 떠났다는 전화였다.



 



내겐 13년 된 고등학교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어릴 때 사고로 간질을 앓고 있었고, 난 어릴 때부터 심장수술을 받을만큼 건강이 좋지 않아 몸이 아픈 계기로 친하게 되었다. 친구는 얼굴도 하얗고, 늘씬한 체격에 예쁘장해서, 인기도 많았었다. 그 당시엔 워낙 여러 친구들과 몰려 다녀서, 친구가 간질을 앓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꺼려하거나, 일부러 멀리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오히려 친구가 수업시간에 갑자기 아파 쓰러지기라도 하면 앞 뒤로 막아주며 다른 친구들이나 선생님들까지 모르게 막아주곤 했었다. 그런 내 친구는 친구의 병까지 이해하고 감싸주는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부터 친구가 건강이 더 악화되기 시작했다. 비록, 건강은 더 나빠졌지만 자신의 남편과 아이를 위해서 건강해지겠다고 어려운 수술을 결심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수술이 잘못되었고, 친구가 하늘로 떠났다는 소식을 동생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당장 내일부터 출근할 생각보다는 일단, 친구에게 먼저 가는 게 우선이었다. 연락을 받자마자 장례식장으로 달려갔고, 친구의 영정 앞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날은 비가 많이도 내리던 8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소식이 닿는 친구라곤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친구가 있는 자리를 떠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일 바로 출근을 해야하는 상황까지 겹쳐있으니, 순간 여러 생각이 교차하면서 혼란스러웠다. 친구가 가는 마지막 길까지 가야하는 게 옳은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8개월간의 시간이 생각나면서 다음날 회사 출근을 포기하면 앞으로 더욱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담당자인 차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 제가 내일 출근을 해야하는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제 친구가 하늘로 갑작스레 떠났는데, 내일이 장지입니다. 친구가 가는 마지막 길이라서 함께 하고픈데 차장님께서, 허락해주시면, 하루 정도 미뤘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만약 회사 일정에 차질이 있다면, 출근을 하겠지만, 그래도 다음날 미뤄도 상관없다면 ....”



 



그러자 대뜸, 차장님께서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 친구에게 가는 게 맞죠. 하루 늦게 출근하세요. 제가 조치하겠습니다”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만약, 안되겠다고 하시면, 회사를 포기하고 친구에게 가는 게 후회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배려를 해주시는 차장님 덕에 친구가 가는 마지막 길까지도 함께 할 수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서류 하나만 보고 믿고 뽑으셨는데 갑작스런 비보에 첫 출근을 배려해주시는 차장님의 마음이 감사했다. 그렇게 친구를 잘 보내고 슬픈 마음을 짓누른 채, 첫 출근을 했다.



배려해주신 마음만큼, 자상하시고 친절한 모습으로 나를 대해주시며, 한참 어린 아래 직원인 나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시더니,



 



“ 이럴 줄 알았으면 1주일 더 쉬게 할 걸 그랬어요. 친구는 잘 보냈어요?”



 



“ 네 덕분에 잘 보내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의 3개월은 차장님의 배려로, 출발할 수 있었다. 3개월 동안 머물면서, 항상 단기직 직원이 아닌, 회사의 소속된 직원으로 소속감을 느끼게 도와주시고, 친구를 잃은 슬픔에 혹여라도 상처가 될까봐, 근무하는 동안, 업무를 맡기면서도 그 어떤 싫은 소리도 하지 않으신 차장님의 마음이 참 따뜻했다.



가혹한 서른님, 따뜻한 차장님, 잊을 수 없는 2010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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