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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Apr 16. 2018

여자들은 집에서 편하게 놀기만 한다고요?

일상을 가능케하는 숨겨진 여성들의 노동을 조명하다 - 히든 워커스 

휴일 없이 일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일, 
연봉 3745만 원의* 노동을 하지만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일,
여성들은 오늘도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고 있다. 


어릴 적 나는 영화나 드라마 속 돈 많은 주인공들의 아침 시간이 부러웠다. 주인공들은 큰 창의 햇살에 눈 비비며 잠을 깨고 샤워를 한다. 샤워 후 빵과 신선한 과일, 커피 한 잔으로 식사를 마친 후 옷장 속 날씨와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출근한다. 이렇게 아침을 맞이한다면, 하루 동안 힘든 일이 있어도 다 이겨 낼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이게 간단한 식사일까

 

나는 몰랐다. 해가 잘 들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창문을 청소해야 하고 상쾌한 샤워를 위해선 샴푸/린스/바디워시/수건을 수시로 채워놓아야 한다는 걸. 신선한 과일과 빵을 위해선 전날 장을 봐야 하고, 단정한 옷을 위해선 세탁-건조- 다리미질이라는 끔찍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간단하고 산뜻한 일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잘 입고(의)/잘 먹고(식)/잘 살기(주) 위해서 누군가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만약 당신이 지금 힘들게 움직이지 않고 잘 먹고, 입고, 자고 있다면 누군가 당신의 노동을 대신해주고 있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자. 오늘 아침 당신이 입은 옷은 누가 빨아줬고 당신이 손쉽게 꺼내먹은 음식을 장보고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인간은 과일 하나 편하게 먹기 위해서도 누군가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매우 귀찮은 존재들이다. 


"며느라기" 웹툰 일부 발췌 @https://www.instagram.com/min4rin/?hl=ko


 휴일 없이 일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일,  연봉 3745만 원의* 노동을 하지만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일, 바로 여성들의 일이다. 여성들은 오늘도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고 있다. 여성들의 노동은 한 개인의 삶을 더 나아가 사회를 지탱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비생산적'인 일이라며 무시당해 왔다. 여성들의 노동은 중요한 남성들의 일을 돕는 부차적인 일이자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비가시화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집에서 놀고먹는다'라는 식으로 폄하당하기도 한다. 


너네 엄마는 집에서 놀고먹고 편하게 사는 거지! 



 코리아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2018.04.05~06.16) "히든 워커스" 기획전은  이처럼 주변에 항상 존재했지만 주요 관심의 대상은 되지 못했던 '여자들의 일'이야기를 조명한다** 지하 1,2층에 구성된 전시에서는 여성들의 돌봄/감정/가사 노동을 다룬 다양한 전시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 비 가시화되었던 여성들의 노동을 예술을 통해 전면에 내세웠다. 그녀는 본인이 평상시 하던 가사노동이 곧 예술활동임을 선언하며 ** 미술관에서 걸레질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아이를 낳고 집안을 돌보면서 도저히 예술활동을 지속할 수 없게된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는 삶을 유지(maintencance)하면서 예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 하트포트 워시:닦기/자국/메인터넌스 @올댓아트

 임윤경 작가는 <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0-3세의 아이돌보미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커리어우먼이라고 사회에서 칭송받는 여성이 아이를 낳게 되면, 또 다른 여성의 돌봄 노동을 필요로 하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 미국의 경우 이 역할은 대부분 아시아계 여성들이 맡는데 그들의 노동은 결코 쉽지 않다. 한시도 쉬지 않고 아이를 돌봐야 하고, 아이와의 유대관계를 적절히 유지하는 것 또한 힘들다. '돌봄'에 포함된 감정노동과 높은 업무 강도로 인해 고민했고,  동시에 아이의 웃음과 몸짓 하나하나에 기뻤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출처: Gallery 175 네이버 블로그


 전시를 보고 나오는 데, 건물 청소원분이 새하얀 유리창을 닦고 계셨다. 여성분은 열심히 문을 닦으시다가 우리가 나오게 문을 열어주셨다. 그분이 열어주신 문으로 나오면서, 하루에 내가 마주쳤던 건물 청소원분들 - 대부분 여성이며 눈에 띄지 않게 다니시는- 이 떠올랐다. 그들 또한 히든 워커스로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면서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는 여성들이었다. 사회에 존재하지만 주목받지 못한 채 무시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 위의 소개된 작품 이외에도  흥미로웠던 영상/사진/글 작품들이 참 많았으니  이 전시에 부디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으면 좋겠다. 




* 여성신문 기사 발췌 http://www.womennews.co.kr/news/111351 

** 히든 워커스 전시 팸플릿에서 가져온 설명입니다. 

*** 사용된 사진은 직접 찍은 사진들과 미술관 공식 포스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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