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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Jun 23. 2018

앞으로 나아가지도,
그 자리에 머물지도 못하는


“학교 다닐 때 어떤 학생이었어요?”      


여름이 다가오는구나, 생각하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나에게 누군가 물었다. 나의 과거를 궁금해하는 저 마음은 무엇일까 궁금해 고개를 들어 상대를 쳐다보았다. 조심스럽게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의 얼굴에는 감정이 서려있었고, 그 마음을 알아챘기에 얼마만큼 솔직하게 답해야 하는지 난감했다.      


 ‘어떤’과 ‘무슨’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인터넷에 올라온 질문에 국립국어원은 예문에 따라서 다르지만 '어떤'은 '사람이나 사물의 특성, 내용, 상태, 성격이 무엇인지 물을 때 쓰는 말'에, '무슨'은 '무엇인지 모르는 일이나 대상, 물건 따위를 물을 때 쓰는 말'에 해당한다고 답했다. 관형사 ‘무슨’은 사람에게는 쓰이지 않는구나. 그건 ‘어떤 책을 읽어요?’라고 묻는 사람과 ‘무슨 책을 읽어요?’라고 묻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일까. 성격을 묻는 말과 대상을 묻는 말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무슨 학생이었어요?’라고 물으면 ‘한국 고등학교를 다녔고 반에서 성적은 중간 정도였던 학생이요’라고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그는 ‘무슨’이 아닌 ‘어떤’이라는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 시기의 나의 상태, 성격들을 말해주어야 했다. 많은 수식어들이 떠올랐다. 평범한, 성실한, 우울한, 활발한. 하지만 그 어떤 단어도 정확히 나를 설명해주는 것 같지 않았다. 고민을 하다가 아이스크림을 한 번 물고 녹이며 말했다.     


그냥 어정쩡한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어떤’ 게 어정쩡한 건지 다시 되물었다. 

나는 난감해하며, 글쎄요 '어떤'게 어정쩡한 걸까요.라고 망설이다가 그날을 떠올렸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광화문 근처였다. 그 시기에 정부를 상대로 한 굵직한 시위들이 많았는데, 가끔 그 시위 소리가 학교까지 들리기도 했다. 뉴스를 잘 보지 않아서 시위의 정확한 맥락은 잘 몰랐지만 나는 어쨌든 그 자리에 가야 한다고 느꼈다. 그곳에 가는 게 ‘옳은 일’이라는 막연한 느낌 때문이었다. 당시 고등학생들의 시위 참여가 이슈였고 언론이 포착한 그들의 표정은 늘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그들과 같은 표정을 짓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 붙잡혀있었고, 주말에는 학원으로 바빴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야자를 빼는 것이었는데 그러기 위해선 담임선생님의 허가가 필요했다. 담임선생님께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마침 옆 반의 친구가 같이 시위를 갈 친구들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는 당연히 거짓말하고 갈 거라고 했고, ‘너도 얼른 뻥치고 와’ 라며 나를 부추겼다.     


 나는 망설였다. 학교 선생님들은 너희가 할 일은 공부고 시위 참여는 나중에 대학 가서 하면 된다고 종종 수업시간에 말하곤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이 사건을 잘 모르는데, 그냥 어떠한 책임감으로 가는 건 잘못된 거 아닐까. 야자를 빠지면 하루 공부를 날리는데, 이 시위가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가야 할 이유는 불명확한데, 안 갈 이유는 너무 확실해 보였다.


결국 나는 시위를 가지 않았고, 그날 야자도 망쳤다.      

가끔 그때의 내 선택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그 자리에 머물지도 못한 채 평생 이렇게 어정쩡하게결국에는 모든 걸 망치는 패턴. 


이 이야기를 마치고 이렇게 보잘것없는 나인데 당신 정말 괜찮겠어요?라고 묻고 그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못한 채 아이스크림을 마저 먹었다. 늘 그렇듯이. 




*표지 그림 Tishk Barzanji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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