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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펫크리에이터 모리 Apr 11. 2022

기다림

열네 번째 걸음


수업은 10시 정각에 시작하는데 이미 시계는 9시 55분을 가리키고 있다. 


수업에 늦어서 헐레벌떡 뛰어가고 있는 중이어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학교 건물  카페 안에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중이다. 늦었는데도 아직 카페에서  하고 있느냐 묻는다면 조금  기다려보자.


직원에게 커피를  받아  운동복 차림의 여성이 마침내 카페  밖을 나선다.


딸랑-


됐다! 이제 카페를 나서도 된다. 벌써 정각이니까  달려야겠다. 커피를  손만 최대한 움직이지 않은  발만 동동 굴려 교실로 잽싸게 달려 나간다.



왜 나는 일찍이 카페를 나서지 않았을까?



조금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주문할  시곗바늘은 9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커피를 받아 들고 천천히 교실까지 걸어가도 교수님이 도착하기  자리에 앉아있을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데 커피를 받아 들고 입구 쪽으로 몸을 돌리려는 찰나, 운동복 차림의 여성이 문을 열고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게 아닌가. 그게 뭐가 문제인가 싶지만, 사실은 여성이 아니라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문 밖의 개가 문제였던 거다.


개는 마치 주인을 시선에서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뚫어져라 카페 안을 바라보고 있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개를 한번, 개의 시선을 따라 카페 안을 한번 바라보고 길을 지나간다. 말똥 한 두 눈에 비치는 주인을 향한 애절함이 햇빛을 타고 카페 안까지 흘러들어온다.



지금쯤이면 카페를 나서 교실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지만, 차마 문 밖의 애절한 시선을 막아설 수 없어 잠시 카페 안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카페 안에는 다른 손님들은 모두 시간 여유가 있는지 자리에 앉아 느긋이 커피를 즐기고 있다. 아무래도 시간에 쫓기는 건 나 밖에 없는 듯 보인다. 그 말인 즉, 내가 나서지 않으면 개가 낯선 이에게 제 주인의 모습을 뺏길 일은 없다는 것.


차마 개에게 나쁜 짓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일단은 기다리기로 한다. 운동복 차림의 여성이 카페 문 밖을 나설 때까지.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여성은 직원과 수다를 떠느라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본인의 개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개가 카페 밖에 홀로 묶여 있다는 데에 대한 불안감이나 조급함은 괜히 나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뉴욕에서는 누구나 가게 앞에 개를 묶어두고 일을 보기에 그녀를 비난할 건 없지만, 어쨌든 시계를 보니 그냥 아까 나가버렸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살짝 들기 시작한다.


그때 직원이 여성의 커피를 들고 나타난다.

드디어!


문밖을 나서는 여성을 뒤쫓아 서둘러 교실로 향한다.


개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긴 꼬리를 좌우로 최대한 빠르게 휘저어 대고, 그때 흔들리는 건 개의 꼬리뿐만은 아니다. 교실로 향해 달리는 동안 컵 안에 든 크림과 커피가 출렁이며 한데 뒤섞이는 게 느껴진다. 교실에 도착할 쯤이면 크림은 온데간데 사라져 있고 하얗고 작은 크림 잔여물만이 커피 위에 동동 올라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각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 교수님은 아직 도착하시지 않았다. 크림도 아직 완전히 내려앉지 않았다. 뚜껑을 열어 아직 채 사라지지 않은 크림을 보니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간다.



오늘 나는 개의 시선과 커피 속 크림 모두를 지켜내었다.

누군가 내게 오늘 하루가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Perfect"라고 답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Instagram : @mori_park

Youtube : 펫크리에이터 모리




글/사진 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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