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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Apr 27. 2023

파란만장 미스김의 계약직 이야기(feat 미생)

잘난 사람들 틈에 있던 시절 써둔 기록

 20대 후반부터 늘 계약직 사원으로만 근무했던 나에게는 반복되는 입사와 퇴사가 익숙한 일이었다. 물론, 나도 정규직으로 근무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더 나이 먹기 전에 방향을 바꾼 것이 주로, 공무원의 업무를 보조하는 사무보조직이었다. 사실, 계약직, 정규직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사회에서는 떠들썩하게 청춘들의 아픔을 정규직과 계약직으로 맘대로 구분 지어 그저 너희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위로로 다독였지만, 나는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상관없이 그저 ‘일’을 하는 게 우선이었다.


 계약이 끝나면 바로 구직활동을 하고, 날 필요로 하는 곳에 바로 계약을 한 것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나는 지금까지 계약직 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여러 기관에서 다양하게 근무하다 보니, 일하는 환경이나 직원분들의 성향은 천차만별이었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3년을 근무하면서 따뜻했던 곳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상처로 깊숙이 오래 자리 잡은 곳도 있었다. 이것은 어느 직장인이든 겪는 문제이기 때문에 나에게만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계약 만료로 퇴사한 모 기관에서 겪은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몇 년 전, 케이블 방송에서 높은 시청률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드라마 ‘미생’을 많은 사람이 기억할 것이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바둑만이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주인공 ‘장그래’가 프로 입단에 실패한 후, 계약직 사원으로서 살아가는 애환을 그린 드라마이다. 내가 속한 사무실에서도 드라마 ‘미생’이 자주 회자되곤 했었다. 나를 대하는 상사들은 모두 자신이 ‘오 과장’인 듯 자부심을 드러냈고, 나 역시 ‘장그래’라는 마음으로 초심을 잃지 않으려 매일 다짐했다.


 당시에 어제는 칭찬을 하고, 오늘은 무언가 개운치 않은 말씀을 하는 상사 한 분이 계셨다. 처음엔 ‘오 과장’처럼 따뜻했다. 입사 후, 첫날부터 자리는 불편하지 않는지, 업무는 필요 이상 많지는 않은지, 월급이 생각보다 적지는 않는지, 혹시라도 회사생활 하면서 어려움이 생긴다면 그때그때 얘기해주기를 정중히 부탁하셨다. 그 모습에 감동했고, 좋은 상사분 밑에서 일할 수 있는 기쁨에 내가 더 성실하게 업무를 봐 드려야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입사하기 몇 달 전, 보내놓은 공모전 소설이 당선되는 영예를 안았다. 상은 작은 상이었지만, 규모가 작지 않아 기쁜 마음에 맞은편 자리에 앉은 여직원분과 수상 소식을 나누었다. 근무한 지 얼마 안 돼, 사이가 낯설 만도 한데, 아래 직원인 나의 수상 소식에 함께 박수를 쳐주었다. 부끄럽기도 했고,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기쁨에 감사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수상소식이 계약만료가 되는 퇴사일까지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줄 몰랐다.


 “경림 씨에게 그런 재능이 있었어? 와! 대단한데?”

자신이 오 과장인 줄 착각을 하는 상사의 말이었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말에 어색한 웃음으로 일관하는 나를 힐끔 보더니 모두가 둘러앉은 원탁에서 급기야 연설하기 시작했다.

“경림 씨!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슬슬 낯익은 불안이 찾아들었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이건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폭풍 전야처럼 먹구름이 몰려오는 소리였다. 대개, 그렇게 시작하는 말은 늘 끝이 안 좋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몇 초의 정적이 흘렀고, 역시나 나의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그 상사는 옆에 앉은 다른 상사에게 나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사람은 역시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돼요. 안 그래요?”

순간, 나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사람은 역시 겉. 모. 습으로 판단하면 안 돼요!’ 무슨 뜻일까? 글자 한 자 한 자, 바닥에 놓고 생각했다. 나의 겉모습은 어떻고, 그 겉모습에 어떤 판단을 내렸기에 당선 소식 하나가 이리 평가가 되느냔 말이다. 내가 일개 계약직이라서? 계약직은 정규직에 비해 능력이 없으니깐? 아니면 내가 볼품없게 생긴 외모여서? 별의별 상상을 넘어 망상, 피해의식까지 다 끄집어내기라도 한 듯, 머리가 복잡해졌다. 입사 초기에 나를 격려하고 칭찬하던 사람이 겉모습을 운운하는 사람이라니. 도대체 왜? 라는 생각을 하다가 그러면서 가볍게 넘긴 그날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날은 나이가 제일 많으신 여직원분과 짧은 대화를 나누던 날이었다. 내가 입사한 지 일주일이 안 되던 날이기도 했다. 계약직 여직원이 나 혼자였고, 모두가 정규직 직원분들이었는데 식사를 마친 다음, 나를 남겨놓고는 우르르 커피를 마시러 가는 모습에 내가 끼어서는 안 되는 자리라고 여겨 묵묵히 혼자 사무실에 앉아있었다. 조금 외롭다 느낄 즈음, 먼저 들어오신 여직원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예전에는 뭐했어?”

“대부분 계약직으로 공공기관에서 일을 했어요.”

“부모님은 뭐하셔?”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는 것은 관심이 있는 걸로 여겨 나는, 묻는 것에 흔쾌히 일일이 대답을 해드렸다. 그러다가 가족이 무얼 하는지 궁금하셨나 보다. 내 위로 언니 직업을 물으셨다.

“언니는 뭐해?”

“여고 선생님이에요”

그러자, 그분이 씨익 한 번 웃으시더니 내게 그렇게 말을 했다.

“부모님이 언니에게만 투자하셨구나!”

그때는 그 말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몰아서 생각하다 보니 내가 계약직이 아니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에 내 자신이 몹시도 초라하고, 마음이 아려왔다.

 힘들게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정규직이라면, 노력하지 않아서 얻은 결과가 계약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이 나보다 더 공부를 열심히 했고, 수많은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자리가 정규직인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만, 똑같이 공부하지 않고, 수많은 경쟁 속에 참여하지 않았다 해서, 내가 열심히 살지 않은 건 아니라고 호소하고 싶었다.

 3일을 근무해도, 나는 계약직 사원으로서 부끄럽게 여긴 적이 없었고, 소속감을 느껴야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어디에 있든지 소속감을 제일 먼저 가졌다. 그런데,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회식에서 열외 되고, 정규직 사원들과의 단합에서 제외되는 아픔은 어느 정도 넘길 수 있었지만,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일을 하고 있는 내게 빨리 직업을 가지라는 정규직 사원들의 걱정스런 시선이었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내게 직장을 빨리 구하라는 이 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겉모습으로 나의 재능이 평가가 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드라마 ‘미생’속에 ‘장그래’를 다독여주면서 왜 현실 속에 ‘장그래’는 냉정한 시선을 견디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한 번 외치고 싶다. 나는 계약직이다. 그렇지만, 한 번도 계약직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 계약직 사원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세상 곳곳에 어느 하나의 손이 필요치 않는 곳이 없다. 밤하늘에 별이 혼자서 빛날 수 있었을까? 어둔 밤하늘이 없었다면, 반짝이는 별을 우리가 보고 살 수 있었을까? 별은 스스로 빛날 수 없다. 밤하늘과 별이 동시에 존재해야만 아름다운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다만, 나의 구역을, 그의 구역을 서로가 인정해준다면, 정규직, 계약직을 구분지어 사람의 인생을 판다하지만 않는다면, 2016년을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청춘들이 왜 아프겠으며,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구하지 않은 구직단념자들이 왜 늘어만 가겠는가.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서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라고 훈계하기 전에,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주고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세상이 우리에게 와주길 바란다.

 

 외로웠던 시절, 나를 다독여주며 칭찬해주신 어느 직원분의 말이 떠오른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목표예요. 내가 무엇을 꼭 하겠다가 아니라, 내가 올해는 이것에 도전해보겠다. 이것을 해내면 또 이것을 이뤄보겠다, 라는 목표, 즉 꿈을 잃지 않는 거요.”


그래!

나는 계약직이다.

하지만, 나는 목표가 있고, 꿈이 있는 계약직이다.

‘장그래’를 뛰어넘어 ‘오 과장’자리에 앉는 게 목표가 아니라,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일을 마칠 때까지 해내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내게도 빛나는 별이 내 가슴에 반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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