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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Jan 23. 2019

덴마크인 너와 한국인 내가 가질 수 있는 미래는 달라서


A에게



너는 덴마크에서 나는 한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어. 

덴마크 학교에서 만난 우리는 성향이 잘 맞았고, 무엇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결핍을 채워줄 수 있어서 친해졌던 것 같아. 인도/덴마크/중국인 혼혈에 파란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너는 학교에서 가장 춤을 잘 췄고, 멋진 춤 뒤에는 항상 밝은 부끄러운 웃음으로 마무리했지. 인종을 홀짝 뛰어다니며 모두와 친해지는 너는 늘 자유로워 보였어. 너는 내가 항상 되고 싶었던 모습이었어. 자유롭고, 강하며, 똑똑한 여성. 


하지만 너는 너의 자유로움이 타인을 다치게 할 까 봐 늘 두려웠나 봐. 상대방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타인과의 경계를 늘 인식하고 있는 나를 닮고 싶다고 했지. 그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너처럼 멋있는 애가 왜 나를 닮고 싶다는 거지? 정말 의아했어. 


 내가 페미니즘 학회를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렇게 친해지지 않았을 거야. 자신의 이야기보다 일 이야기를 하는 걸 더 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니까. 왜 정치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는지 이야기하는 것보다  한국과 덴마크 정치학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걸 좋아했지. 우리는 정치적 성향이 잘 맞았고 꿈꾸는 세상이 비슷했어.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결국 끝에는 '정치학 참 쓸모없어' 라면서 깔깔 같이 웃곤 했지. 


하지만 가까운 미래를 이야기할 때면, 나는 우리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걸 느꼈어. 

덴마크인인 너와 한국인인 내가 가질 수 있는 미래는 달라서 

그  다름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함께 막막해졌잖아.


 덴마크인인 너는 무상으로 대학교를 다녔고 자소서와 계획서 단 3장만 내면 코펜하겐 대학원 무료 진학이 가능해. 대학교 졸업예정자인 너는 정부로부터 매달 5500kr (한화로 94만 원) 생활지원비를 받고 있지. 

아 맞다, 얼마 전에 방 2개 월세 140만 원의 코펜하겐 월세집을 구한 거 축하해. 너의 방은 70만 원. 생활지원금으로 월세를 내고, 파트타임으로 생활비를 벌어 지낼 예정이라고 말했지. 너무 바쁘지 않겠어?라고 걱정하는 나에게 너는 덴마크는 시급이 높으니 문제없다고, 덴마크에서 정치학은 취업이 잘 되는 학과 중 하나라며 웃어 보였지. 


 한국인인 나는 다행히 부모님의 돈으로 대학을 빚지지 않고 졸업할 수 있었어.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고, 최저임금을 받아가며 일을 했지.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최저의 삶만 보장해서, 어느 순간 지처버렸어. 결국 대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을 가지고 덴마크에 왔지. 그렇게 너를 만났어. 나는 이제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겼는데,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막막해. 부모로부터 독립은 할 수 있을까? 부모와 정서적으로 떨어지고 싶은데 아마 대학원을 다니면서 독립까지 하기는 어려울 거야. 게대가 사회과학계열 대학원이라니. 굶어 죽을 선택을 하는 거지. 


내가 가질 수 있는 미래에 대해서 너에게 얘기했을 때,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던 네 모습이 떠올라. 얼마 전에 코펜하겐에서 이 섬까지 왕복 6시간이 걸려 나를 보러 왔잖아. 그 막막함을 해결해 줄 수 없으니 옆에 있어줘야겠다는 그 따듯한 마음 정말 고마웠어.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 밖에는 답이 없는 걸까.

우리 둘 다 막막해하며 창 밖의 큰 보름달을 하염없이 쳐다보던 밤이었지. 


네가 아니었으면 이토록 낯설고 빛이 들지 않는 덴마크에 남아있을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달려올 네가 있다는 안도감이 나에겐 큰 힘이 돼. 

다음 주에 코펜하겐에서 만나자. 이번엔 내가 갈게. 


- 2019년 1월 22일 청소일을 끝내고, 추운 방에서. 





*표지사진은 중국 사진작가 Ying Yin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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