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셀축 토요시장, 에페스 박물관
에페스 박물관은 그 정점을 보는 것만 같았다.
전시관에는 그저 아르테미스 석상 2개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떨려왔다.
기원전부터 섬겨오던 풍요와 다산의 대모신을 이어온 아르테미스 신,
대모신의 가장 복잡하고 완성형의 모습이었다.
고대도시 에페스 유적지를 보기 위해 셀축으로 가는 길은 온통 오렌지 나무다. 우리나라에서도 매실나무 혹은 사과나무가 많은 지역을 지나게 되면 과수원에서 막 따온 열매들을 도로변에 놓고 판매하듯이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셀축으로 가는 길에큼지막한 오렌지 5개를 150리라에 샀다. 하나에 300원 꼴이다. 덤으로 하나를 더 주신다. 튀르키예는 지금 오렌지가 많이 나는 계절이다.
바로 토요장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걸어 나와 큰길을 건너니 바로 보인다. 도로변 가로수에는 오렌지향이 가득하다. 아무도 안 건너는(육교가 있어도, 횡단보도가 있어도 길 건너는 건 늘 맘대로, 아무 곳이나, 아무 때나... 가 이곳 튀르키예의 매너였으니까^^) 예쁜 육교를 건너 왁자지껄한 시장으로 향했다. 셀축 토요장은 우리나라의 지방에서 열리는 오일장, 황학동의 골동품 시장, 남대문시장의 옷가게, 가락동 청과물시장 등을 두루 합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 겨울에 온갖 종류의 과일들과 채소들이 가득하다. 셀축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장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공구들을 파는 노점상에서는 골동품이 많아서 사고 싶었으나 참았다. 시장이 흥미를 끄는 이유는 이곳 사람들이 뭘 먹고사는 지를 알 수 있어서다. 셀축 사람들은 우리랑 똑같이 감자와 오이와 당근과 토마토를 먹고, 우리랑 약간 다르게 여러 종류의 치즈와 온갖 종류의 절임 올리브들을 먹고살았다. 옷 가게는 우리랑 똑같이 속옷을 팔고, 양말을 팔고, 겨울이니 겨울잠바를 팔았다. 그리고 허기진 사람들을 위한 노점상과 카페들과 식당들이 즐비했다. 장터는 물건을 사고파는 셀축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우리 같은 구경꾼은 거의 없는 듯했다.
견과류 파는 곳에서 캐슈너트가 피스타치오와 마카다미아를 사고, 토스트를 구워 파는 노점에서 토스트랑 아이란을 먹는다. 막 구워진 토스트는 안에 몇 가지 야채와 치즈가 들어있는데, 아주 맛있었다. 터키음식은 달지 않아서 좋다. 아이란은 마시는 묽은 요구르트인데 단 맛이 하나도 없다.
에페스 박물관은 근처 에페스 고대도시에서 발굴된 유적과 유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1929년 설립되었고 몇 차례 증축과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모습으로 2014년에 오픈되었다.
지역별로 박물관을 방문할 때마다 다른 느낌을 얻고 있는 중이다. 앙카라에서는 아나톨리아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얻어 뿌듯했다. 코니아에서는 그 내용이나 깊이에 놀라면서도 전시관의 규모나 방식의 소박함에 정겨웠다. 그 뒤 시데와 아스펜도스, 페르게, 라오디게아, 아스펜도스를 거쳐 안탈리아에서는 정교하고 세련된 이 모든 고대 유적과 유물의 종합판을 만났고, 오늘 에페스 박물관은 그 정점을 본 것만 같다….
이곳에서도 로마시대 신들과 황제들을 만났다.
테라스하우스 소개와 그들의 생활
에페스의 중심 거리에 위치한 테라스하우스는 귀족들이 살던 집이었단다. 박물관에서는 이 테라스하우스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집의 중앙에 안뜰이 있어, 빛과 신선한 공기를 얻을 수 있게 설계되었으며, 2층과 3층까지 거실, 식당, 주방, 화장실, 욕실, 침실로 구성되어 있다. 화려한 분수 장식과 중앙난방 시스템에서 흐르는 냉온수도 갖추고 있었다. 대리석과 모자이크로 디자인되고, 벽에는 프레스코화가 장식되어 있었다. 가족의 위계를 무척 중요하게 여기던 이들은 아버지가 신성시되었고, 가정에서 교육이 시작되어 이후 연령이 지나면 체육관(짐나지움)에서 계속되었다. 출토된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그림과 동상이 이를 증명한다. 음악은 신의 발명품으로 여겨지고, 질병을 치료한다고 믿었다. 리라는 가장 중요한 악기였다. 포도, 무화과, 석류 등의 과일과 돼지고기, 새, 생선 등의 가축이 주요 음식이다. 또, 포도는 아주 중요해서 포도주를 만들었는데, 에페스 포도주가 아주 유명했다. 관리를 담당하는 남성들은 하루 중 특정 시간에는 아고라나 목욕탕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여했고 여성들은 섬유생산이 주요 직업이었다. 아이들은 주로 공 게임을 했고, 동전, 주사위 또는 뼈를 가지고 놀이를 했다……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철학자의 두상이 눈에 띈다.
로마시대의 의료기술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다.
로마시대 때 사람들이 아프면 어떻게 치료했는지를 상상하게 하는 물건들을 보고는 감탄이 나왔다. 매우 정교한 매스들과 송곳 같은 것들이 여러 종류였다. 상처치료로 사용되기도 하고, 간단한 시술용으로 사용했을 것 같은 도구들을 보면서 당시에도 의료를 위해 거기에 적합한 도구를 만들었다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졌다.
에페스의 시대별 화폐들
기원전 5세기, 2세기, 로마 황제 시대, 비잔틴 시대, 오스만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화폐에 대한 흐름을 볼 수 있었다. 기원전에는 벌과 사슴 등 동물의 형상을 주제로 이후 로마시대부터는 황제의 모습이 그리고 오스만 시대로 넘어오면 문자가 (아마도 코란의 글귀) 주제였다.
에페스를 상징하는 어머니 여신에 대한 유물들과 아르테미스 신전 모형
아나톨리아의 어머니신 키벨레는 풍요와 자연의 힘을 상징했다고 한다. 대모신은 계속해서 진화되어 석상으로 또 부조로 조각되었다. 이 대모신은 에페스에 와서 아르테미스로 불리며 신성시되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하나, 지금은 단지 열주 하나만 남아있다고. 박물관에는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아르테미스 석상
전시관에는 그저 아르테미스 석상 2개만 놓여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가슴이 떨려왔다. 기원전부터 섬겨오던 풍요와 다산의 대모신을 이어온 아르테미스 신, 대모신의 가장 복잡하고 완성형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찾아보니, 이후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이 대모신을 마리아에 빗대어 섬기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는 모양이다.
거대한 아르테미스 석상을 보는 순간 떨림이 느껴졌다. 떨림의 이유는 바로, 인류 신앙의 원형이 바로 이 대모신이 아니었나 싶어서다.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그렇고 인류가 이렇게 살아가는 근원은 인류의 탄생을 감당했던 여성이었다. 세상의 기원은 여성, 곧 대모신이었고 현대까지 그러한 신성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로마시대 때 널브러진 열주 기둥으로 만들었다는 아늑하고 포근한 이사베이 자미(모스크)도 인상적이었다.
내일은 드디어 에페스 고대도시를 방문하는 날이다. 튀르키예에서 꼭 둘러볼 세 곳을 꼽으라면 그 안에 넣을 수 있다.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그리고 에페스 고대도시. 오늘 박물관에서 가슴 떨리는 경험을 한 바로 그 고대도시 말이다.
2022년 1월 29일 셀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