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릴 Jan 29. 2019

혹시 괜찮아 사랑이야 봤어요?  


S에게



혹시 괜찮아 사랑이야 봤어요? 지난 주말 꼼짝없이 누워 그 드라마를 다시 봤어요. 드라마 속에서 공효진이랑 조인성 둘 다 성질 더럽게 나오는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S 생각이 나더라고요. 극 중에서 공효진 조인성은 가식이 없어요. 서운하면 서운하다,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 있고 싶다, 상대의 말이 마음에 안 들면 너는 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냐. 툭 까놓고 얘기해요. 


 근데 웃긴 게 둘 다 틀린 말은 안 해요.  예를 들면 이 장면. 이 전 장면에서는 남자(재열)가 일을 한다는 이유로 연락을 오랫동안 받지 않았고 같이 살던 집에서 이사를 가겠다고 갑자기 선전 포고했어요. 여자(해수)는 화를 냈고 시간이 흐른 뒤 남자방에 들어와 갑자기 옆에 앉아 보라고 하죠. 그러자 남자는 말해요. 


재열 : 혹시 말이야, 내가 널 많이 사랑한다고 하는 말을 마치 네가 날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말로 오해하는 건 아니지? 만약 그렇다면 그러지 마. 아주 배려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해수 : 왜 내가 할 소리를 네가 해?

 재열 : 너 일할 때 난 네가 통화가 가능한가부터 묻고, 너한테 허락받고 통화해. 네가 좋아하는 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이사 가는 건

해수 : 여기서 일이 안되니까. 일 때문이지. 나도 일하는 사람인데 그걸 이해 못 할까 봐? 이사? 네가 안 간다 그래도 내가 등 떠밀 판이야.

재열 : 근데 배려 없다는 말을 네가 해야 된다는 건 뭐야? 아까 내 애인 못해먹겠다는 말은 뭐고. 해수 : 매려 없단 말은, 밥 안 먹고, 잠 안 자고 일하고, 까칠한 모습으로 5일 만에 내 맘 아프게 나타난 걸 말하는 거고, 니 애인 못해먹겠단 말 역시, 지금 네 모습이, 내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한 소리야. 내가 할 말 없게 너무 훅 치고 들어가지?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fHRhitI7N5I


저는 솔직한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믿지 않아요. 제가 만난 솔직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타인에 대한 애정을 전제로 솔직했거든요. 내가 타인을 이만큼이나 깊게 생각하고 있다는 자신감, 나의 솔직함이 우리의 관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줄 거라는 믿음. 그런 따듯한 마음들이 쌓여있는 사람만이 솔직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다, 내가 사람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생각하는 사람들. 


물론 자신이 솔직하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도 있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중요한 순간에는 늘 거짓말을 하더라구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저는 그런 사람들이 솔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S와 친해진 건 S가 국제개발단체를 그만둔 이유를 말해준 이후였을 거예요. 높은 고위인사들이 프로젝트 마지막 날 딱 하루 와서 현지 아이들과 웃으며 사진 찍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이 전시물이 된 것 같아 끔찍했었다고. 그 괴로움이 너무 깊어서 깜짝 놀랐어요. 


사실 저 처음 S랑 대화했을 때 무서웠어요. 타인에게 관심도 없어 보였고. 예를 들어 제가 학교에서 자주 우는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친구는 감정이 깊은 것 같아요'라고 얘기했을 때, S는 '그 친구 징징거리는 거 안 지쳐요?'라고 묻는 사람이었잖아요. 솔직히 저도 지치긴 했었는데 그걸 그렇게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다니.  타인의 눈치를 고양이처럼 살피는 저와는 달랐죠. 사람은 다 알고 보면 착해서 가끔은 알기 싫다고, 그냥 가볍게 알고 욕하고 싶다는 S에게 저는 늘 속수무책이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S가 한 사람에게 품는 마음이 너무나 커서, 그 마음을 다 주지 못할 바에는 아예 처음부터 거리를 둔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충분히 깊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이 정도에서 그만- 하는 선 긋기처럼. 저처럼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싶어 복잡한 사람은 생각과 감정에 무너져  제가 원했던 것을 잃고 마는데, S는 그 감정들을 폴짝 뛰어넘어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했죠. 


얼마 전에 저에게 카톡으로 물었죠. 그 어둡고 우울한 덴마크에 왜 남아있냐고. 인생 어차피 다 거지 같은데 한국에 돌아와 편한 사람들 옆에서 거지 같은 게 낫지 않겠냐고. 너무 맞는 이야기여서 깔깔 웃었어요. 여기라고 특별한 것도 없고,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리워요.  따듯한 국물요리 같은 거.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왜 여기 남아 있을까. 평소에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돈을 벌 수 있을까,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 걸까) 지금 여기 제 상태를 돌보지 않고 있더라고요. 자꾸 미래의 욕심 때문에 현재 저에게는 관심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하루는 제 감정들을 돌아봤어요. 외로웠고, 쓸쓸했고, 차가운 덴마크 음식에 배가 고팠고, 넓은 바다를 봐서 행복했고, 내 삶을 스스로 영위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있더라고요. 저는 저에게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하루의 노동으로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만족감이 있는 줄 몰랐어요. 제 자신에게 조차도 솔직한 순간이 별로 없었던 거죠.


190128 하늘과 맞닿은 오늘의 바다.



그시차 적응으로 잠을 못 잔다니 걱정돼요. 저야 덴마크 섬의 깊은 밤에 카톡 하니 좋지만요. 몸 잘 챙기고 또 연락해요 우리. 한국 돌아가면 이태원에서 신나게 놀아봅시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 2019년 1월 28일 아직도 덴마크에서. 



*표지사진 출처 ; SBS















매거진의 이전글 덴마크인 너와 한국인 내가 가질 수 있는 미래는 달라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