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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Feb 05. 2019

덴마크 워킹홀리데이 참 힘들어요


D에게



덴마크 애들은 설날을 모르더라고요.  Lunar New Year's Day'라고 하니 못 알아듣길래, 그래 알았다. 내가 소통을 위해 양보한다 하는 마음으로 Chinese New Year이라고도 설명해 줬는데도 모르는 거예요. 결국 덴마크의 크리스마스 같이 온 가족이 모이는 가장 큰 holiday라고 설명하니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이었어요. 그리고 다음 질문,


그래서 설날이 뭐하는 날인데?


기가 차서 답변하려고 하는데, 정말 설날이 뭐하는 날이죠? 당연하게 생각했던 단어인데...  결국 사전을 뒤졌어요. 설날 : 음력 정월 초 하룻날. 달의 시간에서는 오늘이 새해네요. 하얀 떡으로 만든 떡국을 먹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자 하는 날.


더럽혀지지 않는 마음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둥글고 흰 떡국 떡처럼 말이죠. 

한국에 있으면 마음에 회색빛이 감도는 것 같았어요. 혹시 콘크리트 냄새를 맡아본 적 있나요? 마른 먼지 냄새 같기도 한데,  어지럽고 탁한 냄새가 나요. 제 마음에서 그 냄새가 나는 것 같았어요. 편두통이 자주 찾아왔고,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쫓겨서 열심히 뛰는 데 계속 탁해지는 느낌.


 


조금이라고 마음을 맑게 만들고 싶어 덴마크에 왔고, 여기서 D를 만났죠. 저와 D는 비슷한 이유로 한국에서 도망쳤잖아요. 도망칠 곳으로 덴마크를 고른 이유는 덴마크가 가진 이미지가 컸죠.


행복의 나라

청렴한 정치

창의적인 교육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

워라벨이 보장된 삶

양성평등이 잘 구축된 사회

성소수자도 결혼할 수 있는 제도


돈을 벌며 영어도 배울 수 있는 호주나 캐나다가 아닌, 덴마크를 워홀로 택했다는 건, 덴마크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배우고 싶은 - 돈보다는 행복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D도 알죠. 덴마크 워킹홀리데이 참 힘들어요.  D,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어요. 현지 비자 발급받기 위해 주소지 구하는 것부터, 최근에 일했던 카페가 망해 돈도 못 받고, 한국이 싫어 덴마크로 왔지만 결국 한/일식당에게 일하게 되었죠. 덴마크어를 하지 못하고 전문 기술도 없는 동양인을 받아주는 곳은 아시아 식당뿐. 식당 주방에서 야채를 다듬고 물건을 옮기다 보면 하루는 금방 가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아시아에서 온 워홀러 또는 학생들 인지라 덴마크 인과 정작 만날 기회가 없었다고 했죠.



제가 지내고 있는 섬에서는 덴마크 정부가 곧 난민을 곧 가둘 리트홀름 섬이 보여요.

덴마크 정부는 범죄 행위로 유죄판결을 받거나, 망명 신청이 거부되었는데 여러 이유로 본국에 돌아갈 수 없어 덴마크 정부에 남아있는 이민자들을 그 섬에 격리시킬 거라고 해요. (출처) 지금 그 섬은 전염병 있는 동물들을 연구소로 쓰이고 있어요. 전염병 있는 가축들과 이민자들. 덴마크 정부가 보기에 그들은 얼마나 다른 걸까요. 이 곳에서 이민자인 우리가 범죄를 저지르면 우리 또한 그 섬에 격리될 수 있겠죠. 그 생각을 하니 제가 마치 전염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가축처럼 느껴졌어요.


국제기구에서 일을 하고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일을 하고 계시는 덴마크인에게, 외국인으로서 덴마크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삶이 어떨지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분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죠.


유럽 시민이 아닌 네가 이 곳에서 공부하는 건 돈도 많이 들고 졸업해도 직장을  찾기 어려울 거야. 특히 덴마크어를 못한다면 더더욱. 차라리 호주를 가는 건 어떠니?


저는 몰랐는 데, 제가 여기서 일하기 전에 한 중년 남자 직원분이 반대를 하셨대요. 왜 덴마크인을 쓰지 않고 이민자를 쓰냐고. 심지어 저는 여기서 돈을 받고 일하는 것도 아닌데요. 저에게는 늘 상냥하셨던 분이라 나중에 이 말 듣고 충격받았어요. 그리고 서러웠죠. 제 모든 정체성이 '이민자'라는 한마디로 정리된다는 게. 시리아 난민이지만 학교 주방에서 정직원으로 일하던, 늘 웃는 얼굴의 남자분이 술에 취해서 덴마크처럼 폐쇄적인 국가에 온 걸 후회한다고 말했을 때가  생각났어요. 덴마크 사회에서 모범적으로 적응한 사례라며 포스터도 찍으셨던 분이었는데 덴마크를 택한 걸 후회하다니. 놀라고 안타까우면서도 솔직히 남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 리트홀름 섬 앞에서 우리는 같은 이민자의 위치라는 걸 깨달았죠.


덴마크 친구와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고비용 고복지 사회다 보니  이민자들이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은 채 복지의 혜택만을 누릴 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 체감한다고 말했어요. 최근 많은 리서치들이 외국인 유치가 세금 조달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고, 주방에서 재료 다듬으면서 받은 시금의 37%를 세금으로 내는 D도 있죠! D 혹시 세금 37% 내고 덴마크 정부의 복지 혜택 받은 거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마지막에 나오는 질문.

'그럼 D, 한국 돌아갈 거예요?'

그럴 때마다 D는 잘 모르겠지만 조금 더 버티고 싶다고 이야기했죠.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닥칠 불안을 생각하면 그래도 이 곳에서 몸 고생하는 게 낫다고. 그리고 저에게 물었죠


'모릴은 한국 돌아갈 거예요?'


글쎄요. 있잖아요, 여기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중 하나라는 데 사람들을 보면 다들 어딘가 아파요. 전 살면서 이렇게 자신의 정신적 증상을 잘 설명하는 사람들 처음 봐요. 나는 우울증/ 주의력 결핍장애/ 대인관계 기피증/ 조울증/ 불안증/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이 있어라고 덴마크인들이 말할 때마다 저는 행복을 찾아서 이 곳에 왔는데요? 제 환상 좀 그만 깨시죠?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라요.


한국인들이 화병과 과로로 고생한다면 이 곳에서는 우울이 큰 문제라고 해요. 지치는 것과 우울한 것 중 무엇이 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청소기를 돌립니다.  계속 질문을 던져요. 어쩌면 행복은 우울과 상관없는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행복하다는 건 무엇일까요? 사전을 또 찾아보니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것. 만족한다는 건 무언가에 대한 기대치가 낮을 때만 가능한 거 아닌가. 그럼 여기 사람들은 우울하지만 삶에 대한 기대치가 낮고 기본적인 삶의 보장이 가능하니 행복한 것일까요?  그게 제가 만난 우울증에 불안장애로 고생하는 덴마크인들이  행복하냐는 질문에 '응 나름대로'라고 대답하는 이유일까요? 여기 섬사람들 진짜 이상한데  이상하면서도 자기 집/직장/가족 꾸리며 살아나가는 것 보면 복지제도는 삶의 다양성을 보장해주는 것 맞는 것 같기도 해요.




한국에서는 제 마음이 회색 빛이 될 것 같았는데, 여기서는 탁한 파란색이 되는 기분이에요. 햇빛도 들지 않아 어둡고 쓸쓸한데 자연은 쓸데없이 광활해요. 흰 마음은 여전히 갖지 못했지만 흰색 별들은 마음껏 보는 게 위로인 나날입니다.


방금 빨래 가지러 나갔다 왔는데, 하얀 별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아 떡국 먹고 싶다.

우리 한국 가면 D가 좋아하는 막창에 소맥 마셔요.



- 2019년 2월 4일 하얀 별이 가득 한 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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