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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Sep 14. 2018

이건 문화 차이 일까, 아니면 사람 차이 일까?

#1

 나는 지금 북유럽의 한 학교, 그것도 약 30여 개의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다 같이 배우고 머무는 학교에 와있다. 처음에는 다양함에 압도되어서 마냥 흥분하고 들떴었다. 그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너희 나라 친구들은 무엇을 하고 노는지,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떤 음악을 듣는지 등을 묻곤 했었다.  

    

 약 한 달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친구들을 단순히 00 나라에서 온 친구라고 기억하지 않는다. 그들과 함께 시간을 쌓아 나가면서, 나는  그 친구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무슨 음식을 자주 해 먹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인, 중국인, 미국인, 프랑스인이라는 간편한 범주를 벗어나서 개인과 개인이 만나는 일. 내가 여기서 매일 해나가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절대 절대 쉽지 않다. 특히 누군가와 어떤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상대의 의견이 나에게 불편할 때 그게 문화 차이인지, 사람 차이인지 너무 헷갈린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얼마 전에 공간 사용을 두고 한 친구(A라 하자)와 상의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저녁에 내가 진행하고 있는 클럽이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른 채 그가 나와 같은 시간에 그 공간에서 다른 행사를 계획했기 때문이다. 

나: 우리 어떻게 할까?

A : 나는 상관없어. 네가 편한대로 해

그 공간은 내가 속한 클럽 멤버들이 직접 치우고 만든 공간이라, 나에게는 그 공간에서 클럽이 진행되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상관없다는 그의 대답에 뭐가 상관없다는 건지, 옮길 공간은 있는 건지  애매해 다시 물었다. 

나: 그래도 시간을 서로 조정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 그 공간은 사실 우리 클럽 멤버들이 만든 공간이라 가능하면 나는

A : (말을 중간에 끊고 귀찮다는 듯이) 아니 정말 상관없다니까. 네가 편한대로 해 

나:????????????          

나는 당황했다. 그는 그의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장소 변경에 대해 안내를 할 건가?라는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지만 이미 그가 떠난 이후였다.     


 나는 구체적인 답을 주지도 않았고, 귀찮다는 듯이 대답하는 그의 태도가 무례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전까지 내가 겪은 그는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답했을까? 혹시 그게 그들의 문화인 건가? 어떤 일을 정할 때 딱딱 미리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흘러가는 대로, 때가 되면 그때 해결하는 스타일인가? 이런 생각이 끝없이 밀려오면서 나는 복잡해졌다.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자 몇몇은 걔 000에서 왔잖아. 그러니까 그렇지 라는 반응이 대다수이었다. 이건 또 다른 차별 아닌 가 싶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떻게 해야하지!!!!!

  


학교의 급식이 짜다는 의견이 몇몇 학생들 사이에서 제기되었고 학교 학생회에 안건으로 올라왔다. 나는 어쩌다 보니 (정말 내가 여기서 뭐하는지 모르겠다) 학생회에 속해있는데, 처음 이 안건을 들었을 때 신중하게 접근했다.     


나: 몇 명 이상이 짜다고 했을 때 주방에 의견을 전할 건지도 정해야 될 것 같아. 예를 들어 과반수가 짜다고 하면 의견을 전달하는 건지 정해야 하고. 하지만 마냥 짜다고 말하면 셰프 분들의 자존심에도 흠이 갈 수도 있으니까 조심히 전달해야 할 것 같아 (주저리주저리)

덴마크 친구: 근데 음식이 짠 거는 어떻게 못하지만, 싱겁게 만들면 다른 친구들이 소금을 넣으면 되잖아. 

멕시코 친구: 지금 내가 알기로는 학생의 15% 정도가  짜다고 느끼는 걸로 알고 있어

덴마크 친구: 그 정도면 많은 거지. 그럼 그냥 주방에 짜다고 학생회 멤버 중 누군가 전달하면 될 것 같은데. 누가 갈래?

나: 아니 그래도 구체적인 자료를 들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독일 친구: 음식이 짠 건 심각한 문제고, 전체가 모였을 때 다시 한번 물어보지 뭐. 

나: 그래서 몇 명 이상이면 주방에 말할 건데?

멕시코 친구: 한 10%가 넘으면 말해야겠지? 누가 주방에 말할래?

덴마크, 독일, 멕시코 친구들: (손을 들며) 내가 할게  


과반수와 어른에 대한 공경이 몸에 밴 나로서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10%라니. 나머지 90%의 친구들이 소금을 더 쳐서 먹으면 된다는 이 간단한 논리에 공감을 하면서도 정말 그래도 되나 싶었다. 그리고 주방이 그 의견을 받아들일까 두려웠다. 나였다면 서베이를 익명으로 작성하게 해서 몇 명이 짜다고 느끼는지, 그리고 그 자료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주방에 의견을 전달하러 갔을 것 같다. 물론 주방에 말하러 가는 게 싫어서 눈치를 봤을 거다. 괜히 주방에 밉상으로 찍힐까 봐 두려워서.      


사실 나도 짜다고 생각했는데... 


10%라도 짜다고 느끼면 음식을 싱겁게 만드는 게 맞다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은, 문화에서 나오는 걸까 아니면 개개인의 성격에서 비롯되는 걸까?      


 문화이론 공부를 할 때 지나친 일반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문화를 논의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00인”이라는 일반화를 써야 하는 상황이 존재한다고, 그 모순을 늘 기억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이건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을 규정하는 사회에 저항하며, 남성과 여성이 아닌 한 개인으로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동시에 현사회의 ‘여성’과 ‘남성’이 처한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여성’ ‘남성’이라는 주어를 써야 하는 상황이 존재한다. 이 곳에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접한 악플 중 하나는 ‘너희는 여성 남성 평등하다고 구별 짓지 말라면서, 왜 여성이어서 차별당한다고 웅앵 거리는 거야!’ 하는 논리다. 하지만 젠더를 해결하려면 젠더를 가시화하는 동시에 젠더를 넘어서야 한다. (정희진 책 인용)      


 어쩌다 보니 또 페미니즘 이야기로 귀결되었지만, 이게 내가 최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고민이다. 여전히 답을 찾지도 못했고 평생 찾을까 싶은데 어쨌든 위의 두 에피소드 모두 결국엔 다 잘 해결되었다. 친구 A는 클럽 시간이 다가오자 급하게 다른 장소를 물색했고,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미리 공지를 하지 않아 결국 우리는 공간을 나눠 썼다. 그리고 주방 소금은 주방에서 아주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더불어 어떤 요리가 짜다고 느끼는지 알아봐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요일별로 담당 주방장이 다르다면서! 


모두 잘 해결된 것 같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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