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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Apr 13. 2018

6. 레이디버드 대사  

일상적이면서 시적인 영화 레이디버드 속 대사들

* 이 글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Lady Bird : I just wish... I wish that you liked me  / 난 그냥 엄마가 날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 

Marion McPherson : Of course I love you. / 물론 널 사랑하지 

Lady Bird : I know you love me, But do you like me? / 나도 알아. 근데 나를 좋아하냐고


 

영화 레이디버드의 대사는 일상적이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한 소년의 성장 순간들을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하게 다룬 영화라는 점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물론 레이디버드가 '소년'의 이야기가 아닌 '소녀' 즉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기존 남성 서사 중심에서 벗어난 큰 미덕을 보이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엄청나게 특별한 영화다!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신기한 건, 두 번째 관람에서 나는 첫 번째 관람과는 완전히 다른 감정을 느꼈다는 점이다. 두 번째 관람에서는 줄거리를 알고 있기에 대사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대사를 곱씹을수록 대사가 너무 좋았고 좋은 만큼 마음에 와 닿아 참 많이 울었다. 직접 극본을 쓰고 연출한 그레타 거윅이  '사실적' '일상적'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대사 하나하나에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게 느껴졌다. 


 가디언* 인터뷰에 따르면 영화 레이디 버드의 대사 중에는 단 한 줄도 즉흥으로 들어간 것이 없다고 한다. "I like" 나 "you know" 같이 흔히 쓰일 수 있는 수식어도 전혀 추가되지 않았다고 하니, 이 모든 대사의 리듬은 그레타 거윅이 철저한 계획과 의도 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 일상적이면서 시적으로 들리는 언어들  "Sounds quotidian but poetic"

 

 그레타거윅은 가디언과의 인터뷰* 에서 본인이 지향하는 대사의 느낌을  "sounds quotidian but poetic" (일상적이면서 시적으로 들리는)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영화 레이디버드의 대사들은 사실적이고 위트 있어 처음 들었을 때는 마냥 웃지만, 대사를 곱씹을수록 운율이 느껴진다. 



Father Leviatch: Lady Bird, is that your given name? / "레이디 버드" 그게 학생 이름인가?

Lady Bird : Yeah / 네 

Father Leviatch: Why is it in quotes? / 인용부호는 왜 붙였지?
Lady Bird :
 I gave it to myself. It’s given to me by me. / 제가 직접 지은 이름이거든요 


  한국 대사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간결함에 따른 운율이 원 문장에서는 느껴진다. "I- 내"가 "to myself- 나에게" 이름을 주었다는 것. 이 이름은 "to me- 나에게" "by me-내가" 준 것이라는 것. 같은 의미이지만 '나'와 '내 이름'을 주어로 한 다른 두개의 문장을 이어 말함으로써 화자의 발화 의도가 강조된다. 실제로 시얼샤 로넌이 위 문장을 발음할 때에도 "to me" "by me"를 천천히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사를 소리 내어 말할 때마다 나는 "레이디버드"라고 스스로 이름 짓는 크리스틴(레이디버드)의 당당함에 매료된다.  




2. 이게 내 최고 모습이라면? "What if this is the best version?"


 레이디버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고 요구한다. 어려운 집안 사정을 이유로 엄마는 시립대를 가라고 말하지만 레이디버드는 엄마 모르게 동부 대학에 지원서를 넣는다.  마음에 드는 남자와 가까워지기 위해 절친을 혼자 두고 평소 본인이 흉보던 친구와 다닌다. 레이디버드의 절친 줄리는 소리친다. 

You can't do anything unless you're the center of attention! 
넌 완전 구제불능 관심종자야!

 하지만 레이디버드는 주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원하면 한다. 책임감, 신뢰, 가능성 등을 버리고서라도 자신이 원하면 실행하는 여성. 그간 대중문화에서 자주 다루어지지 않는 여성 캐릭터다. 


Lady Bird What I’d really like is to be on Math Olympiad. / 제가 원하는 건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는 거예요 
Nun: But math isn’t something you’re terribly strong in. / 하지만 너는 수학을 잘 못하잖니
Lady Bird :
 That we know of yet / 지금으로선 그렇죠


 레이디버드의 고집은 성공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만약 내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떤 일을 추진했는데 실패했다면, 나는 심각한 자기혐오에 빠졌을 것이다. 물론 레이디버드 또한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레이디버드는 잠시 숨을 멈추고 나직이 묻는다. 


Marion McPherson: I want you to be the best version of yourself/ 난 네가 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이 되기를 바라는 거야 
"Lady Bird" Christine :
 What if this is the best version? / 만약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레이디버드는 감독 그레타 거윅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알려져 있지만, 그레타 거윅은 레이디버드와 자신이 유년시절의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면서도 캐릭터 특징은 다르다고 말했다. 나는 레이디버드와 그레타 거윅이 공유하는 정서 중 하나가 "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믿고, 도전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레타 거윅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레이디버드 극본을 쓴 후 자신이 처음으로 연출을 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I thought, Yes, there is more to learn, but you are not going to keep learning it by not doing it. You will only now learn the next part if you go ahead and do it.”




3. 인물조차 알지 못하는 우연한 아름다움 :  Something that maybe the character doesn’t even know is as beautiful as it is.


 내가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레이디버드가 엄마에게 나를 좋아하냐고 묻는 장면이다. 



Lady Bird : I just wish... I wish that you liked me  / 난 그냥 엄마가 날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 

Marion McPherson : Of course I love you. / 물론 널 사랑하지 

Lady Bird : I know you love me, But do you like me? / 나도 알아. 근데 나를 좋아하냐고


 아마 레이디버드는 자신이 얼마나 무거운 말을 했는지 모를 것이다. 엄마에게 화가 나 평소 엄마에게 느꼈던 감정 - 엄마가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내뱉었을 것이다. 엄마는 당연하게 "널 사랑하지"라고 대답하지만, 레이디버드는 love와 like가 다르다는 듯이, "나를 좋아해?"라고 묻는다. 그리고 영화 내내 한 번도 딸에게 물러서지 않았던 엄마는 너무 당황스러워하며 답변을 하지 못한다.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그레타 거윅은 인물조차도 알지 못하는 문장이 우연히 아름다움과 마주치는 순간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흔히 'love'가 'like' 보다  더 깊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당연히 'love'하는 부모 자식 관계와 우연히 마주쳤을 때, 우리는 깜짝 놀라게 된다. 나는 내 부모를 좋아하나? 우리 부모는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걸까. 영화 중반 레이디버드가 "엄마가 나를 싫어해?"라고 아빠에게 묻는 장면이 있는 데, 이 장면에서 "hate"의 반대말이 'love"가 아니라 'like'임을  짐작할 수 있다.  



 

 레이디버드의 대사들을 일상에서 가끔씩 조용히 소리 내어 말하곤 한다. 마냥 불안하고 자신이 없을 때,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을 때, 그런 순간 레이디버드의 문장들을 나에게 힘이 되어준다. 조금 더 당당해져도 좋다고, 이게 내 최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가끔은 괜찮다고. 레이디버드의 문장이 우연히 내 일상과 마주치는 아름다운 순간들이 많아지기를. 



* 가디언 인터뷰  https://www.theguardian.com/film/2018/feb/04/greta-gerwig-lady-bird-interview-metoo-oscars#img-4  한글 해석은 https://tomhardy.postype.com/post/1590787 참고했습니다. 해석자분 감사해요. 

**뉴욕타임스 인터뷰 : https://www.nytimes.com/2017/11/01/magazine/greta-gerwigs-radical-confidence.html

***사진은 모두 다음 영화 소개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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