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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Apr 09. 2018

5. 영화 소공녀의 미소

가난한 우리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해선

*아래 글에는 영화 '소공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가난하다.  나는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2018년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은 이유도 우리가 지지리 가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작은 것(핸드폰 케이스, 직접 만든 차, 향초)들 뿐이기에, 그 작은 것을 신중하게 소비한다. 나는 큰 집을 가질 가능성이 없기에 작은 집에서도 폼나 보일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한다. 동시에 나는 내 경제적 미래가 두렵다. 대기업에 취직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소수의 친구들이 부럽다. 그들은 큰 집에서 멋진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하며 작은 것들을 때로는 큰 것을 나보다 편하게 소비할 수 있을 테니까.



좋아하는 것들이 비싸지는 세상 속에서 삶의 소소한 행복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집’을 포기한 주인공 ‘미소’의 모습은 “좋아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집을 버리는 ‘미소’가 사람들에게 작은 카타르시스를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전고운 감독의 말처럼 관객들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영화 소개 일부 발췌)

 

나는 위의 소공녀 영화 소개글을 읽으며 불평했다. "나는 소소한 행복을 지키려고 집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좋아하는 것을 위해 집을 버리는 '미소'를 보면 너무 슬플 것 같았다. 집을 포기할 정도로 내몰리는 청년의 가난을 바라볼 수 있을까. 하지만 주변에서 너도나도 추천하기에 또 궁금은 하고... 결국 혼자 터벅터벅 보러 갔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무척 좋았다. 영화가 담은 N포 세대의 현실과 독보적인 캐릭터들도 인상 깊었지만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미소가 주변인들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미소는 오르는 물가 속,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를 지키기 위해 '집'을 포기하고 대학시절 밴드 동아리 친구들의 집을 전전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미소는 하룻밤 재워줄 수 있는지 묻는다. 영화 초반 나는 미소를 보며  당황했다. 미소는 부끄럽지도 않나? 어떻게 저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지?



 첫 번째로 찾아간 친구 문영은 잠자리가 예민하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그런 문영에게 미소는 웃으며 말한다. "괜찮아. 얼굴 보려고 왔어" 어떠한 부끄러움과 실망감도 없이 미소는 오랜만에 친구의 모습을 봐서 좋았다는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선배였던 록이와 정미는 미소를 재워주지만 미소의 선택을 함부로, 무례하게 평가한다. 미소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라며 "네가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그래" "염치없다고 생각하지 않니?" "상식적으로" 등의 말들을 쉽게 내뱉는다. 미소는 자신의 선택을 함부로 판단하는 말에는 당당히 맞서고 그들의 집을 나온다. 


 아마 나라면 남의 집을 전전하는 게 내 '선택'이 아니라 나의 현재 '위치'를 보여준다고 생각해 부끄러웠을 것이다. '누구는 대학 때 그렇게 놀고도 저렇게 잘 살고 있구나, 누구는 저렇게 불행하네 안됐다' 라며 끊임없이 나 자신과 그들을 비교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염치없고 철이 덜 들었다고 비난할 때 나는 아무 대꾸도 못했을 것이다. 아니 나라면 애초에 월세를 택하고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했겠지.


  미소는 자신의 삶에 대해 확고한 원칙이 있으며, 그 원칙을 지키는 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솔직히 요즘 집세도 오르고 담뱃값도 오르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잠시 집을 나왔지. … 이게 그렇게 이상한 이야기인가? (영화 소공녀 대사)

 

미소는 집에서 지내는 편안함보다 자신의 생각과 취향을 중시한다. 물론 집과 담배 위스키를 모두를 지킬 수 있으면 좋겠지만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도저히 방법이 없다. 따라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집'을 잠시 나왔을 뿐이다. 미소는 정말 '집'이 필요하고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그들을 찾아갔기에, '집'을 내어주면 고마워하고 아니면 '친구' 얼굴을 보는 것에 만족해한다. 친구 집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친구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일상을 영위한다. 그 모든 과정은 그 누구도 해치지 않은 채 조용히 이뤄진다. 하지만 선배 정미는 그런 미소를 향해 "염치없다"며 쏘아붙인다. 미소는 "나는 누군가가 함께 지내는 게 늘 좋아서 네가 불편하게 느낄 줄 몰랐다"라는 정확한 말로 자신을 해명하고 선배가 주는 돈 100만 원도 받지 않은 채 바로 집을 비워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 가장 예의가 바르며 성숙한 선택들을 해나가는 건 미소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이혼한 후배 대용), 친구가 힘들어하는 것을 도와주지만(음식을 못해 시댁에서 구박받는 친구 현정) 함부로 그들의 삶을 동정하거나 위로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옆에 있으며 함께 웃고 슬퍼할 뿐이다. 나는 미소가 현시대에 필요한 윤리의식을 갖춘 인물이라고 느꼈는데 이는 전고운 감독의 의도와 연결된다. 감독은 미소 캐릭터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향과 정반대로 사는 인물일지라도 그만의 가치가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만들어 졌다고 밝힌바 있다. 


 경제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나는 언제부턴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두려워졌다. 타인과 나의 경제적 위치를 비교하고 부끄러워하고, 나보다 어려운 친구를 함부로 동정할까봐 조심했다. 보고 싶은 친구가 떠올라도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 벌어질까봐 두려워 연락하지 못했다. 만약 내가 미소처럼 내 삶의 선택들에 조금 더 당당해 진다면 나는 보고싶은 그들에게 먼저 연락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나만의 삶의 기준과 신념자체가 없구나.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나는 미소가 정말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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