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고대도시 에페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똑같이 풍요를 누릴 줄 알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여가와 문화생활을 향유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사랑했다.
에페스 고대도시에 가기 전에 들렀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여생을 보낸 곳이라고 한다. 44년경 박해를 피해 사도 요한과 에페스로 왔다는 이야기만 전해져 있을 뿐 실제로 어디서 보냈는지는 모르나 1878년 독일에 사는 어느 수녀님이 꿈속에서 하느님이 계시한 내용에 대해 책을 썼고 이를 근거로 발굴을 해보니 놀랍게도 책의 내용과 유사한 집의 형태가 있었다나. 당연히 분쟁이 생겼을 것인데, 이 집터를 교황청에서 공식화했단다. 분쟁은 끝났고, 예수님의 어머님이 마지막 여생을 보낸 곳이니 이곳은 성지다.
입구에 들어가면 예수님의 탄생을 보여주는 모형이 보이고, 세례가 진행되었던 십자가형 세례터가 있다. 다른 유적에서는 거의 사람이 없었는데, 이곳부터 방문객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줄을 선 사람들은 아마도 기독교인들 같았다. 마치 감격에 겨운 것처럼 교회 앞에서 사진도 찍고, 경건한 마음가짐을 다지는 것 같았다.
교회는 아주 작았다. 정원이 8명이라고 적혀있고,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다. 보통 성당의 모양이다. 성단이 있고, 중앙에는 성모님이 계시고, 작은 창에는 십자가 디자인이 되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경찰이 두 명이나 관람객(성지순례자)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교 성지답게 유럽인처럼 생긴 관람객이 단체로 왔고, 뮤지엄 패스가 적용되지 않아 입장료가 1인당 80리라에 주차료 25리라로 2명이 무려 185리라를 줘야 했다. 그런데, 이 입장료는 고스란히 셀축 시로 들어가고 성당에는 들어가지 않는단다. 그래서, 성당 앞 안내문에는 도네이션 해 달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이곳이 이슬람 국가라는 걸 실감케 했다.
에페스 고대도시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곳 역시 재밌는 스토리가 전해져 온다. 로마시대 기독교를 박해하던 시기 동굴로 피신하던 종교인들이 있었고, 황제는 이들 동굴 입구를 폐쇄해 버려, 이들은 잠이 들었단다. 그리고 어느 날 지진으로 입구가 열리고, 이들이 먹을거리를 구하러 시내로 내려와 시장에 가 보니 어느덧 200년이 지나 새로운 황제의 제위기간이 되었단다. 그리고, 이들은 생애 마지막도 이 동굴에 묻혔단다.
정말로 동굴이었다. 정말로 사람이 살았음직한 굴이다. 카파도키아에도 동굴 교회가 있었다 하고, 시데에도 동굴 교회가 보였으니, 이곳 역시 기독교인들이 동굴에서 살았음직 하고, 그렇게 스토리가 입혀졌을 터이다.
이래저래 초기 기독교인들은 참 많이 박해를 받았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고....
기대하던 에페스다. 물과 오렌지와 어제 셀축 시장에서 산 견과류를 가방에 넣음으로써 방문자로서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남문에서 출발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책에는 돌무쉬 정거장에서 내려 성모마리아 교회부터 들르는 코스를 안내했으나, 우리는 거꾸로 내려오는 코스를 정했다. 하지만, 우리는 북문까지 갔다가 다시 또 되돌아오는 수고를 하고야 말았다. 그. 만. 큼. 다시 또 보고 싶었다. 볼 곳이 너무나 많았다.
입장하고 나니 에페스의 역사에 대한 안내판이 보인다. 에페스 발굴 이야기, 고대의 에페스, 헬레니즘 시대의 에페스 , 로마시대의 에페스 그리고 비잔틴 시대의 에페스까지가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에페스의 역사와 발굴 이야기 등을 잘 요약해 둔 페이지를 여기 링크해 둔다.
에페스 고대도시의 주요 방문지들 중 인상적인 공간 몇 군데만 기록해 둔다.
불레우테리온 : 음악회나 공연 및 회의 장소로 쓰이기도 한 공간이라고. 작은 원형극장처럼 생겼다. 소규모의 공연과 대표자회의 등을 열었던 장소라고 한다.
프리 타니움 : 단지 기둥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지만, 공식행사가 열리던 도시 행정의 중심 건물이었다고. 두 개의 아르테미스 여신상이 이곳에서 발견되어 현재는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내가 어제 두근거리며 감동했던 바로 그 작품 말이다.
폴리오 분수와 물 궁전 : 폴리우스가 건립한 샘터라고 한다. 물을 관리하던 곳이었다고. 니케아상도 볼 수 있다.
인스크립션(비문) 뮤지엄 : 약 6,000개의 비문이 있다고. 신성모독(기원전 4세기 후반)에 대한 사형을 다루고 있고, 헬레니즘 시대의 시민권과 제국의 편지에 관한 내용도 들어 있단다. 이들 비문들을 해독하면 에페스 나아가 로마시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들어갈 수는 없었으나,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헤라클레스 게이트 : 이 게이트 이후부터는 귀족들만 드나들었단다. 폭이 좁았다. 수레가 들어올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쿠라테스 거리 : 대리석으로 멋있게 나 있는 길이다. 2000년 전의 길을 걷는다. 멀리 켈수스 도서관이 보인다.
트라야누스 샘 : 황제 트라야누스에 바친 샘물이라고. 이곳에서 신들과 왕족의 조각상이 발굴되어 에페수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다.
하드리아누스 신전
비교적 잘 발굴, 복원된 듯하다. 하드리아누스에게 바친 신전이라고. 정면에는 행운의 여신 티케가, 안쪽에는 메두사라고도 하고 꽃의 여신이라고도 하는 듯하다. 또한 부조상에는 에페스의 기원 전설이 새겨져 있다.
공동화장실
화장실 위로는 대규모 욕장이 그 위로는 분수대가 있었던 곳. 바로 그 물줄기를 이용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화장실. 그 앞에는 예쁜 분수대가 있었다. 로맨틱한 화장실 문화다.
유곽
소위 유흥장소라고 쓰여있다. 매춘업소로 추정된다고.... 그런데 건물이 꽤 큰 것 같다. 또 우스운 것은 바로 그 건너편에 도서관이 있었다. 아르카디언 거리에 표시된 발바닥이 바로 이 유곽을 소개하는 광고였고, 그 정도 발바닥 크기의 성인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켈수스 도서관
에페스의 상징이다. 셀수스라고도 부른다. 에페스에 오면 다들 사진 찍는 곳이다. 우리 또한 그 목적이 가장 크다. 이곳에는 수많은 양피지 서적이 있었다고 한다. 전성기 때는 약 1만 2000권을 보유했다고. 비교적 도서관 정면을 잘 복원했다. 각 기둥의 네 명의 여인은 지혜(소피아 sophia), 덕성(아르테 arte), 지능(에노이아 ennoia), 지식(에피스테메 episteme)을 상징한다고. 이 모든 진품들이 튀르키예가 아닌 오스트리아 박물관에 소장되었다니 아쉬울 뿐이다. 도서관 정문 안쪽으로도 둘러보았다. 벽면에 뭔가가 쓰여있는데 마치 도서류 분류표 같았다.
아고라 게이트와 남쪽 아고라
이 아고라 또한 거대하다. 광장 둘레로는 모두 상업지역이었다고. 로마의 규모는 매번 상상을 뛰어넘는다. 아니, 이렇게 넓게 상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고???
원형극장
이제까지의 고대도시 원형극장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예전 발견 당시 사진을 보니 그저 3-4개 단의 관객석뿐이었는데, 대대적인 복원공사였을 것 같다. 이 거대한 규모로 어떻게 복원했을까? 복원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아직도 높은 크레인이 옆에 있다. 공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걸까? 아니, 사실 복원은 끝이 없을 것 같다.
아르카디언 거리, 항구
항구까지 이어진 거리라고 한다. 500미터 길이에 폭 11미터의 넓은 거리다. 이 거리에 가로등이 있었단다. 와우! 전기도 없던 시절이다. 매번 횃불을 밝혔던 걸까? 이 도로 밑으로는 상하수도 관이 설치되어 있었단다. 그저, 감탄과 놀람의 연속일 뿐이다.
마리아 교회
북문 거의 끝에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교회터가 확 들어온다. 규모가 꽤 되었다. 제단이 있었고, 십자가가 새겨진 바위, 성수터 같은 것들이 남아있다. 꽤나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테라스 하우스 내부
귀족이 살던 하우스 내부가 발굴 복원되었다. 바닥에는 모자이크화가 벽은 프레스코화가 생생히 남아있었다. 입구로 들어서면 큰 회랑이 나오고 안으로 더 들어가면 사적인 공간이 펼쳐졌다. 거실과 주방과 침실이 있고, 목욕시설과 냉난방시설이 완벽히 갖춰진 곳이었단다. 바닥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타일이며, 곳곳에 배치된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며 눈 두는 곳 어디를 봐도 탄성이 나왔다.
테라스 하우스 발굴을 통해 무려 2,000년 전에 이렇게나 우아하게 살았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도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저 놀라움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의 과학기술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을 낮은 잣대로 평가하곤 한다. 삶의 방식도 단순하고 깊이가 없었을 거라고.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똑같이 풍요를 누릴 줄 알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여가와 문화생활을 향유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사랑했다.
이곳은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했는데, 뮤지엄 패스로 다 해결되었다. 이럴 때가 바로 뮤지엄 패스가 빛을 발할 때다.
고대도시를 보면서 고고학을 학문으로 연구했던 사람들과 복원에 동원된 노동자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어떻게 2000년 전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겠나?
에페스는 그냥 묻혀있었던 도시였다. 복원한 대리석, 벽돌들 위로는 흙이 그대로 덮혀져 있었다. 지진으로 무너진 후 그 위로 흙이 쌓여서 언덕을 이뤘던 곳, 바로 옆이 항구였다는데 2000년이 지나면서 바다는 멀어져 갔다. 복원을 위해 땅을 걷어낼 때도 1층 정도만 파는 것이 아니었다. 7-8층 정도의 깊이를 파내야 겨우 유적이 나왔다. 기계로 밀 수도 없다. 망가지면 안 되니까. 조심조심 삽으로 호미로 흙을 파내고 유적이나 유물들을 들어냈다. 그리고 조각난 유물들과 유적들의 윤곽을 맞추고, 스토리를 엮어내고 과학적으로 증명해 나갔다. 이 모든 일들은 20세기 전후부터 이뤄졌다. 2000년이 지나 태어난 후손들은 2000년 전의 시간을 되살려보려는 대 혁명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21세기를 사는 내가 그것을 관람할 수 있게 되었으니, 큰 행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차로 20분 정도 산을 따라 꼬불꼬불 가야 만날 수 있는 그리스풍의 산골마을이다. 돌길을 따라 오르막길을 걸어 다니며 구석구석 골목골목 예쁜 집들을 구경했다. 길 한가운데가 파여있다. 수로인 셈이다. 그저 무심한 듯보이지만 길 한가운데 물길을 만들기 위해 비 오는 날의 삶을 고민했을 고대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다. 하얀색 벽과 붉은 지붕이 대표적인 디자인이었다. 동네는 너무나 예뻤는데 글쎄, 꽤나 상업화된 것 같다. 입구는 완전히 상가로 가득 차 있다. 와인점 커피점 옷가게 기념품 가게 아이스크림가게 등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지나가면 호객행위를 너무 한다. 한국말로 인사하고 가게 안으로 유인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겠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돈을 벌어야 하니.
조용한 마을 산책을 하려면 조금 위로 힘들게 올라가야 한다. 그런 수고로움이 있어야, 쉬린제 다움을 마음에 담을 수 있다.
* 오늘 걸었던 걸음걸이는 무려 17,000보. 무지하게 운동을 하는데 이상하게 배가 나오고 있다. 이 나라 음식은 너무 맛있다! 여행의 목적 중 하나가 다이어트이기도 했는데, 다이어트는 한국 가서 해야 할 것 같다.
2022년 1월 30일 셀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