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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Mar 28. 2018

4. 가수 장재인

정확한 사랑의 고백

 장재인은 2011년 데뷔이후 자신의 모든 앨범 수록곡, 참여한 드라마 OST 및 김예림, 015B 등의 유명 아티스트의 곡들까지 직접 작사했다. 대중에게는 슈퍼스타 출신독보적인 음색의 소유자로 유명할 테지만 나는 그녀가 풀어낸 노랫말을 좋아한다. 내가 장재인의 노래 속에서 발견한 가장 큰 매력은 노랫말 속 화자들은 담백하면서도 정확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한다는 점이다. 


기묘한 웃음소리 넌 심술궂었지
날 사랑하지 않는 게 이기는 줄 알지
새벽의 벨소린 나의 목을 감싸고
파블로프 개처럼 난 너를 기다려 _나의 위성

나를 바라본 네 눈빛에 
네가 원하는 게 보여 난 
나를 원하는 그 혀끝 상상해 oh
젖어 들어 나의 공기에 
점점 들어오는 널 느껴도 
여기까지야 
지금 이대로 좋아 _stay ever


 장재인의 가사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지한 채자신의 욕망을 말하는 여성이 존재한다. 나는 네가 '날 사랑하지 않는 게 이기는 줄 아는' 못된 사람인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알지만, 지금 내가 원하는 건 여기까지야.

  장재인이 쓴 가사 속
여성 화자들은 철학자 하이데거가 주장한 ‘진정성’ -자기가 처한 실존적 상황 및 거기 내재된 가능성을 실현시킬 자유를 인식하고자 노력하는 상태 (김혜리『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p269 재인용)-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황을 바라보고, 자신이 원하는 가능성을 찾고, 그것을 실현시키고자 노력하는 여성. 그녀에게 사랑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녀는 마음 하나하나를 가볍게 여기지 않은 채 진정한 사랑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달려간다.  



 나는 장재인이 정확한 사랑의 문장으로 가사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정확한 문장이란. 신형철 평론가의 설명을 빌리자면 "말하고자 하는 바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는 문장"을 의미한다. (출처: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5949) 장재인의 가사 속에는 마음 깊은 곳에서 마주칠 상처를 감수하며, 오랫동안 자신과 주변을 들여다본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솔직하고 정직한 사랑의 고백이 보인다. 


서로를 바라보는
그래 서로를 상상하는 
이 시간이 더 황홀한 걸 아나요_ 그댄 너무 알기 쉬운 남자야 

움푹 패인 큰 상처로 
더 크게 너를 도려내고 나면
 나를 기억하게 될까_나의 위성

진한 여름 햇살에 바다향을 느꼈어. 
사람들 속에서 홀로 걷고 있지만 마음만은 넘쳐흐르고 있어
전해지고 있니? _여름밤


 나는 노래 가사의 담긴 화자의 성격이 어느 정도 장재인이라는 아티스트의 개인적인 성향과 연결된 것이 아닐까 궁금했다. 그리고 이는 많은 기자와 평론가들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liquid]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 가사가 자전적인 이야기인지에 대한 질문은 항상 있었고, 장재인은 그동안 써놓았던 글과 개인적인 경험, 그리고 자신의 성격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한다. 


"나는 정확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함이 있다. 사랑을 받는 것 혹은 관계에 집중을 하게 되면 그 불안함이 커진다. 오히려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내 삶에 집중하면 담담해진다. 그걸 배우는 과정에서 쓴 곡이다. 분노도 하고 불안함도 느끼면서" (나의 위성이 실제 경험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출처: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551765)


 장재인의 가사의 공통적인 특징은, '너'가 아닌 '나'와 '우리'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장재인이 작사하고 노래한 015B의 '상수역 2번 출구"를 살펴보자. "어줍잖은 순진함/이 테이블 위의 경건함/이 밤에 진한 키스 나누면/우린 위험해질까 새벽이 와"  상수역 2번 출구의 화자는 처음 만난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하기보다는, 자신이 느끼는 분위기(어줍잖은 순진함),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사물의 온도 (테이블 위의 경건함) 그리고 키스 후의 '우리'에 집중한다. 


 그 누구도 대상화되지 않는 이야기. 이러한 사랑의 서사는 주로 '소극적인 여성 화자'와 '사랑을 쟁취하려는 남성 화자'를 내세우는 한국 대중음악 가사와는 분명 차별화 된다. 


 

중요한 지점은, 장재인의 노랫말 속 화자가 상황을 인지하고 자신의 욕망을 말하는 과정이 철저히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전제한 채 이뤄진다는 점이다. '나'에 집중하는 것이 상대에게 무례한 것으로 쉽게 연결되는 현대 사회에서, 장재인이 그려내는 나와 타자의 거리는 이상적이다.


아직은 어색한 우리

둘만의 시간이 더 필요하단 걸 알죠

급할 거 있나요 둘이 천천히

일단은 내려가서 밥을 먹어요

아직은 어색한 우리

어쩌겠어요 어젯밤은 이미 지난 걸

이대로 안녕 아니면 일주일 후

이렇게 가볍게 또 밥을 먹어요

왜 그리 뚫어지게 날 바라봐요

아직 내가 익숙지 않나요

꿈을 꾼 것 같단 그대 말이

나를 웃게 해요 귀여워요

시간이 지나면 좀 나을 거야

연락할게요 일단 밥을 먹어요

우선은 막 나온 이 밥을 먹어요 _밥을 먹어요


 어젯밤이 지나고 빛이 들어오자 '나'와 '그대'는 조금 어색하다. 어색해하는 그대를 위해 '나'는 서로 생각하고 알아볼 시간이 필요한 것을 알고 있다고, 급할 게 전혀 없다고 안심시킨다. 상대가 어젯밤을 부끄러워할까 봐 '어쩌겠어요 어젯밤은 이미 지난 걸'이라고 말해주며, 일단 따듯한 밥을 먹자고 먼저 제안한다. 밥을 먹으면서 이대로 '안녕'해도 되고 혹시 괜찮다면 일주일 후 밥을 다시 먹자고 연락하겠다고 가볍게 말한다. 상대에게 어떠한 부담도 주지 않은 채 솔직하게 나의 마음을 전하는 이 노래의 화자가 나는 진심으로 부러웠다. 얼마나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을 예민하게 바라보아야 이렇게 정확한 사랑의 문장으로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걸까. 


(글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미스틱89 sns 계정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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