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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May 26. 2018

여자배구선수의 몸  

몸이 아닌 몸매로 불리는

 처음 여자배구를 경기장에서 본 날, 나는 그들의 움직임에 매료되었다. 단단한 팔의 힘과 굵고 다부진 종아리를 이용해 높은 곳에서 공을 코트에 꽃아 내리는 공격수들, 멀리서 봐도 압도적인 허벅지를 이용해 안정적인 자세로 리시브를 받아내는 수비 포지션, 쭉 뻗은 팔과 손바닥을 이용해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는 센터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신기했다. 여성도 저렇게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구나라는 걸 처음 깨달았으니까. 


이재영 선수
이효희 선수
양효진 선수 


  비록 배구장의 공기는 습하고 찝찝했지만, 오랜만에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공격 실패 여부에 따라 온몸으로 기뻐하고 실패하는 선수들의 포효를 들으면서 나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이 공간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이용해 뛰고, 받고, 때리고 있었다. 여자 선수가 공을 때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는 건,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내가 익숙한 미디어 속 여성들의 몸짓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배구는 온몸의 근육을 써야 하는 운동이다.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넓은 어깨, 높은 점프에 필수적인 두껍고 튼실한 종아리, 강한 스파이크를 가능케 하는 굵은 팔. 배구선수의 몸은 그들이 겪어야 했던 혹독한 훈련과 고통의 시간들을 보여준다. 오로지 승리를 위해 단련된 몸, 그 몸이 여자 배구 선수에게는 가장 이상적이다. 



몸이 아닌, 몸매로 평가받는 현실 


 그날 이후 나는 배구에 빠졌다. 매주 배구 경기를 챙겨봤고 응원하는 팀이 생겼다. 내가 응원하고 있던 팀이 지고 있던 어느 날, 나는 같이 슬퍼할 사람을 찾기 위해 네이버 배구 실시간 응원 댓글을 읽어보았다. 그리고 큰 충격과 분노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주황색 네모는 필자가 선수 이름을  일부러 가린 것)



이 외에도 

"역시 00은 가슴이 커"
"00이 너무 엉덩이 퍼진 것 같지 않음?"
"00은 배구 못해도 가슴이 이쁜 괜찮아"
"00년 ㅂㅈ에 박아버릴까 보다" 

와 같은 끔찍한 성희롱이 넘쳐났다. 


 여자 배구선수들은 경기력뿐 아니라 몸매와 성적 매력 등으로 평가받는다.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승리를 위해 단련시킨 멋진 '몸' 은 '몸매'로 치환된다. 몸의 맵시나 모양새를 뜻하는 몸매는. 몸의 기능적인 부분보다 보이는 태를 중시하는 단어다. 도대체 왜 경기에 필요한 건강한 몸 이외에 맵시나 모양새가 왜 중시되어야 하는가? 만약 누군가 댓글로 "00 선수는 허벅지 힘이 부족한 것 같다" 고 말했으면 납득이 간다. 근데 뭐? " 역시 00년은 역시 꿀벅지"라고? 그게 경기랑 무슨 상관이냐고! 


여자배구 선수들의 특정 신체부위와 얼굴을 강조하는 미디어 


 여성 혐오적인 인식은 미디어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대다수의 미디어는 그들이 얼마나 파워풀하게 뛰어올랐는지, 어떤 자세로 스파이크를 때리며 수비를 하는지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들이 찍은 배구 경기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작전타임 중 물을 집으려 허리를 숙인 선수들의 엉덩이, 스트레칭을 위해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는 선수의 다리 등. 심지어 여자 선수들 스트레칭하는 모습만 따로 모아둔 게시물도 존재한다. 그들이 최고의 경기를 펼치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까지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다. 


 여자배구선수들 얼굴에 대한 미디어의 집착 또한 엄청나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배구미녀". 언론은 한국 선수들 간의 비교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자 배구 선수들의 얼굴을 비교하며 평가한다. 

스포츠 서울의 5월 18일 기사. 

VNL이 개막하는데, 각 포지션 별 실력 순위를 비교하는 게 아니라 미모 순위를 비교하는 외국 언론들. 그리고 그 기사를 한국으로 가져온 스포츠서울이 지금 여자배구를 다루는 미디어의 모습이다. 물론 남자 선수들의 미모를 비교한 기사는 없었다.



 세계 최고 배구 선수인 김연경 선수의 경기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처음 김연경 선수를 보았을 때 예상보다 너무 말라서 놀랐다. 하지만 김연경 선수의 백어택을 본 순간, 그 몸은 김연경 선수에게 가장 완벽한 몸이라는 걸 깨달았다. 백어택을 위해 날아오른 마른 김연경 선수의 허리는 활처럼 유연하게 구부러졌고, 그가 스파이크를 때리는 순간 모든 몸의 선은 완벽했다. 그 몸을 만들기 위해 어떤 시간들을 견뎌왔을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 몸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할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제 진행된 VNL 이탈리아와의 경기가 끝나고, 김연경 선수는 높아진 여자배구의 인기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수원 실내체육관에서 치러진 2라운드 VNL 경기 중 5월 22일은 만석을 기록했다. 휴일과 겹친 것을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인파였다. 2020년 올림픽을 앞두고 앞으로 여자 배구 팀은 계속 이슈가 될 것이다. 더 이상 "미모" "몸매"등으로 여자 배구 선수들을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세계 최고 배구 선수를 대하는, 최소한의 예우이지 않을까. 





* 글 내 사진은 ' 더 스파이크'에서 가져왔습니다. 더 스파이크는 특정 신체를 강조하지 않고 현장감 있게 선수들의 현장 사진을 찍는 미디어입니다. 배구 선수들 화보도 많이 찍는데, 여자선수들은 귀여운 모습을 강조한 강조한 화보가 많아서 아쉬워요. 선수들 개개인의 강점 플레이를 살린 역동적인 화보를 찍으면 좋을 텐데. 


** 표지사진은 스포티비 뉴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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