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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길고양이

제7화

by 모리박

그 시각 지구에 도착한 포레와 누렁아빠는 길을 헤매고 있어요.


“이것 참. 이쪽이 맞았던 것 같은데.. 킁킁”


열심히 바닥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지만 어느 쪽이 누렁아빠가 살던 곳인지 찾을 수가 없는가 봐요.


“이쪽에 이런 건물은 없었는데.. 저쪽인가? 아냐, 이쪽.... 휴. 이러다간 평생 찾지 못하겠어. 미안하구나 포레야. 시작부터 길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괜찮아요. 오래전에 도망 나왔으니 찾지 못하는 게 당연해요. 냄새를 알려주시면 저도 같이 찾아볼게요.”

“그래, 그렇게 생각해 주니 정말 고맙구나. 아주 진한 피비린내나 음식물 쓰레기 냄새를 찾으면 돼. 내가 있던 곳에는 수백 마리의 개들과 닭들이 철장 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주인이 철장 밖으로 우릴 끌어내면 태어나 처음으로 땅이란 걸 밟아볼 수 있었어. 그렇게 몇 걸음 걸어보고 바로 죽임을 당했지. 인간의 먹이가 되는 거야. 죽을 때까지 철장 안에 갇혀 인간이 먹고 남긴 음식물 쓰레기만 먹고살다 가는 생이었다.”


떠올리기조차 괴로운 듯 누렁아빠는 눈을 질끈 감아요.


‘피비린내와 음식물 쓰레기 냄새...’


포레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누렁아빠와 함께 바닥에 코를 대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 이쪽에서 짙은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아요. 아저씨, 이쪽인 것 같은데요?”

“그래 맞는 것 같아. 그런데 이건 개의 피는 아닌 듯하구나.”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자 냄새가 점차 짙어져요. 그리고 눈앞에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돌아다니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역시.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했더니 수산시장이구나. 이곳은 물고기들을 잡아다 도살하는 곳이지. 내가 찾던 곳은 아니구나.”


막 돌아 나서려는데 포레의 눈에 익숙하지만 두려운 그것이 보여요. 똑같이 피비린내가 나는 손, 그러나 이건 분명히 포레가 아는 냄새입니다. 저 손에는 주사기가 들려 있다가 줄이 들려 있다가 장갑이 끼어 있다가 때론 칼이 들어있을 때도 있어요. 저건...


“도망가요!!”


포레의 전 주인입니다.


이곳은 아마 포레가 도망 나왔던 강아지공장 근처인가 봐요. 마구 달려가는 둘을 보고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도망갑니다.


“어머, 어머!”

“어이쿠!”


얼마나 멀리 왔을까요. 포레와 누렁아저씨가 좁은 골목에 앉아 가쁜 숨을 내쉬어요.


“아저씨, 아저씨가 도망 나온 곳이 이곳이 아니면 어쩌죠? 아주 먼 곳 일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러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달쿠미의 기회를 이용한 거니 달쿠미가 도망 나온 곳 근처로 도착한 것 같구나. 그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모르겠다 포레야. 모르겠어...”


포레는 아직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저씨를 두고 잠시 방법을 생각해 봐요. 지나가는 강아지 친구라도 있으면 아저씨가 살던 곳에 대해 물어볼 수라도 있을 텐데 말이죠. 그때 마법같이 포레의 눈앞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납니다.


“어, 저 저기!”


어디론가 조심스럽게 향하던 고양이가 포레 쪽을 바라봐요.


“뭐지?”

“혹시 뭘 좀 물어봐도 될까? 이 근처에 강아지가 엄청 많이 살고 있는 피 냄새와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나는 곳을 찾고 있어. 어딘지 알고 있니?”


고양이가 포레를 빤히 바라보며 말해요.


“그런 곳이라면 한 군데 아는 곳이 있지. 그런데 거긴 왜?”

“아, 데려와야 할 친구들이 있어.”

“데려온다고?”


고양이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깜빡여요.


“응. 저기 앉아있는 내 친구의 가족을 구해와야 하거든.”


고양이가 이번엔 힘겹게 웃어 보이는 누렁아저씨를 보며 더욱 흥미롭다는 표정이 됩니다.


“고양이 친구, 알고 있는 곳이 내가 찾는 곳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릴 좀 도와주겠나?”

“흠.. 거기 음식물 쓰레기가 아주 많아 가끔 먹을 게 너무 없을 때 가긴 하는데... 거기 있는 인간이 워낙 거칠어서 딱히 내키지는 않네요. 음식물 쓰레기는 마당 한가운데 떡 하니 놓아두고 고양이들은 들어오지도 못하게 덫을 곳곳에 놓아두었거든요. 근데 거기 돌아가서 어떻게 가족을 구해오겠다는 거죠?”

“그건...”

“방법이 있을 거야.”


답하지 못하는 누렁아저씨 대신 포레가 말하자 고양이의 눈이 갸름하게 떠지더니 둘을 번갈아 바라봐요.


‘도살자가 있는 곳에 대책도 없이 가족을 구하러 가겠다는 멍청한 아저씨와 이런 대책도 없는 아저씨를 돕겠다는 똑같이 멍청한데 용기만 있는 작은 강아지라.....’


고양이는 갑자기 뻐근한지 기지개를 쫙 켜더니 느릿하게 말합니다.


Untitled_Artwork 10.jpg


“도와줄게요, 어차피 딱히 할 일도 없는데 뭐.”


포레와 누렁아빠는 기뻐 서로를 바라봅니다.


“고마워! 대신 너도 우리와 함께 희망행성으로 가자. 그곳엔 나쁜 인간도 없고 아픔도, 굶주림도 없어. 오직 행복한 희망만이 가득해!”


포레의 말을 들은 고양이가 그런 곳이 있냐는 표정으로 묻습니다.


“그럼 거기 가면 맨날 참치캔을 먹을 수 있나?”

“응? 참치캔 말이야?”

“그래, 그렇게 좋은 곳이라면 응당 참치캔이 있어야 하는 건데.”

“아... 거기엔 그런 음식들 대신 이런 디저트들이 많아!”


포레가 도넛과 누렁아저씨의 와플바퀴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정말이지 내가 평생 먹어본 어떠한 것들보다도 더 맛있어! 참치캔은 아마 생각도 안 나게 될걸?”


신이 나 말하는 포레를 보며 고양이가 풋- 하며 소리 내 웃습니다.


“참치캔도 없는 곳에 희망이 있다고? 게다가 거기 가는 게 그런 우스꽝스러운 것들을 끼고 다녀야 하는 거라면 미안하지만 난 사양할게. 난 내 유려하고 자연스러운 곡선의 몸이 좋아. 다른 것들은 거추장스러울 뿐이야.”


하지만 많이 다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고 포레가 말하려는데 옆에서 누렁아저씨가 포레를 말립니다.


‘저 고양이는 멀쩡해 보이는데, 굳이 겪어보지 못한 아픈 상처에 대해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 포레야.’


“안 가? 데려다 달라며.”


벌써 앞서 걸어 나가던 고양이가 서로를 바라보고 서있는 포레와 누렁아저씨를 돌아보며 말합니다.


“가자꾸나. 가자, 포레야.”

“네, 아저씨.”


둘은 사뿐히 앞장서 걸어 나가는 고양이를 따라 어쩌면 누렁아저씨가 찾는 곳일지도 모를 그곳으로 향합니다.



(+ 고양이는 눈에 띄는 하얀 털을 가진 탓에 다른 길고양이들보다 더 혹독한 길바닥 생활을 견뎌와야 했다. 하지만 그 덕에 더 민첩하고 똑똑한 고양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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