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비밀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릴 Sep 10. 2018

도망치는 건 처음이어서

오랜만에 쓰는 글

책의 첫 페이지에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소개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김금희 작가의 신작 소설 '경애의 마음'의 첫 시작은 다음과 같다.


그의 차로 말할 것 같으면 그의 생을 모두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만약에 나란 책이 있다면 그 책은 어떻게 시작할까. 어떤 문장으로 당신에게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 떠오르는 문장은 이거다.

어릴 적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 것 같다는 말들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대신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내가 어땠었지' 하는 기억보다, '그때 내가 무엇을 빌었지'의 기억이 더 선명하다. 매일 밤 잠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던 시간들. 중학교 때는 특목고에 붙게 해 달라고, 고등학교 때는

원하는 대학의 합격을 빌었었지.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항상 미래에 가 있었다. 오랜만에 일기장을 펼쳐보았다. 중간고사 성적에 대한 아쉬움, 공부도 노는 것도 뭐 하나 제대로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 00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들이 일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강박은 노오력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학창 시절 전부를 지배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약 12년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시험은 정직하게 노력을 드러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관계도 모두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반 친구 3-4명 정도가 어느 날 갑자기 나를 피했고 나는 그들과의 관계를 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들의 냉담한 반응에도 어떤 이유로 나를 싫어하게 된 건지 계속 물었고, 내가 노력하면 이 관계가 다시 해결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말을 섞으려고 하지 않았고, 그때 나는 자주 울었다. 결국 나를 걱정했던 엄마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 나와의 대화를 부탁했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피구를 하다 보면 어떤 공은 피하고 어떤 공은 받으려고 하잖아. 지금 너와 친구들의 관계도 피구 같은 거야. 너는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이 갑자기 던진 공을 받거나 피해야 하는 상황인 거지. 그리고 너는 지금 모든 공을 받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고. 근데 있잖아, 모든 공을 받을 필요는 없어. 받을 수 없는 공은 피해도 된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근데 그게 받을 수 있는 공인지, 없는 공인지 어떻게 알아요?"라고 물었다. 그때 선생님은 웃으면서 '그게 참 어렵지'라고 말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인생이 복잡하게 흘러가게 된 건 아마도 받을 수 있는 공인지, 아닌 공인지를 잘 판단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공을 잘 잡을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른 채, 어떤 공을 받아야 하는지에 집착했다. 근데 생각해보면 모든 공은 다 잡을 필요가 있는 것 같고, 사회는 내가 노력하면 다 잡을 수 있다고 말하니까 우선 다 조금씩 잡으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 과정이 재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해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몸을 계속 움직이는 사람. 그게 나였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공을 피했다. 솔직히 말하면 피한 게 아니라 계속 잡기를 실패하니까 스스로 라인 밖을 나간 셈이다. 더 이상 무언가를 바라면서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도, 노력을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미워하기도 지쳐서 그냥 나 모르겠다 하고 나와버렸다.


 지금 나는 북유럽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책상 앞에는 큰 창문이 있는데, 창문에서는 큰 호수와 짙은 녹색의 큰 나무들. 조금씩 진한 빛을 가지는 잔디밭이 보인다. 이 곳의 구름은 늘 가까이 내려오는 것 같다. 수많은 구름이 서서히 움직이고,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는 이곳으로 나는 도망쳤다. 도망치는 데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나는 잠시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을 했고, 어쩌다 보니 운 좋게 도망칠 여건이 마련되었을 뿐이랄까. 




 사실 이 곳에서는 글쓰기를 지양하려고 했다. 글을 쓰려면 생각을 해야 하고, 생각을 하면 복잡해 지니까. 하지만 이 곳의 삶은 생각만큼 평온하고 너그럽지 않았다. 이곳에 온 첫 2주 동안 내 인생의 최고 인종차별과 성추행을 다 당해서 시간이 꽤 흐른 지금까지도 학교와 이야기하고 (거의 논쟁) 행동하고 있고, 학교에 존재하는 성차별적인 요소들을 공론화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한국 사회에서의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면 되었지만 이 곳에서는 아시아인이라는 인종까지 더해져 상황이 더 복잡하다. 그니까 도망쳤지만 나란 사람은 그대로여서, 이 곳에서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지금 있는 학교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아시아 여성으로서 페미니즘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나누는 게 의미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덴마크에서 온 한 친구는 나에게


"나는 솔직히 덴마크에서 여성의 권리를 외치는 게 어려워. 나는 늘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는 것을 배웠고 직접 목격했단 말이지. 내가 세계시민의 시각에서 사회를 바라보면 여전히 사회는 불공평하지만, 덴마크 내에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


라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물론 나도 당황해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 친구의 문제제기 자체가 흥미로웠다. 이런 이야기들을 브런치에 나누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길게 썼다. 이곳에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재미있는 만큼만 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앞으로 나아가지도, 그 자리에 머물지도 못하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