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프리에네, 밀레토스
고대 유적은 크고 웅장한 것만이 감흥을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작은 프리에네 원형극장이 내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그런 공연장이다.
단지 기둥 4개로도 이 신전의 규모와 그 매력이 차고 넘쳤다. 프리에네 사람들은 이 신전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이며, 항구에서 들어오는 외지인들도 이 신전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아담하지만 예쁜 호텔
우리가 묵은 호텔은 집을 개조했다. 우리는 침대 하나에 작은 책장 그리고 작은 테이블과 의자 하나가 있으며 침대가 거의 모든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조심조심 걸어야 하는 작은 방에 머물렀다. 그래도 무척 따뜻했고 더운물도 잘 나왔다. 샴푸와 바디 물비누가 큰 용기에 담겨 있어 환경에 도움이 되는 것 같은 마음이다. 이 작은 집은 루프탑이 있어 밤에는 그곳에 등이 켜져 있고 사람들은 거기서 커피며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우리는 루프탑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전망이 좋아, 첫날은 상쾌한 풍경을 둘째 날은 안개 자욱한 풍경을 마주했다.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에는 작은 화분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정성을 들인 덕분인지 작은 정원 같았다. 주인아저씨네는 작은 딸과 카피라는 순하고 예쁜 개가 함께 살았다.
유럽여행을 하면 주로 교회를 탐방하게 된다. 화려하고 웅장한 말끔한 교회를 말이다. 하지만, 튀르키예 여행은 주로 허물어진 건물들을 탐방하게 되는데,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어제 에페스에서도 다 허물어진 교회건물을 둘러보고 왔는데, 이곳 셀축에도 다 허물어진 교회가 있다. 하지만 이 교회들의 역사성과 그 묵직함은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다. 한 교회는 성 마리아를 기리고, 이곳은 성 요한을 기린다. 예수님이 살던 시기, 예수님을 낳으신 분과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 사도 요한을 기리는 교회라니... 그 교회가 유럽도 아니고, 바로 이곳 튀르키예에 있다. 기독교인들은 튀르키예로 성지순례를 와야 할 것 같다.
엊그제 본 이사베이 자미 바로 옆에 위치한 요한 교회는 언덕 위에 있어서, 걸어 올라가면 정문만 덩그러니 보인다. 하지만 진짜배기(^^)는 바로 입장료를 내고 그 정문을 통과해야 하는 법.
조금 더 걸으니, 거대한 교회터가 나오는데, 웬만한 유럽의 교회만큼 크기가 대단했다는 것이 상상되었다. 십자가 모형으로 보자면 긴 부분의 끝에 재단이 보였는데, 그 길이가 꽤 되었다. 그리고 왼쪽 날개쪽으로 재단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공간에 성수대(세례터?)와 보물이 놓여있는 방들이 또 폐허가 된 채 보존되고 있었다. 이곳의 바닥은 타일로 예쁘게 디자인되었고, 벽은 대리석으로 치장되었고, 원기둥도 대성당이라는 것을 상상할 만했다. 이 중 발굴되어 보존되는 어느 방 벽의 벽화가 남아있다. 제단으로 가는 중앙에는 요한의 무덤이 있다.
여전히 큰 돌이 무너져 있고, 대리석 파편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지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한 사도 요한을 기리는 이 교회는 아마도 당시 로마 기독교인들에게 크나큰 위로가 되었을 게 틀림없다. 아침 안개와 고요한 분위기 속에 이름 모를 개 한 마리와 함께 그렇게 튀르키예에서의 두 번째 교회 탐방도 인상적이었다.
프리에네와 밀레투스로 이동했다.
* 모든 도시명들은 영어식 발음이라 실제로 여행 중 구글맵으로 도시를 찾을 때 몇 단계를 거쳐야 할 때가 있다. 한글로 쳐 봐서 찾아지면 다행이고 그도 안되면 영어로 입력해 보고 그래도 안되면 앗, 이 발음일 것 같은데? 하면서 위치와 철자를 추적해 보아야 한다. 실제로 밀레투스는 밀레도라고 해야 찾아졌다.
위 도시들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로 현재는 세 곳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오늘은 이오니아라 불리는 세 도시들, 프리에네와 밀레투스, 디디마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40년 만의 파트너 친구가 안탈리아에 있다는 소식에 급하게 안탈리아로 다시 떠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ㅎㅎㅎ
입장료 12리라. 입장료의 가격대를 보면 대충 이곳이 얼마나 규모가 큰지 얼마나 발굴과 복원 및 관리가 잘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는 입장료로 정해지지 않았다. 이제까지 도시들 중에서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신전을 이곳에서 상상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프리에네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도시국가였다고 한다. 기원전 탄생한 도시. 페르시아, 알렉산더 이후 로마와 비잔틴의 영토로 계속 바뀐 도시. 원래는 항구도시였다고 하나, 토사가 계속 쌓여서 쇠락했다는 도시. 실제로 어제 본 곳도 그렇고 프리에네도 에게해가 가까운 곳이다. 하지만 실제로 가 보면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다. 2000년의 시간 동안 바다는 그렇게 메워졌던 것 같고, 항구도시로서의 위용도 사라져 갔다.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마주한 이정표와 그냥 막 널브러진 돌덩이들이 전부인 것 같았다. 일단은 원형극장에 가 보기로 했다. 어느 고대도시나 원형극장은 늘 잘 복원해 놓으니까. 프리에네 원형극장은 아주 작았다. 이제까지의 원형극장 중 가장 규모가 작아 보였다. 이 작은 원형극장도 복원해 놓은 거겠지만,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듯 고풍스럽다. 무대는 아주 작았는데, 관객석 맨 앞에 귀족들을 위한 객석이 둥글게 놓여 있는 것이 특이했다. 이곳을 다스린 지체 높은 분의 자리였겠다. 재단도 놓여 있는데, 디오니소스 재단이라고. 무대는 거의 사라졌고, 기둥만 남았지만 대충 그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었다.
다른 원형극장에서는 관객석이 꽤나 규모가 컸고, 큰 대리석들을 원형으로 둘러놓았다는 것만 기억에 남는데, 이곳은 관객석도 특이했다. 두 사람 정도 넉넉히 앉을 규모의 대리석 의자 옆으로 길고 좁게 앞으로 나온 대리석으로 구분이 지어져 있다. 모든 좌석이 그랬다. 그 좁은 대리석 앞 쪽으로는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아마도 이 구멍은 등을 놓는 곳이 아니었을까? ( 나 혼자 추측....) 그랬다면 참으로 환상적인 저녁 공연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유적은 크고 웅장한 것만이 감흥을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작은 프리에네 원형극장은 소박해서 좋았다. 너무 화려하지 않아서 좋았다. 내게는 아마도 가장 기억에 남는 그런 공연장이 될 것 같다.
원형극장 옆으로 조금 걸으면 거대한 신전 기둥이 보였다. 일단은 큰 건물부터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널브러진 돌 사이를 조심조심 (넘어지면 다치니까...ㅜ) 걸어가 보았다. 그리고는....
입. 을. 다. 물. 지. 못했다.
기둥 4개는 아테네 신전을 받치고 있었다고 상상해야 했다. 기둥에는 홈이 파여 있다. 톱니바퀴처럼 파인 원기둥 9개 정도를 쌓아놓은 기둥 하나. 그 작은 단위의 기둥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 신전 뒤로는 믿기 힘들 만큼 거대한 바위산이 당당하게 서 있다. 그리고 신전에서 앞을 바라보면 끝없이 평야가 펼쳐져 있다. 예전에는 바다가 보였겠지.
단지 기둥 4개로도 이 신전의 규모와 그 매력이 차고 넘쳤다. 프리에네 사람들은 이 신전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이며, 항구에서 들어오는 외지인들도 이 신전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기둥들은 가운데 구멍이 있었고, 어떤 바위는 또 정교하게 깎여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당시에 신전을 만들던 기술력을 보여주는 것 같다. 발굴자료 표지판 옆에 보면 좀 더 깊이 파인 공간이 보였는데, 현재 위치는 1층이 아니고 1-2미터 정도 더 내려가야 기단이 나온다고 한다. 온전한 신전의 높이는 그러니까.... 가늠할 수 없다. 지금도 그 위용이 엄청난데, 만약 발굴을 더 하면 더 엄청날 것이란 소리다.
공연장 앞으로는 아고라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먹자골목도, 대 목욕장도, 교회도, 귀족이 묻혔던 묘지 건물도 ( 보통은 주변의 네크로폴리스에 묻히는데...) 있었다. 로마시대의 바닥을 걸어 내려오니 이스트 게이트가 나왔고, 게이트 바깥으로 아치형 묘지들까지 예사롭지 않았다.
그저, 어떤 곳인지 잠깐만 둘러보자고 왔던 고대도시, 프리에네는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아니 다시 튀르키예 땅을 밟아보고 다른 곳을 찾아내지 못하는 한 언제나 내 마음속의 고대도시로 남아있을 것만 같다.
밀레토스는 주차장에 차를 대자 마자 원형경기장을 마주한다. 따로 입장료를 받는 매대 건물도 없었다. 어떤 사람이 나와 우리의 뮤지엄 패스를 체크했다. 원형경기장만 둘러보기로 했다. 와!!! 이 원형경기장은 크기에서 압도한다. 3층 정도 되는 공간, 무척 넓다. 관객이 뭐 3만 명은 되지 않을까?? 1층과 2층으로 구분된 중간의 아치형 통로도 그대로 복원되었다.
무대 정면으로 작은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이 귀족석이었다고 한다. 원형극장 맨 위단까지 올라서 출구로 나오니 밀레토스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 역시 항구가 있었고 항만 목욕장, 항만 대 기념관, 남쪽 아고라, 북쪽 아고라, 스테디움, 님파에움, 귀족의 집들이 있었다. 밀레투스, 프리에네, 디디마의 유적을 보관한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이오니아 고대도시들을 마감했다.
그리고,
다시 안탈리아로 돌아와 파트너의 친구를 만났다....
2022년 1월 31일 다시 안탈리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