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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Apr 25. 2018

오늘의 자소서를 내고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지금이 아닌 언제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
내게도 날개가 있어, 날아갈 수 있을까.

-자우림 6집, 샤이닝


 나는 최근 2년간 열심히 자소서를 썼다. 작년에 5월부터 12월 계약직으로 일하는 동안에도, 정규직을 위해 틈틈이 자소서를 써야 했다. 계약이 종료되고 다시 백수가 된 나는 오늘도 자소서를 냈다. 늘 그렇듯 머리는 핑핑 돌고 글은 안 써졌다.  '회사가 당신을 뽑아야 하는 이유를 서술하시오'라는 질문에 '글쎄요... 전 성실하긴 한데... 저 같은 사람이 많을 것 같긴 하네요'라고 쓰고 싶은걸 꾹 참고 800자를 채워 넣었다. 


 자소서를 낼 때마다 생각한다. 좋은 자소서가 쓰일 수 있는 삶을 살았어야 한다고. "내가 한 선택들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는데요, 그건 바로 귀사에 지원하기 위해서였어요!"라고 깔끔하게 설명되는 삶. 자소서를 쓰다 보면 나의 지난 과거가 너무 애매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부 시절 동아리는 지원하는 분야와 전혀 상관이 없고(하긴 그 동아리가 쓸모 있을 곳이 있기는 할까), 지난 인턴 경험은 이 분야가 필요로 하는 경험과는 다르다. 그때의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해서 선택했고 노력했는데, 자소서를 쓰는 지금은 그 경험들이 모두 쓸모없다고 느껴진다.


 자소서를 쓸 때면 늘 분주하다. 공고 알림 확인 -> 기업 조사 -> 자기소개서 작성 ->(만약 서류 붇으면) 1차 필기시험 -> (만약 필기 붙으면) -> 면접 준비 -> 2차 실무자 면접 -> 지원 결과 확인 또는 3차 임원 면접 이 과정 속에서 지난번 다른 기업 합격 연락을 기다리고, 또 떨어지고. 떨어지는 건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의연해지자고 침착해지자고 다짐하지만 늘 마음은 어딘가 붕 떠있고 우울하다. 


 취준생의 일상은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1명 뽑는데 나 혼자 지원했다면 힘들일이 없겠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취업은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거고, 취업준비는 누군가를 어떻게 이기지?라는 고민의 연속이다. 승패를 결정짓는 회사의 눈치를 보면서 나를 제발 선택해 주세요!!!!라고 외치는 과정이 어떻게 즐겁겠어.  


 젊은것들은 편하게 자라서 쯧쯧 아무 데나 우선 취업해서 돈 벌어야지! 라는 목소리에는 이제 진짜 화가난다. 

여보세요. 옛날에는 돈을 어떻게든 모으면 집을 사고 가정을 꾸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라고요! 부동산만 봐도 알잖아요. 제가 한 달에 150만 원씩 벌고 언제 집을 살 수 있겠어요? 현재의 불행을 택할 때는 적어도 미래에 대한 보장이 있어야죠. 우리가 뭐 큰 거 바라요? 일 열심히 하면 독립할 공간 구하고, 가끔 외식하고, 저녁에 캔맥주 1캔 마실 수 있는 여유. 딱 그 정도라고요. 아니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학생들 인터뷰 영상도 안봤어요? 뉴스 좀 보고 살아요 진짜.

하지만 사실 내가 너무 욕심부리는 게 않을까 늘 고민해. 어쩔 수 없지만.  


이 글을 어떻게 끝내야 할까. 나는 여전히 모르겠고 우울하니 시를 읽어야 겠다. 

 절망은 너무나 안전하므로 차마 디딜 수 없었고요 우린 다른 용기를 내야 했어요 자유로에선 고함을 지르며 달렸어요 감시카메라가 환대하듯 플래시를 터뜨려줬어요 그 길에는 쉽게 갈 수 있는 끝장이 있었구요, 다 왔구나 초소 앞에서 유턴을 하고선 쉽게 돌아설 수 있었던 거에요 서로에게 혹은 허수아비에게 간청도 해보았어요 즐겨 내미시던 그 칼로, 한번쯤 우리 심장을 깊이 관통해주십사 하고.

 - 김소연 시인의 '만족한 얼굴로' 시 일부  


+ 근데 오늘 낸 자소서는 정말 붙었으면 좋겠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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