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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흔적이 말하는 과거

#13 라오디게아, 아프로디시아스

by 아샘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
지진으로 질병으로 전쟁으로....
하지만 작은 조각의 흔적이 남아 과거는 미래에게 말해 줄 수 있다.
우리, 이렇게 살았어....라고.





룸서비스 조식


이번 호텔은 조식을 룸으로 가져다주신다. 전형적인 튀르키예 아침식사에 과일이 추가되었다. 룸마다 테이블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하룻밤을 더 묵기로 하고, 주변 유적지를 다녀온다니 주인아저씨 또 친절하게 가는 순서와 가는 길까지 안내해 준다. 요즘 눈 때문에 산악도로로 가지 말라고. 밖에 나오니 차 앞유리가 성애로 가득하다. 고민 중, 아저씨가 더운물 한 사발 떠온다. 앞유리와 옆유리 뒷유리까지 말끔하게 해결해 준다. 세심한 관심은 늘 우리를 감동케 한다.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로마 유적 탐방으로


튀르키예 여행이라 하지 말고, 로마 유적 탐방이라고 바꿔야 할 것 같다. 시데, 안탈리아, 아스펜토스, 페르게, 히에라폴리스에 이어 오늘은 라오디게아, 아프로디시아스를 가 보기로 했다. 을씨년스런 겨울,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쓸쓸한 유적지 산책은 그런대로 운치가 있다. 하지만, 해가 난다면 최고의 유적지 산책으로 바뀐다. 오늘은 해가 난다. 알싸한 꽃샘추위 같은 그런 날씨 속에서 오늘 탐방하는 곳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아마도 대중교통이 쉽지 않아서일 것이다.





라오디게아


파묵칼레에서 20여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이미 이 지역에는 기원전 5500년 전부터 문명이 있었으며, 로마 시대에 와서 라오디게아는 ‘백성의 정의’란 뜻으로 수리아 왕 안티오쿠스 2세(Antiochus Ⅱ, B.C. 262-246년경)에 의해 건설되어 그의 아내 ‘라오디케’(Laodice)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도시라고 한다. 교통, 무역, 금융의 중심지며, 면직과 모직 산업이 발달했던 도시였고, 때문에 라오디게아는 재력이 풍부한 도시가 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이곳 사람들은 부족함을 몰랐고, A.D. 60년경에 발생한 대지진 때도 자력으로 피해를 복구할 정도로 재력이 탄탄했다고 한다. 이 도시는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큰 원형경기장과 두 개의 원형극장 4개의 목욕장과 5개의 아고라 5개의 분수대와 2개의 게이트 등을 가진 문화의 도시, 철학의 도시였다고. (라오디게아 유적지 안내문)


정문에 표시된 옛 도시의 지도를 보면 엄청난 규모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옛 도시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구입하고도 (우리는 뮤지엄패스 제시) 차로 조금 더 가서야 주차장에 차를 대고 유적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입장 시 차량을 탐지하기도 했다.


오늘의 라오디게아는 눈의 도시였다. 파란 하늘과 눈 속 평원에서 몇 개의 로마 기둥들이 눈에 띄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깔끔했고 아름다웠다. 하늘과 대리석의 색깔이 주는 대비가 이토록 완벽할 줄이야. 글을 쓸 때마다 아름답다는 표현 말고 더 좋은 표현은 없나 늘 고심한다.


비잔틴 게이트는 많이 부서져 있었다. 그 뒤로 난 열주를 따라 걸었다. 열주 옆 도로에는 하우스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벽돌들이 사각형으로 조밀하여 쌓여 있다가 부서진 모습이다. 이 속에서 로마 사람들이 살았었다. 라오디게아에서 가장 인상적인 유물이었다. 대부분 집들은 흔적이 없었는데, 이곳은 그 흔적이 꽤 많이 남아있다. 기록에 의하면 침실과 부엌, 접견실, 거실, 창고 등을 갖추고 있었다고.


받치고 있던 기둥들로 봐서 그 거대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신전이다. 신전을 받치고 있던 아래 기둥에 쓰여있는 로마 글자가 잘 남겨져 있었다. 글자를 해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아고라의 열주들과 아고라 출입문이었던 프로필론 역시 그저 기둥 들과 게이트의 잔해들 뿐이지만 이 광장에서 사람들은 회의를 하고 물건을 팔고 도시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논의했을 것이다. 보통의 로마 도시에 있는 흔적들을 거쳐 원형극장에 닿았다. 관객석만 온전히 복원되었다.



소아시아의 일곱 개 교회의 한 곳이 있었다는 라오디게아 교회터는 비교적 복원이 잘 되었다. 눈 때문에 출입금지가 되어 안쪽으로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바닥의 타일이 완벽했다.


나오는 길에 급수센터가 있었다는 표지판이 나왔다. 그 시대에 각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었다는 게 대단할 뿐이다. 거대한 도시였지만, 흔적만 남았을 뿐이지만, 눈 속의 도시로서 라오디게아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프로디시아스


아프로디시아스를 가 보기로 한 것은 원형극장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서 이다. 그런데 찾아보니 이곳은 유물들이 아주 잘 보존된 곳으로 유명했다. 근처에 대리석을 얻을 수 있는 채석광이 있어서 유명한 조각가들이 많았으며 심지어 근처로 수출까지 했다고 한다. 아프로디테 여신의 숭배는 아프로디시아스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시 이름이 아프로디시아스. 이 유적지는 앞서 방문했던 리오디게아에 비하면 비할 수 없이 단정하게 잘 정비하고 보존되었다는 느낌이다. 우선 박물관을 들렀다.


아프로디시아스 박물관


유적지에서 발견한 석상들과 부조들을 주로 보관해 두었다. 전시관 맨 앞에 둔 어부의 석상에 눈길이 간다. 대부분 신들이나 황제들의 모습이 많은데 이런 어부상은 처음이었다. 그 가치를 소중히 여겨서 이렇게 전시실 입구에 둔 것일까? 로마의 신과 당시 황제의 모습, 사람들의 헤어스타일과 의상들을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박물관은 작지만 내용도 충실했고 동선도 잘 짜여 있었고, 매우 잘 보존되었다.


박물관, 어부, 콘스타니토플 헤어스타일



아프로디시아스의 노예 출신 조일로스는 노예에서 해방된 후 아프로디시아스로 돌아와 많은 건축 프로젝트를 담당하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부조된 석상의 모습들 속에 조일로스가 있다.

조일로스 부조상



원형극장과 하드리안 목욕장 등에서 석상과 부조상들이 많이 발굴된 듯싶다.

잉크를 든 사람, 가면을 든 뮤즈, 아프로디테 여신상


'황제의 신전'을 의미하는 세바스테이온 건물은 통째로 재현된 것 같았다. 아프로디테와 황제들에게 헌정되었다는데, 그리스 신들과 신화 속 이야기 그리고 로마 황제들과 로마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이었다. 박물관 부스 하나 전체가 부조로 덮여 있었다.




아프로디시아스 유적지


박물관을 나와 실제 유적을 둘러보았다. 관람객들이 잘 관람할 수 있도록 도로도 정비되어 있고, 표지판도 잘 갖춰져 있고, 무엇보다 유적들의 보전상태가 상당히 좋았는데, 복원에 공을 들인 것 같았다.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스와는 달랐다. 마치 우리나라의 조각공원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테트라필론은 아프로디테의 성역으로 가는 기념비적인 관문이라고 한다. 1991년에 재건되었단다. 원형 경기장은 이제까지 본 것 중 가장 완벽한 타원으로 복원이 되었다. 감탄이 나왈 지경이었다.

테트라필론, 원형경기장


아프로디테 신전에서는 아프로디테상이 출토되었고, 주교 혹은 정부 고위직들의 공간이라는 비숍의 궁전과 하드리란 목욕장도 잘 복원되어 있다. 2세기에 지어진 공용 목욕장은 하드리아 황제에 헌정되었다고 한다. 늘 목욕장을 방문하면 신기할 뿐이다. 냉탕과 온탕 그리고 스포츠룸까지 갖춰진 공간, 로마인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완벽한 공간으로서 말이다.


비숍의 궁정, 하드리안 욕장, 아프로디테신전


이곳은 아고라도 완벽한 형태로 보존되었다. 이제껏 아고라가 이렇게 잘 복원된 곳은 없었다. 발굴된 아고라는 심지어 가운데에 풀이 있었다고 한다. 세상에 저렇게 넓은 풀이? 그곳에서 수영도 하고 회의도 하고 그랬나? 이 아고라는 하드리안 목욕장 옆에 있었으니, 물 공급은 함께 이뤄졌을 것이다.


소문대로 원형극장은 완벽했다. 일단, 무대가 있는 원형극장은 처음 보는 것 같다. ( 대부분의 경우, 무대를 복원하는 데 실패한 듯했었다. 아스펜도스의 경우도 오페라 상영을 위해 무대는 현대에 재건되었다고 했다 ) 극장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무대와 무대 앞 기둥들도 완벽했고 관객석에는 귀빈석도 따로 보였고, 황제가 앉았음직한 의자도 따로 있었다. 관객석 곳곳에는 기독교를 뜻하는 원형 모양의 새김 흔적들과 로마시대 사람의 새김 흔적도 발견되었다. (로마시대 것 맞겠지?)


로마를 둘러보면서 오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의 발달로 삶이 편안해졌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 살아가는 방식은 비슷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밖에 없다.


계급의 차이가 있었겠지만,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물은 중요했고, 아프면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듯 온천수를 찾아다녔고, 우리들이 종교를 찾아 기원하듯 그들도 신들에게 기도를 드렸고, 티브이 토론이며 신문방송에서 정치인에 대한 토론을 하듯 그들도 아고라에서 정치를 논했을 것이고,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듯 황제가 제국을 다스렸을 것이다.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 지진으로 질병으로 전쟁으로.... 하지만 작은 조각의 흔적이 남아 과거는 미래에게 말해줄 것이다. 우리, 이렇게 살았어....라고.


고대인이 사라진 것처럼, 현대의 우리는 어쩌면 기후위기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아프로디시아스 고대도시 모형을 통해 원형극장과 경기장보다도 큰 아고라의 대단한 규모를 보며 지극히 정치적이었을 로마인들을 상상한다.




2022년 1월 28일 아직 파묵칼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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