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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May 17. 2018

아무것도 아닌, 스물여섯

 중학교 때, 나는 얼른 스물여섯이 되기를 꿈꿨다. 스물여섯은 내 어머니가 결혼한 나이, 나와 동생이 모두 성인이 되는 특별한 해. 스물여섯에는 적성에 맞으면서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결혼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일 거라고 믿었다. 나는 복잡한 인생이 정돈될 수 있는 시기. 나의 특별함이 빛나는 시기. 그 시기가 스물여섯이라고 믿었다.   

   

 기다리던 스물여섯이 되고도 다섯 달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세상 속 나의 자리를 찾지 못했다. 적성을 발견하지도 못했고, 직장을 구하지도 못했다. 사랑은 더 이상 기대하지도 믿지도 않는다. 


아무것도 아닌 시시한 스물여섯 살의 여성. 그게 지금의 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작년에 긴 취준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아무 데나 들어가 일했을 때부터? 취업준비를 하지 않고 수업만 열심히 들었던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어쩌면 재밌지도 않으면서 취업과 학업에 도움도 되지 못했던 동아리를 택했던 대학교 1학년 때 모든 문제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간간이 동기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누구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누구는 대기업에 들어갔고, 누구는 대학원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들. 분명 듣고 싶지 않았는데 가장 궁금했던 이야기다. 친구가 일하고 있다는 회사 근처를 지나갈 때면 지금 이 시간 그 친구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이곳을 지나지만, 그 친구는 소속을 증명하는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을 테지.


 내가 그 친구들에 비해 덜 노력했던 걸까? 나도 나름대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어째서 그들과 나는 이토록 달라진 걸까.      



 부모님은 일을 나가고 동생은 학교를 간 텅 빈 집에서 혼자 눈을 뜬다. 가장 눈 뜨기 괴로운 날은 아르바이트도 해야 할 일도 딱히 없는 빈 날이다. 그런 날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계속 찾지만, 계속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인턴 면접은 떨어졌고, 임시로 했던 아르바이트에서는 이번 주 연락이 없다. 결국 이번 주에는 돈을 벌지 못할 것 같아 나는 초조해진다.     


 20대 초반 나는 또래에 비해 똑똑하다고 자부했고 미래가 두렵지 않았다. 실수하거나 실패해도 모두 경험이 되리라 믿었기에 사랑도 쉽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에 들어간 선배의‘내년에는 어려울 수 있지만 올해는 신입 넣어도 가능성 있어’라는 조언, 존경했던 전 직장 선배의 ‘대기업 신입 공채는 어릴수록 좋아’라는 충고는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사회에는 적합한 나이라는 게 존재하고, 그 시기를 놓치면 영원히 낙오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공포가 밀려 들어왔다.


이 시기를 잘못 보내면 내 인생 전체가 망가질 것 같은 두려움. 

나는 이 두려움을 안고 지난 5개월을 보냈다.      



 지난 5개월 간 불안하고 두려울 때마다 브런치에 글을 썼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꾸준히 글을 써본 것은 처음인데, 글을 쓰면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니까 여기 지금까지 쓰인 글들은 모두 나를 위해 쓰인 것이다. 브런치를 시작해 지금까지의 시간은, 막연하고 불안했던 마음들을 하나하나 풀어서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과정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스물여섯이라고 제목을 쓰는 순간 나는 조금 가벼워졌다. 그래 아무것도 아니지.

 하지만 그렇다고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야 라고 중얼거리면서. 조금은 풀어진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의 초록색



* 표지 사진은 Edward Hopper, New York Movie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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