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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Apr 24. 2023

지하철에서 만난 행운(글 게재)

좋은생각 2013년 9월

지하철에서 만난 행운

서른 셋.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주변에 친구나 지인들은 이미 결혼을 해서 짝을 이루어 모두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아직 미혼이다. 요즘엔 결혼을 늦게 한다곤 해도 주위를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짝이 없어서 외롭다거나 우울했던 적은 없었다. 심심한 것과 외로운 것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누군가 옆에 없는 건 심심한 거지 결코 외로운 건 아니라고 내 스스로 위안 아닌 위안으로 살아온 것 같다. 워낙 혼자 무엇을 하는 데에 익숙해서 그런지 좋은 영화 한 편을 보고 싶으면 극장에 가서 혼자 보기도 하고 노래가 부르고 싶으면 1인용 노래방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남들이 가장 어렵다는 혼자 밥을 먹는 일도 내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직장은 늘 계약직을 반복했다. 세상이 말하는 고학력과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나의 능력에 맞는 곳을 찾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고 그나마 맞는 곳은 늘 단기 계약직이거나 몇 년간 근무를 하면 사업이 끝나는 날짜에 나오는 곳이었다. 그렇게 지쳐있던 시절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늘 출퇴근을 반복하는 지하철. 서울에 비해 복잡하지 않은 대전 지하철은 이용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자리가 있어도 늘 서서 가곤 했는데 출입문 가까이에 서서 음악을 듣곤 했다. 그러다가 출입문 유리창에 비춰지는 내 모습을 점검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쭉 둘러보면 뮤직 비디오를 보는 기분이 들어 괜히 더 낭만적이고 안정되는 내 공간 같고 좋았다.


그날은 어깨가 허리쯤까지 내려 올 만큼 마음이 힘들었던 날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중압감도 있고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그 시점에서 면접을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한참 유리창에 비치는 나를 보는데 안쓰럽기도 하고 한심해보이기도 하고 못난 마음이 여기저기 튀어 나오는 찰나 누군가 나를 툭툭 쳤다. 50대 쯤 보이는 아주머니였는데 환하게 웃으며 손에 든 걸 내 보였다.

“ 아가씨 이거 줄까?”

그것은 네잎클로버였다. 이미 옆 자리 승객들은 손에 쥐고 있었고 몇 개가 더 남은, 테이프로 감싼 네잎클로버는 이미 내 손 위로 건너 왔다.

“ 아...감사합니다.

별 거 아닌 네잎클로버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게는 행운이 아닌 행복이었다. 그저 환한 웃음으로 낯선 사람에게 행운들을 나눠 주려는 아주머니의 고운 맘 덕에 유리창에 비치는 못난이 나는 금세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지하철 속에서 이런 사소한 행복이 내게도 오다니. 그로부터 몇 달 후.


지갑에 넣어 두고 다닌 그 네잎클로버를 꺼내어 다시 힘을 얻기 위해 열었다. 그런데 뭔 가 이상했다. 네잎클로버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네잎클로버가 아니라 다섯잎클로버였다. 순간, 무의식적으로 네잎클로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때 그 지하철에서 만난 행운, 행복이 지금도 힘들고 어려운 삶을 반복하는 내게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클로버가 내 지갑 속에서 숨을 쉬고 있지는 않지만 그 순간을 찍은 사진 한 장을 소중하게 보관중이다. 아주머니의 환한 미소와 함께 했던 다섯잎클로버의 체온은 내 가슴 속에 영원할 것이다. 지금도 지하철을 타면 혹시나 주변을 둘러본다. 누군가 날 툭툭 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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