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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Mar 20. 2019

너에게는 말이 안되겠지만,
나에게는 일상이야

한국의 페미니즘 이슈를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신기한 사람이 되었다. 


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2위,  세계 8위의 양성평등 국가

덴마크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들은 내가 한국 사회를 이야기 해 줄때마다 '말도 안돼' 를 외쳤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아직도 낙태법이 존재해 낙태가 불법인 나라. 
결혼 후 직장과, 육아, 그리고 집안일 당연하게 여성의 몫인 나라. 
자신이 게이임을 밝힌 연예인이 채 5명도 안되는 나라. 
화장실, 모텔 등을 갈 때마다 몰래카메라가 있을지 불안 해야하는 나라.
세계 6위의 성매매 시장인 나라.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순간 혐오의 대상이 되는 나라. 
연 평균 2113 시간을 일하는 나라. (덴마크 1457 시간. 2016년 기준)

 

한국 사회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신기한 사람이 되었다. 

"세상에 아직도 그런 나라가 존재한다니. 한국 돌아가지말고 여기 덴마크에 있어. 여기서는 안그래도 돼"

덴마크에 온 지 얼마안되었을 때는 이런 반응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 

한국이 너무 힘들어서 덴마크로 도망갔던 나에게 "너는 잘못이 없어, 네가 지냈던 사회가 문제였던 거야"  라는 말로 들렸으니까. 





하지만 덴마크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외국 친구들이 한국 사회의 불합리성에 대해 동의 혹은 더 나아가 비난 할 때마다 나는 짜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 한국 사회 말 안되지. 그래서 나도 덴마크로 도망온거고. 하지만 한국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내는 공간이고 , 나의 과거가 그리고 아마도 나의 미래도 있을 곳이다. 너희에게는 마냥 신기하고 비이성적인 나라이겠지만, 나에게는 일상이며 어떻게든 내가 살아내야할 공간이야. 


왜 한국이 엉망인지 질문받은 적도 있었다. 북한과 신뢰를 쌓지 못하는 현재를,  높은 학생 자살률을, K-POP 시장의 착취를 ,긴 노동시간을, 낙태법이 아직도 존재하는 이유들을, 그들이 아는 유일한 한국인인 나에게 물었다. 성실히 대답해주다 가도 지치는 순간이 오면 문득 궁금했다. 


너희는 어떻게 이렇게 잘살아? 


식민지 경험이 없이, 다른 나라를 침략했던 제국주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덴마크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던 중앙유럽에 비해 세계대전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국가에 속한다. 예로부터 바다 길목을 막아 세금을 걷어 국가 재산을 불렸고(바이킹), 선박업, 농업등이 발달해 부강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적극적으로 자유 경제 시장을 받아들이며 화폐가치를 조절하면서 동시에 신뢰를 바탕으로한 복지제도를 확충했다. 


요약하자면 덴마크의 역사는 잦은 침입과 식민지화,  전쟁을 겪었던 한국의 역사와는 매우 달랐다. 


그니까 그 친구들과 내가 이렇게 다른 삶을 사는 이유는, 걔네가 잘나서도 아니고, 내가 못나서도 아니고 그냥 우리가 다른 역사를 가진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덴마크 인들은 우연히 얻은 이 기득권 덕분에 늘 자신들의 언어가 보편적이라고 믿는 무지한 상태로 지낼 수 있는 것이다. 



 

SNS에서 한국의 소식을 접한다. 여전히 높은 실업률, 미세먼지 그리고 얼마전 드러난 버닝썬 사건 까지. 

앞으로 빅뱅 좋아한다는 외국 친구가 있으면 말해줘야 할 내용이 생겼네라고 생각했다. 익숙한 일이다. 김기덕의 영화가 좋아 수녀가 되었다는 프라하 친구에게, 김기덕 성폭력 의혹을 기사를 영어로 보여줬던게 작년이다. 



2016 한국의 탄핵을 보며 서구 언론과 지식인들은, 자기 나라 시민들은 제국주의적 발전 과정을 통해 형성된 '안락된 지대 (Comfort zone)'에 익숙해진 나머지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없다며 부러움을 표시했다 .
<선망국의 시간, p15 발췌> 


나는 이제 더이상 덴마크에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덴마크인들은 자신들의 안락된 지대가 무너질까봐 두려워하고 있고, 나 같은 아시아 여성을 자신들의 안락한 지대에 포함시키지 않기 위해 다양한 법들을 제정하고 있다. 청소, 카페, 일식당, 투어 가이드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다면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한국에 계속 살아야 한다면 나는 조금이라도 한국 사회를 바꿔나가고 싶다. 이 곳 덴마크에서 깨달은 한가지.  

변화는 중심에서 부터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 학교에서 인종차별을 당했을 때, 내가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덴마크에는 인종차별이 없지'하는 게으른 믿음으로 편히 지냈을 것이다. 결국 '아시아 여성'인 나같은 주변부에서 시작된 저항이 중심부를 놀라게 하고 그들의 반작용이 학교의 교칙을, 문화를 그리고 생각을 조금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계속 질문을 던지고, 화를 낼 것이다.

그런 삶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매일 이 어이없는 하루들을 지탱하게 해주는 힘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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