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정범 버블패밀리 말해의사계절
내가 어떤 행위 주체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나 스스로 선택한 적 없는 사회 세계에 의해 구성된다는 사실로 인해 열려 있다 _ 주디스 버틀러
지난 1주일 동안 인디다큐 페스티벌에서 2편, 인디스페이스에서 1편의 영화를 보았다. 세 편의 영화 모두 국가가 어떻게 개인의 일상을 어떻게 뒤흔들어 놓았는지 관찰한 영화였다. IMF 외환위기, 밀양 송전탑, 용산 참사 사건을 다룬 영화들을 보면서 나는 오랜 시간 그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한 사람들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라는 걸 느꼈다. 사건의 모든 층위들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기존의 이분법을 뒤집고 새로운 희망을 어떻게든 모색하려는 제작진들의 노력이 눈부셨다.
영화를 보았던 시간들은 "모른다는 사실을 철저히 알아가는 과정" (김혜리,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 p266 소제목 발췌)이었다.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은 그저 사건의 일부였다는 것, 더불어 내 삶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여겼던 사건들의 파장이 내 곁을 맴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타깝지만 그 사건들은 내 문제가 아니니, 멀리서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충분할 거라고 믿었던 내가 바보였다. 나는 내 의도와 상관없이 어떻게든 그 사건들과 연계되어 있었다. 아니, 우리는 늘 연결되어 있었다.
1. 공동정범 (감독: 김일란, 이혁상 / 2018년)
소개: https://www.youtube.com/watch?v=PvuiiBYgnYk
나는 분명 저 물줄기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2분여의 시간 동안 사람을 죽일 것 같은 물줄기를 집중해서 보는 것은 공포였다. 첫 장면에서부터 알았다. 나는 용산 참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사상한 철거민분들 중에는 용산 분들이 아닌 타 지역 철거민연대에서 나오신 분들이 더 많았다는 것. 오로지 망루 제일 위에 있었다는 이유로 그들이 ‘공동정범’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아직도 왜 불이 났는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영화를 통해 내가 오랜 기간 다녔던 학교 바로 옆에서도 철거민 투쟁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 너무 바로 옆이어서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비정상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학교 바로 옆 식당이 강제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리고 정말 부끄럽게도, 나는 그곳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에 살고 싶어 했다. 아마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용산 참사가 일어났던 바로 그 자리에 들어설 주상복합 아파트가 완공되었을 때 "아 여기서 살고 싶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2. 버블 패밀리 (감독 마민지 / 2017년)
소개 : http://www.sidof.org/program/movie_view.php?mv_idx=2154&cate_idx=185&pro_idx=&size=10
이 영화는 나의 이야기였다. 살면서 언제쯤 내 집을 가질 수 있을까? 왜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집으로 노후를 대비하려고 하시는 걸까? 이런 질문이 들 때마다 나 자신의 무능함과 부모님의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탓하곤 했다. 영화는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사회 구조 상 ‘지는 게임’을 하도록 정해진 것 같다고. 네가 무능해서 기본적인 삶의 조건도 갖추지 못하는 게 아니고, 너희 부모님이 멍청해서 그렇게 부동산에 집착하는 게 아니야. 우리가 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 너에게 보여줄게.
나는 영화가 불안한 마음으로 끝을 낸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건 현대사회가 낳은 필연적인 감정이라는 걸 영화를 보고 난 후 알게 된다. 우리는 계속 불안하고 위태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의 무능함 때문만은 아니라고, 우리 이 영화를 같이 보자고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3. 말해의 사계절 (감독 허철녕 / 2017년)
소개: http://www.sidof.org/program/movie_view.php?mv_idx=2204&cate_idx=186&pro_idx=&size=10
말해의 사계절은 말해 할머니의 시선을 통해 국가의 폭력이 한 개인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말해 할머니는 송전탑을 지키는 철조망 때문에 철조망 사이로 부모님 성묘에 소주를 뿌려야 하고, 경찰들을 막다가 팔이 부러진다. 경찰들은 문 앞을 끊임없이 지나가며 사이렌 소리는 계속 울리고 주민들은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싸운다. 그리고 이 와중에서도 말해 할머니는 몸을 움직여 밭에 가고, 감을 딴다.
밀양은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른 결과이며 찬성하는 주민들도 있지 않냐고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송전탑이 얼마나 위험한지 주민들이 정확한 정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사인했고, 송전탑 건설 이후 자기장에 따른 인근 주민의 암 환자 증가는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대도시의 전력 공급을 위해 밀양과 같은 시골에 유해물을 설치하려는 시도 자체가 님비(NIMNY)이며 대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값싸게 많은 전기를 쓰는 만큼 누군가는 일상이 무너진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 부끄러웠다.
*글에 사용된 모든 사진은 인디다큐페스티벌 홈페이지와 공동정범 영화 트레일러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