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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Feb 18. 2019

내가 아시아 여성이여서 좋다는
덴마크 남자  

아시안 페티시, 옐로우 피버에 대해


E 에게



내가 덴마크에 간다고 했을 때, 잘생긴 북유럽 남자들 많이 만나겠네! 라며 언니가 부러워했던게 생각나. 한국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북유럽 남자들은 키가 크고, 옷을 잘 입고, 육아를 여성의 일로 생각하지 않는 진보적인 남성. 라떼파파의 이미지도 그런거잖아. 모델같은 남성이 아이 유모차를 끌고 행복해보이는 모습.


이런 모습 기대한거지? @경기일보.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언니는 분명 덴마크 남자들 만나봤냐고 물어보겠지. 나는 한숨을 쉬며 만나긴 뭘 만나, 전남친 헤어진 여파가 커서 내내 울기만 했어- 라고 대답할거야. 그럼 언니는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 또 묻겠지,


덴마크 남자들 어떤 것 같아?


언니, 나처럼 예민하고 생각 많은 애한테 뭘 바라. 나는 국적과 성별로 일반화 하기 싫어. 생각해봐,  한국여자들 어떤것 같아? 라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묻는다면 불쾌하지 않겠어? 한국에도 얼마나 다양한 여성분들이 존재해. 이처럼 다른 우리가 하나의 특징으로 일반화 된다면 그건 폭력이잖아.


언니의 짜증과 포기가 섞인 얼굴이 벌써 보이는 것 같아. 그래! 내가 잘못했다 하면서 째려보겠지. 그럼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할거야. 언니, 나는 언니의 환상을 채워주지는 못하겠지만 조금 부셔버릴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이 이야기도 괜찮겠어?





지난 주에 동네 바에서 파티를 하고 있는데 학교 학생 하나가 다가와서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어. 나는 놀라서 "왜?"라고 물었는데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라


"나는 동양적인 얼굴을 가진 여자들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너 지금 내 인종 때문에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거야?"

"처음에는 네 인종 때문에 끌린게 사실이야"

"동양적인 얼굴을 가진 여자들한테는 왜 끌리게 되었는데?"

"음 아무래도 일본 만화영향이 컸던 것 같아"


와 장난하냐.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오로지 내 인종 때문이라니. 뭐 이딴 놈이 다있어. 어이가 없어서 나중에 다른 덴마크 남자애한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더니 걔가 그러더라.


일본 포로노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지.


아시안 페티시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비아시아계인들이 아시아인들에 대해 일종의 스트레오타입을 가지는 건데, 대부분 성적인 강박과 연결돼.  동양여성이 순종적이고 수동적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아시아 여성만 찾는 서구 남성(비아시아계 - 주로 백인 서구 남성) 들을 'Yellow Fever"라고 불러. (원래는 황열병을 일컫는 말이지만) 그들이 아시아 여성들에게 기대하는 이미지는 다음과 같아


@huffpost



"Asian females are willing to listen, willing to adapt, willing to accept what the guy says.”

아시아 여성들은 남성들이 말하는 것을 잘 듣고, 맞추고,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출처)


"There is something about the Asian girls. They are cute. They are smart. They have a kind of thing going on.”

아시아 소녀들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귀엽습니다. 그들은 영리합니다. 그들은 무언가 타고난 것이 있습니다. (출처)



아시아 여성이 비아시아계 여성(서양 백인 여성)들에 비교해 특별하다고 말하는 것, 어찌보면 칭찬같아 보이기도 해. 실제로 한 친구는 나한테 그러더라. "너한테 특별하다고 말하는 게 뭐가 나빠? 관심가져주면 좋잖아"


옐로우 피버 페티시의 기원은 오리엔탈리즘의 기원과  같은 맥락을 지녀.


오리엔탈리즘은 (…) 유럽 이념이라는 집단적 관념과 크게 다른 것이 아니다. 이러한 집단적 통념은 ‘우리들’ 유럽인을 ‘그들’ 모든 비유럽인과 대립하는 것으로 정체화하는 것이다. (…) 다른 모든 비유럽 민족들과 문화들과 비교해볼 때 우월한 유럽의 정체성이라는 관념이 바로 그것이다.” (한겨례)


백인 남성들이 나에게 "특별하다"고 말하려면  "친숙하고 정상적인 것"이 존재해야만 해. 나는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서구 여성'에 비해서 순종적이며 수동적이지.  나는 그들에게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이상하고 낯설고 특별한' 사람인거야.


언니 , 내 인생 최고의 인종차별들은 덴마크에서 다 당했는데 코펜하겐에 있을 때보다는 작은 도시들에서 더 심했어. 길거리를 다니면 '곤니찌와' '니하오'를 포함해서 온갖 사랑표현을 일본어로 들었어. 지난 번 열기구 축제에 갔을 때 어쩔 수 없이 약간 외진 골목길로 갔어야 했는데 그 곳에서 16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애들이 자기 성기를(바지를 입은채로) 가리키며 'We love Japanese!"(우리는  일본인들을 사랑해!) 외치더라.


그냥 아시아 여성의 외모를 선호하는 '취향'일 수도 있지 않냐고? 아시안 페티시는 선호와는 차이가 있어. 예를 들어 언니는 얼굴이 작고 마른 체형의 남자를 좋아하잖아? 하지만 그 사람이 얼굴이 작고 마르다는 것 말고는 다른 가정을 하지 않지. 아시안 페티시의 문제점은 아시아 여성들을 좋아하는 동시에 여성들에게 특정 성격, 가치, 행동을 투사하고 기대한다는 거야. (출처)


나를 오로지 "아시아 여성"으로만 보는 인종 페티쉬는 나라는 개인의 성격 및 특징을 지우고 타자화해.

그들은 "아시아 여성"의 스트레오타입에 맞는 - 순종적이며 수줍은 성격- 을 나에게 투사하지. 실제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상관없이 말이야. 


그래서 나는 기분이 나빠.





덴마크에서 알게된 말레이시아 여성분이 있어. 그 분은 덴마크 남자와 이혼했는데, 어느 날 결혼 사진들을 보여줬어. 그런데 결혼 사진에 전 남편 이 직접 이렇게 적었더라고. "West meets East" 유명 앨범 이름이지. 알아. 하지만 뭔가 쎄했어. 이혼 이후에 그 남자가 어리고 이쁜 필리핀 여자를 만났다는 부분에서는 더 쎄했어.


해외에서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면 그 사람이 '아시아 여성'에 대한 스트레오 타입 때문에 관심을 보이는 건지, 아니면 나라는 사람에 흥미가 있는 건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돼. 오죽하면 인터넷에 옐로우 피버 구별법이 인기겠어.


언니, 그래도 북유럽은 낫지 않을까? 하는 알량한 기대감은 버려. 흔히 덴마크 하면 행복의 나라라는 이미지 때문에 유토피아를 기대하는데, 여기도 사람사는 곳이고,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이민자들에게는 특히나 보수적인 국가야. 덴마크 친구말로는 덴마크에서 일본 만화와 포로노가 인기라더라. 그들이 평생 봐온 동양인 여성에 대한 이미지가 만화, 혹은 포로노 속의 성적 대상화 된 이미지 일 수도 있는거야. 큰 가슴에 순진무구한 표정.


@ebay


어때? 환상이 이제 좀 깨져? 나 아무래도 환상 깨는데 소질이 있는 것 같아. 덴마크 남자 어떠냐는 질문에 아시안 페티시로 대답했으니. 하지만 이게 나인 걸. 근데 여기애들은 틈만 나면 나한테 귀엽다, 작다 이러더라? 내가 어이가 없어서 귀엽다는 건 권력표현이라고. 대부분 귀엽다는 말은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거나 무해한 존재에게만 쓴다고 대답했는데도 아오 계속 그러는 거야. 영어를 좀 만 더 잘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럼 나는 이만 물러갈게. 총총. 너무 짜증내지 말구(하트)



- 혼자 씩씩거리는 나날들 속 덴마크에서. 2019.02.17





@표지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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