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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Jan 09. 2019

헤어졌던 연인과
다시 헤어진 이야기

이건 내 이야기다



1.      


22살에 첫사랑을 만났다. 먼저 반한 건 내 쪽이었다. 수업에서 마주친 독특한 바지를 입은 그에게 첫눈에 반했고 프로젝트 주제를 발표하는 그를 보고 한 번 더 반했다. 나는  그와 같은 팀이 되기 위해 온갖 수를 썼고, 결국 우리는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건 벅찰 정도로 기쁜 일이었다. 노란색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한 따듯한 가을날의 서울이었다.      




모든 첫사랑이 그러하듯 우리는 우리가 모든 연인의 궤도에서 벗어나 있다고 믿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정체 모를 감정에 놀라고 불안해하면서도 눈부시게 행복했던 내가 떠오른다. 일본의 ‘운명의 붉은 실’ 전설에 따르면 태어날 때부터 운명의 연인들은 한쪽 새끼손가락 끝에 인연의 붉은 실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그와 내 손가락 사이 선명한 붉은 실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어쨌든 만날 운명이었던 거야. 나는 그에게 말했다.           



2.   

   

만난 지 2년이 다되어 갈 때, 그가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멀리 떨어져 있게 되었고 크게 싸웠다. 그는 나에게 실망했고 여행에서 돌아온 후 이별을 고했다. 나는 너무 갑작스러웠는데 그는 확고했다. 그 뒤 나는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가 헤어짐을 택하는 이유가 나를 더 싫어하게 될까 봐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나를 싫어하는 게 미치도록 두려웠다.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건 어떻게 해서든 막고 싶었다.      


그때 내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컴퓨터에 “연애 끝”이라는 파일을 만들었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지처럼 나는 하루의 감정들을 적어나갔다. 그 일지에 따르면 나는 3달이 지난 후에도 울었다. 여러 가지 일이 겹쳐 결국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상담 선생님은 내가 제대로 된 애도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별을 납득하는 과정 없이는 애도가 불가능 한데, 나는 이별에 대한 납득 없이 혼자 모든 상상으로 버텨내고 있다고. 그를 만나 그에게 실망하거나 이 관계의 끝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하셨다.   


어쩌면 상담 선생님은 다른 맥락으로 그 말을 하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헤어진 지 4개월 정도가 지났을 그때, 나는 그를 다시 만날 명분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한번 만나고 싶어. 

놀랍게도 그는 적극적이었다. 그 주 주말, 우리는 홍대의 작은 카페에서 만났다. 그 좁은 카페에서 나는 그를 문을 열고 들어오는 보자마자 울어버렸고, 화장실로 도망쳤다.            



   

3.      


우리가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되었을까. 

그날 울고 있던 나의 손을 그 친구가 잡았을 때가 시작이었을까. 그는 헤어졌던 기간 동안 나만큼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찾지 못해 외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홍대에서 나의 집으로 한 번에 가는 버스의 번호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며 버스정류장까지 나를 배웅했다. 그날 밤 그는 내가 멀어질 때까지 버스 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친구들에게 ‘우리 다시 만나’라고 알리는 건 부끄러웠다. 자존심도 없이 너는 너를 떠난 애를 다시 만나니? 친구들은 말로 내뱉지 않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창피했다. 그 창피함이 두 번째 연애 내내 마음속에 고여 있었다. 가끔 창피함은 억울함으로 변질되곤 했다. 상대에게 서운한 일이 생길 때마다 “네가 그렇게 떠나고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때마다 잔잔했던 창피함은 크게 파동 쳤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나를 또 떠날까 봐 무서워 매사에 더 조심했다. 조심스러움, 불안함, 억울함. 창피함들의 감정들은 첫 번째 연애보다 우리의 연애를 건조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두 번째 연애가 불행했다는 건 아니다. 

조금은 건조한 감정이 우리를 이성적으로 만들어 주었고, 그 이성은 서로를 이해하는데 보탬이 되었다. 전에 비해 싸우는 일도 줄어들었고 문제가 발생하면 대화로 풀고자 노력했다. 벅찬 새로움은 아니었지만 잔잔하게 행복했다. 칼럼에서는 헤어졌던 연인이 다시 만나 잘 되는 경우가 3프로라고 했다. 나는 우리가 그 3프로라고 확실했다. 우리는 많은 여행을 같이 다녔고, 늘 서로에게 다정했다. 내가 이 곳으로 떠나기 마지막 날, 그는 나에게 말했다.    


  

네가 한국으로 돌아오면 그때는 너와 함께 살고 싶어


4.      


나는 유럽에 왔고 그는 세계여행을 다녔다. 처음에는 매일 연락했지만 빈도는 점차 줄어들었다. 그가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 나는 학교에서 정신없이 바빴고, 내가 그를 필요한 순간 그는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사랑이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욕구라는 걸 처음 느꼈다. 내가 상대에게 원하는 건 외로운 밤에 내 옆에서 조용히 다독여주는 것, 맛있는 것을 함께 먹는 것, 상대가 기뻐하는 표정을 보는 것이라는 걸, 그게 사랑이라는 걸. 이 모든 것들이 거세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지극히 평범해져 갔다.      


서울로 돌아온 그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덴마크의 우편 시스템이 형편없어서 최소 1달은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멈칫했다. 1달의 시간 동안 우리가 헤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헤어짐을 가깝게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9월, 10월, 11월이 지나갔다. 12월 학기 마지막 날에서야 나는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는 여전히 우리 관계를 위해 더 노력하고 싶다고. 나조차도 내 말이 진심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를 잃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비겁했다.      


편지를 조금 일찍 보냈으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편지가 채 도착하기 전, 2018년의 마지막 날 그는 장문의 sns 편지를 보내왔다.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친구로 남고 싶다고. 한국 돌아오면 한번 얼굴 보자고 적혀있었다. 나는 부다페스트였다. 헝가리 친구 집에서 엉엉 울었고, 술을 마셨고, 신년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토했다. 그의 편지에는 답하지 않았다.      




5.      


다시는 ‘연애 끝’ 파일을 열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결국 다시 열게 되었다. 나는 다음 문장으로 글을 시작했다. 


J와 나는 2017년 1월에 다시 만났고, 2018년 12월 31일에 헤어졌다. 다시 2년을 만나고 헤어진 셈이다. 헤어졌던 기간을 포함해 4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그와 함께했다. 이 연애의 끝은 이렇게 시작된다.      


소낙눈이 내리는 프라하에서 나는 계속 글을 썼다.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지도, 대화를 나눈 지도 꽤 된 것 같다. 가끔 밖을 나갔다. 물건을 살 때마다 기본적인 계산 실수를 계속했다. 프라하의 관광지 상점 주인들은 멍해 보이는 나를 간파했는지, 원래 줘야 할 거스름 돈 보다 훨씬 적게 돈을 주었다. 나는 내가 얼마를 주었는지도 모른 채 그냥 주는 대로 받았고 숙소에 돌아와 계산해보면 돈은 항상 비었다.     




헤어지고 인터넷에 “헤어진 연인과 다시 만날 확률” 같은 키워드를 검색했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이 글을 쓰고 싶었다. 나와 같은 키워드를 검색한 누군가가 이 글을 읽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대부분은 할 이야기가 단 하나밖에 없다. 우리 삶에서 오직 한 가지 일만 일어난다는 뜻은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건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로 바꾸어 놓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최종적으로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이건 내 이야기다 
_ 줄리언 반스, “연애의 기억” p14      


나에게는 내 이야기가 있다. 

당신도 주변 시선에 개의치 말고 당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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