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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밥중이잖아!

제8화

by 모리박

이때 여전히 희망행성에서는 고래밥이 열을 내고 있어요.


“미친 거야, 미친 거라구! 내가 10년 전에 아저씨를 어떻게 구해왔는데, 거길 또 갈 수가 있어!”


고래밥과 누렁아빠의 사연은 이래요.


누렁아빠가 처음 도살장을 도망 나오자마자 차에 치여 희망행성으로 구조되어 왔을 때 고래밥은 아주 어린 작은 고래밥이었어요. 고래밥에겐 항상 함께 다니는 무리들이 있었지만 한쪽 지느러미가 온전하지 못한 고래밥은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고래밥아, 새로 온 큰 개가 있는데 네가 이곳 소개를 좀 해줘야겠다. 많이 다쳐왔는데 아이들을 많이 그리워해. 함께 있어주면 힘이 될 것 같구나.”


희망님의 요청에 따라 고래밥은 누렁아저씨와 며칠을 함께 지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누렁아저씨는 가족을 구하러 가야겠다 말해요. 와플바퀴를 단 채로는 힘들 거라는 고래밥의 말에도 누렁아저씨는 단호했습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간다고 약속했어. 가야만 해.”


새로운 와플 바퀴를 바꿔 끼우자마자 누렁아저씨는 지구로 떠났습니다. 고래밥은 와플 구멍사이에 끼어 몰래 누렁아빠를 따라갔어요. 고래밥의 첫 지구 행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있어야 할 곳엔 텅 빈 철장만이 있었고 누렁아저씨는 그사이 도살자에게 발각되어 다시 갇힐 위기에 처했어요. 와플에 끼어있던 고래밥이 나서서 도살자의 얼굴을 마구 깨물어 겨우 둘은 도망칠 수 있었답니다.


“내가 그렇게 고래고생을 해서 겨우 다시 데려왔는데... 다시 거길 가다니!”


고래밥이 열받아 이리저리 허공을 빙글빙글 돌며 말해요.


“이 아저씨 만나기만 해 봐, 내가 와플바퀴를 야금야금 먹어주겠어!”

“그래, 그건 일단 만나서 데려오면 그다음 이야기이고. 그래서 내려가서 일단 어떻게 찾을 건데?”


숟가락이 고래밥에게 묻자 포크가 성을 냅니다.


“무슨 소리! 얘는 희망행성 생명체인데 지구에 내려가면 안 되지.”


고래밥이 포크를 노려봅니다. 포크도 질세라 허리춤에 손을 얹고 고래밥을 엄한 표정으로 바라봐요. 그때 달쿠미가 말합니다.


“저... 가족을 구하러 가신 거면 예전에 누렁아저씨가 왔던 곳으로 가면 거기 있지 않을까요?

“그렇네? 달쿠미 네가 드디어 머리를 쓰기 시작했구나?”


나이프가 웬일이냐는 듯 달쿠미를 바라봐요. 그때 옆에 있던 숟가락이 나이프의 옆구리를 푹 찌르며 말합니다.


“바보야, 넌 여기 지킴이를 평생 하면서 그것도 모르냐? 달쿠미의 기회를 쓴 거니까 그쪽이 아니라 달쿠미가 도망 나온 데로 갔겠지!”

“아, 그렇네?”

“보초는 안 서고 맨날 서서 졸기나 하는데 뭘 알겠어.”


나이프가 상관없다는 듯 심드렁하게 내뱉자 숟가락과 포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요.


“그만들 싸워! 하여튼 어른들이 애들보다 못하다니까!? 달쿠미, 우리가 내려가자. 어쨌든 둘을 찾는 게 목적이니까, 우린 둘만 찾아오면 되는 거야.”

“나... 나도 같이?”

“네 이 녀석, 이렇게 자연스럽게 가려고 하지 말란 말이야!”


포크가 다시 한번 성을 내지만 고래밥은 이제 대꾸도 하지 않아요. 대신 당황해하는 달쿠미에게 말합니다.


“그래, 네가 떠나온 곳이니까 길을 잘 알 거 아냐.”

“하지만 난 평생 철장 안에서만 살아와서 길을 잘 모르는걸.. 밖에 나가본 건 포레가 날 구하러 왔을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


달쿠미의 대답에 잠시 정적이 흐릅니다.


“망했구만.”


숟가락이 말합니다.


“갈수록 첩첩밥중이잖아!”

“첩첩산중이야.”


포크가 고래밥의 실수를 지적하자 고래밥이 물을 찍 내뿜더니 말합니다.


“칫, 그래도 일단 가자. 멀리 가버리면 못 찾게 되니까 어서 가는 게 좋겠어!”

“잠깐 기다려 고래밥, 네가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면 그땐 정말 큰일이 난단 말이야!”

“걱정 마, 내가 모두를 데리고 꼭 돌아올 거니까 누가 나에 대해 물어보면....

응, 그렇지! 애들한테 괴롭힘을 당해서 어딘가에 숨어있다 그래!”

“이놈아 누가 그걸 믿겠냐!”


포크와 고래밥이 또다시 실랑이를 벌이고 있자 서서 졸고 있던 나이프가 그들에게 다가와요.


“다녀와 고래밥. 포크, 길을 잘못 열어줬단 걸 희망님께 알릴 수는 없잖아? 우리끼리 해결하자고. 고래밥이 자신 있다잖아.”

“난처하구만...”


그때 언제 온 건지 허니가 모두에게 다가옵니다.


“안녕하세요! 여기 다 모여있네요? 방금 막 만든 꿀인데 맛이 너무 좋아서 한통 갖다 드리러 왔어요.”


모두의 시선이 허니에게 집중되자 고래밥이 달쿠미의 눈앞에 바짝 붙어 말해요.


“가자!”


슝-하고 몰래 떠나려는 고래밥을 포크가 다시 한번 붙잡습니다.


“잠깐!”

“아, 이러다 정말 늦는다니까!”


포크가 허니에게 건네받은 꿀벌 통을 보이며 말합니다.


“가져가. 어떻게 써야 할지는 알지?”


고래밥이 입술을 씰룩이다 이내 고개를 끄덕입니다.


꿀벌 통을 건네받은 달쿠미와 고래밥이 모두의 인사를 받으며 행성의 끝으로 걸어 나가요.


Untitled_Artwork 19.jpg


“조심히 다녀와! 꼭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한 발짝만 더 내디디면 바로 지구로 떨어질 겁니다. 달쿠미는 다시 돌아가는 것이 너무나 무섭지만 포레를 잃을 순 없어요. 돌고래의 하나, 둘, 셋 하는 소리에 둘의 모습이 이내 사라져요.


포크아저씨가 중얼거립니다.


“꼭 돌아와라 고래밥.”



(+ 꿀벌통은 말랑말랑해 어디든 넣으면 그 공간에 따라 모양이 변해 휴대가 간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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