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걸음
수업은 10시 정각에 시작하는데 이미 시계는 9시 55분을 가리키고 있다.
수업에 늦어서 헐레벌떡 뛰어가고 있는 중이어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학교 건물 앞 카페 안에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중이다. 늦었는데도 아직 카페에서 뭘 하고 있느냐 묻는다면 조금 더 기다려보자.
직원에게 커피를 막 받아 든 운동복 차림의 여성이 마침내 카페 문 밖을 나선다.
딸랑-
됐다! 이제 카페를 나서도 된다. 벌써 정각이니까 좀 달려야겠다. 커피를 든 손만 최대한 움직이지 않은 채 발만 동동 굴려 교실로 잽싸게 달려 나간다.
왜 나는 일찍이 카페를 나서지 않았을까?
조금 전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주문할 때 시곗바늘은 9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커피를 받아 들고 천천히 교실까지 걸어가도 교수님이 도착하기 전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데 커피를 받아 들고 입구 쪽으로 몸을 돌리려는 찰나, 운동복 차림의 여성이 문을 열고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게 아닌가. 그게 뭐가 문제인가 싶지만, 사실은 여성이 아니라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문 밖의 개가 문제였던 거다.
개는 마치 주인을 시선에서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뚫어져라 카페 안을 바라보고 있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개를 한번, 개의 시선을 따라 카페 안을 한번 바라보고 길을 지나간다. 말똥 한 두 눈에 비치는 주인을 향한 애절함이 햇빛을 타고 카페 안까지 흘러들어온다.
지금쯤이면 카페를 나서 교실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지만, 차마 문 밖의 애절한 시선을 막아설 수 없어 잠시 카페 안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카페 안에는 다른 손님들은 모두 시간 여유가 있는지 자리에 앉아 느긋이 커피를 즐기고 있다. 아무래도 시간에 쫓기는 건 나 밖에 없는 듯 보인다. 그 말인 즉, 내가 나서지 않으면 개가 낯선 이에게 제 주인의 모습을 뺏길 일은 없다는 것.
차마 개에게 나쁜 짓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일단은 기다리기로 한다. 운동복 차림의 여성이 카페 문 밖을 나설 때까지.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여성은 직원과 수다를 떠느라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본인의 개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개가 카페 밖에 홀로 묶여 있다는 데에 대한 불안감이나 조급함은 괜히 나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뉴욕에서는 누구나 가게 앞에 개를 묶어두고 일을 보기에 그녀를 비난할 건 없지만, 어쨌든 시계를 보니 그냥 아까 나가버렸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살짝 들기 시작한다.
그때 직원이 여성의 커피를 들고 나타난다.
드디어!
문밖을 나서는 여성을 뒤쫓아 서둘러 교실로 향한다.
개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긴 꼬리를 좌우로 최대한 빠르게 휘저어 대고, 그때 흔들리는 건 개의 꼬리뿐만은 아니다. 교실로 향해 달리는 동안 컵 안에 든 크림과 커피가 출렁이며 한데 뒤섞이는 게 느껴진다. 교실에 도착할 쯤이면 크림은 온데간데 사라져 있고 하얗고 작은 크림 잔여물만이 커피 위에 동동 올라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각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 교수님은 아직 도착하시지 않았다. 크림도 아직 완전히 내려앉지 않았다. 뚜껑을 열어 아직 채 사라지지 않은 크림을 보니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간다.
오늘 나는 개의 시선과 커피 속 크림 모두를 지켜내었다.
누군가 내게 오늘 하루가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Perfect"라고 답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Instagram : @mori_park
Youtube : 펫크리에이터 모리
글/사진 Mo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