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그 시각 포레와 누렁아저씨는 고양이를 따라 걷고 있어요. 고양이가 안내해 준 길로 걸어갈수록 피비린내와 쓰레기냄새가 짙어져요.
“다 왔어요. 여기 담벼락만 넘으면 둘이 찾던 바로 그곳이에요.”
고양이가 담장 위로 폴짝 올라가 말해요.
“흥, 여전히 음식물 쓰레기는 정 중앙에 있네. 운이 좋아 친구를 찾게 되면 나오면서 생선 하나만 부탁해요. 저기 온전한 생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포레가 아저씨를 바라보는데 아저씨의 표정이 어두워요.
“아저씨, 왜 그러세요?”
“여기가 아니구나. 여긴 내가 있던 곳이 아니야.”
“아.....”
“그래도 들어가서 찾아보긴 해야겠다.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갈 순 없어. 물어보면 가족의 행방을 아는 친구가 나타날지도 모르잖니.”
“네, 아저씨. 너무 상심 마세요. 꼭 찾을 거예요. 고양이야, 우린 너처럼 그렇게 위로 올라갈 순 없는데, 어떻게 들어가야 할까?”
고양이는 고개를 까딱하며 말해요.
“저 앞으로 가면 대문이 있어. 이 집 대문은 항상 열려있으니 그냥 들어가면 돼.”
고민하는 포레와 누렁아저씨에게 고양이가 말해요.
“여기서 망을 봐줄 테니 신호를 하면 안으로 들어가요. 대신 빠르고 신속하게 나와야 해, 안쪽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길은 저기 하나뿐이니까. 내가 말했나요? 여기 인간 성질이 말도 못 한다고.”
누렁아저씨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내가 들어가 볼 테니 포레 너는 여기 있거라.”
“아녜요, 저도 같이 가요. 혹시 인간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그러니 여기 있는 게 좋겠구나. 위험하니 나 혼자 빠르게 둘러보고 나올게.”
그때 고양이가 고개를 까딱하며 신호를 줘요. 포레가 어찌할 새도 없이 아저씨는 벌써 안으로 들어가고 없습니다.
‘아, 어쩌지!’
포레는 아저씨 말을 들어야 할지 뒤따라 들어가야 할지 고민입니다.
누렁아저씨는 살금살금 철장이 죽 늘어선 어두컴컴한 곳으로 들어서요. 이곳에도 아저씨가 있던 곳처럼 수 백 마리의 개들이 좁은 철장에 갇혀 있습니다.
“어, 누구세요?”
“엄마, 저기 봐요. 어떤 개가 밖에 있어요.”
“웬 개가 제 발로 이곳에 들어왔데?”
개들이 모두 누렁아빠를 발견하곤 한 마디씩 내뱉어요. 마당 건너편에서 일을 보던 인간은 갑자기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들이 이상합니다.
“왜 이리 시끄러워?”
인간이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고는 손에 끼고 있던 고무장갑을 벗기 시작해요.
누렁아빠가 철장 끝까지 다다랐지만 가족은 보이지 않습니다. 역시 이곳엔 없는 걸까요?
“이봐 형씨, 누굴 찾나?”
그때 철장 안에 앉아 누렁아빠를 관찰하던 삐쩍 마른 개가 물어요. 개의 다리는 철장의 철사 줄 사이로 빠져있어요.
“가족, 가족을 찾고 있어.”
“그 가족이 여기 살고 있어?”
“그건 아니고, 다른 개 농장이었네만 혹시나 해서 이곳에..”
대답을 들은 마른 개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어젖힙니다.
“하하하하하, 다른 개 농장에 있던 개를 왜 여기서 찾나? 거기 있었다면 거기서 죽었겠지. 헛수고를 하고 있구만.”
그러자 정신없이 이리저리 둘러보던 누렁아빠의 고개가 푹 떨어집니다.
‘그래, 이곳에 있을 리가 없지... 저 개의 말이 맞아. 전부 헛수고일 뿐이야...’
풀이 잔뜩 죽어 돌아가려는 누렁아빠를 보고 개가 다시 말합니다.
“이 근방에 이것보단 조금 더 작은 개 농장이 하나 더 있어. 거긴 도살은 하지 않고 개들을 키우기만 하는데, 이 인간이란 작자가 희한한 게 밥은 꼬박 챙겨주면서 그 외의 것들은 일절 하지 않아. 인간들 말을 들어보니 그 뭐라더라... 호두? 호다? 아무튼 그곳을 이런 이름으로 부르던데. 여기저기 헛수고하며 다닐 생각이라면 하는 김에 거기도 한번 가보던가. 혹시 모르지, 가족이 도살장을 벗어나 어디 다른 곳에 다다랐을 수도 있고.”
“고맙네. 한번 가봐야겠어. 그런데, 자넨 어쩌다 여기 갇혀있는 건가?”
“나? 나도 그쪽처럼 가족 찾으러 헛수고하고 다니다가 엉뚱한데 붙잡혀서 여기 와 있는 거지. 난 인간 집에 살다 버려졌거든. 버린 주인 찾아다니다 눈떠보니 여기 아니겠나...”
“그랬구만...지구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하네 그래..”
마른 개는 누렁아저씨가 작게 내뱉는 말은 듣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나갑니다.
“그 호다인가 뭔가 하는 곳은 떠돌이 시절에 주인 찾으러 방황하다 잠깐 들렀던 곳인데 말이지, 여기서 오르막길로 죽 가다 보면 개들이 집도 없이 줄에 묶여있는 곳이 나와. 거기도 불쌍한 애들이 아주 많다고..”
마른 개가 오래간만에 이야기를 하는 게 즐거운지 철장사이로 빠진 발이 바닥에 고인 오물에 닿는 것도 모른 채 말합니다. 누렁아저씨는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 밖에서 기다릴 포레가 생각나 서둘러 떠나려 해요.
“고맙네. 밖에서 친구들이 기다려서 가봐야겠어. 어, 자네도 같이 가겠나? 내가 이 문을 열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누렁아저씨가 철장을 이리저리 살피며 말하지만 단단히 잠긴 철장 문을 열 방법은 없습니다.
“그냥 두어. 난 어차피 나가봤자 오래 못살아. 아무리 먹어도 잘 찌지 않는 체질 덕에 먹히지 않고 여직 이곳에 있지만 이젠 나도 그만하고 싶네. 살아있는 거 자체가 고통 아니겠나. 하하”
누렁아빠는 다 포기한 듯 말하는 마른 개를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마른 개의 빈 웃음소리가 허공에서 의미 없이 메아리쳐요. 그때 갑자기 문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옵니다.
“어, 이런. 주인이야!”
누렁아저씨는 당황해 이리저리 왔다 갔다를 반복합니다. 그런데 와플 바퀴가 좀 이상한지 아저씨는 빨리 움직이기가 좀 어렵다고 느껴요.
“어서 달려 도망가! 여긴 막다른 길이라 들어온 길로 나가는 수밖에 없어!”
마른 개가 소리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멀리 입구에서 들어오는 인간의 모습이 보여요!
“이쪽! 이쪽으로 숨어!”
누렁아저씨가 급히 마른 개가 가리킨 철장 옆 좁은 빈틈으로 숨어듭니다.
“왜 이리 시끄러워! 조용히 안 해!?”
인간이 긴 쇠막대를 들고 철장을 마구 두드리며 소리칩니다. 누렁아저씨는 비좁은 틈에 갇혀서야 와플바퀴가 이상한 이유를 깨닫습니다. 축축한 이곳 바닥에 와플바퀴가 흐물흐물해져 버린 거예요.
‘아니 바퀴가..! 이를 어쩐다!’
인간이 쇠막대를 질질 끌며 점점 누렁아저씨가 숨어있는 곳을 향해 다가옵니다.
그 시각.
포레와 고양이는 여전히 담벼락 아래에서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안 되겠어, 내가 들어가 봐야겠어!”
포레가 문 쪽으로 달려가려 하는데 담벼락 위에 앉아있던 고양이가 갑자기 자세를 한껏 낮추며 말합니다.
“잠깐!”
“왜?”
“인간이야. 이런, 큰일인데! 방금 아저씨가 들어간 곳으로 들어갔어!”
“뭐!!!”
포레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문으로 달려갑니다.
“야! 야!!”
고양이가 뒤에서 포레를 부르지만 포레는 열려있던 문으로 들어가고 말아요.
“아, 정말!”
인간이 들어간 곳을 따라 들어가는 포레를 보며 고양이도 더 생각하지 않고 담을 넘어 몰래 안으로 조용히 착지합니다.
*호더(hoarder)는 물건이나 동물을 지나치게 많이 모으는 사람을 뜻하며,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과하게 동물을 많이 키우는 사람을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