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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Jun 06. 2023

어여뿐 혜원씨

SNS 1호 고객님에서 손꼽는 절친으로!

   



엊그제 내 인생에 위기라면 위기가 찾아왔다. 우울할 게 뻔한 내가 동굴로 들어갈 걸 알기에 언니 대전으로 갈게요! 갑자기 쏘카를 빌려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고속도로 만큼 빠른 그녀가 내게 왔다.


혜원 씨는 모리 성지 순례를 한다며! 우리집- 호캉스- 1박2일 - 내가 다니는 사무실 코스로 서울로 돌아갔다.

한 시간 전에 말이다!



몇달 전!


기차 역에서 내리자마자 휴대폰으로 나를 찍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내가 내리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찍힐 때마다 쑥스러우면서도 휴대폰 화면에 들어가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나중에 예쁘게 편집하여 SNS에 올려줄 걸 알기 때문이었다. 피사체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필시 어떤 사진이든 영상이든 예쁘게 나올 거라는 확신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그녀는 나에게 검증을 받은 사람이기도 했다.


 미션을 달성하기라도 한 듯 해맑게 웃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혜원. 얼굴도 이름도 어여쁜 혜원 씨는 언제나 나를 그렇게 다정하게 맞이해주었다. 그날은 우리의 네 번째 만남이었다.      


 대전에서 서울로 혜원 씨를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니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가슴이 콩닥 거렸다. 내가 살지 않는 곳에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인지 모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혜원 씨를 어디서 어떻게 만났을까.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해볼까 한다.     


 우리의 시작은 인스타그램이었다. SNS라는 곳에서 인연이 되는 것이 요즘 같은 세상에선 흔한 일이지만, 혜원 씨는 내게 조금 각별했다. 우리는 #암환자 라는 해시태그로 연결된 사이였다.


 해시태그로 내 인스타그램을 팔로우 하며 나를 천천히 지켜보기 시작한 혜원 씨. 혜원 씨는 당시 남자 친구가 암으로 투병 중이었고 남자친구의 보호자로서 검색을 하다가 나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막 유방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하며 인스타그램에 기록을 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벌써 5년 전 일이다.   

  

  그때만 해도 나에게는 내일 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혹시 모를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아있는 나의 기록을 시작했다. ‘암’이라는 어둠을 홀로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내가 글(피드) 하나를 올릴 때마다 팔로우가 늘기 시작했다. 혼자 항암을 하러 가는 모습, 항암 부작용으로 구내염이 찾아와 울면서 밥을 꾸역꾸역 먹는 모습, 외래에 갈 때마다 느끼는 감정들, 병동에서 환자들과 생활하는 모습, 내일이 오는 게 두려워 공포에 떠는 모습까지 날 것 그대로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그럴 때마다 먼저 경험한 암 환우들이 나의 일상을 공감해주며 내게 쪽지로 용기를 주었다. 이미 내가 걷고 있는 길을 걸어본 사람들의 증언들은 충분히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아프다고 말하면 덜 아파지기 시작했고 슬프다고 말하면 눈물이 멈춰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서 나의 투병기록은 어둠에서 빛으로 점점 달라졌다. 긴긴 터널을 통과했을 때 내 앞에 서서히 펼쳐지는 햇살처럼 나는 그렇게 눈이 부시게 달라져가고 있었다.     


그 찰나에  웹툰 '아만자' 작가  김보통님을 해시태그로 올린 계기로 혜원 씨가 나를 보았고,  아픈 와중에도 일상을 찾아가려고 애쓰는 나를 많이 좋아해주었다. 재능이 많고 능력 있는 미술학도인 젊은 청년의 여자 친구인 혜원 씨는 늘 고민했다. 어떡하면 남자 친구가 기운이 날까 어떡하면 남자 친구도 이 언니처럼 밝게 지낼 수 있을까 그렇게 나의 인스타그램을 보여주며 투병 중에도 이렇게 밝게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분이 있어. 라며 나를 알려준 것이다.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고통이 찾아왔을 때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금방 털고 일어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바닥을 짚을 힘조차 없어 무너지는 사람도 있다. 또 시간이 지나야만 서서히 일어날 수 있는 사람, 끝까지 일어나기 힘든 사람도 있다. 그러기에 같은 고통 속에서 정지된 화면처럼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남자친구에게 나를 소개해 줬을 때는, 동기는 응원이었을 테지만 채찍으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남자 친구는 여자 친구 혜원 씨 말에 관심을 보이며 나의 인스타그램을 같이 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남자 친구도 나를 통해 힘을 얻었다고 한다.     



병원 가는 데 시간제한이 없는 직업을 찾다보니 영업직으로 직업을 바꾸어야겠다고 결심했고 지인의 도움으로 보험설계사 교육을 신청하게 되었다. 아픈 몸으로 교육을 받아 시험 준비를 하고 높은 점수에 만족해하는 내 모습에 혜원 씨는 이렇게 말했다.     


 모리님이 설계사로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제가 모리님의 첫 고객이 되겠습니다. 혜원 씨는 그 약속을 지키게 되었고, 나의 첫 번째 고객이 되어 주면서 우리는 인스타그램 친구이자 고객님과 담당 설계사로 첫 만남을 갖게 된 것이다.     


 5년 동안 나는 많이 성장했다.


서울에 내 편이 있다는 것, 거기에 혜원 씨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살아가는 데 충분히 힘이 되고 있다. 어떡하면 지하철 동선이 짧은지 알아오고 서울의 맛집을 뽑아와 내게 선택지를 주면서 나의 팬이라고 말하는 혜원 씨!      


 남자친구 이야기, 직장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시시콜콜 쫑알쫑알 들려주며 삶을 나누고 있는 이 만남이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샵이라는 해시태그가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과 연결되어 내게 통째로 보내주고 있다는 것은 기적이 아닐까.     


 사람의 만남과 만남은 언제 어떻게 시작될지 모른다. 지금, 누군가 방금 전에 내가 적은 해시태그로 나를 클릭하여 나의 인생을 둘러볼지도 모른다. 그러다 잠잠히 나의 인생에 들어올 것이다.      

 다시, 대전으로 가는 기차 역, 나는 재빠르게 지정된 내 좌석에 앉았다. 앉자마자 나의 시선에 혜원씨가 들어왔다. 우리는 유리창 사이로 서로를 보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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