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앙카라 아느트카비르
여기는 앙카라. 무사히 왔다는 소리다.
운이 따랐고, 하느님이 기도를 들어주셨고,
우린 또 그에 보답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긴 거다.
나중에야 전해 들었는데,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가는 고속도로 폭설은 튀르키예 뉴스에도 크게 기사화되었다고 한다.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보낸 후,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앙카라의 날씨를 확인했다. 카파도키아와 코니아의 날씨도 확인했다. 카파도키아는 몇 날 며 칠 눈이다. 앙카라와 코니아 두 곳도 다 영하의 기온에 2-3일 후엔 또 눈이 내린다는 날씨예보다. 흑해 쪽 날씨를 확인했다. 역시 눈으로 가득했다. 아니면, 차라리 이스탄불 방향으로 돌아가서 부르사로 가 볼까? 구글맵으로 보니, 이스탄불 쪽 도로 상황은 어제 끔찍했던 곳까지, 앙카라로 가는 도로 사정은 전체의 절반 정도까지 빨간색이다.
휴게소에서 카운터 계산하는 분께 영어 하실 줄 아느냐 물어보니 못한다고 한다. 그냥, 포기하려 했는데 휴게소 손님들께 큰 소리로 물어서 영어 할 줄 아는 여자분을 소개해준다.
'어제 렌터카 여행 시작했는데 꼼짝없이 갇혔어요. 도로 상황이 어떤지 좀 아세요?'
'우리도 답이 없어요. 그냥 기다리고 있어요'
'혹시 반대쪽 상황은 어떤지 아세요?'
'반대쪽 상황보다는 앙카라 쪽이 더 낫다고 해요.' ( 정보 하나. )
7시가 다 되어갔으나 여전히 어둡다. 터키의 일출은 8시 20분은 되어야 해서, 해 뜰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어제저녁으로 먹었던 삼각 샌드위치를 또 먹었다. 같은 메뉴를 먹어도 할 수 없다. 살아야 하니까...(ㅜ)
주유하는 곳으로 차량 한 대가 들어왔다. 주유를 하고 차에 쌓인 눈을 청소하는 두 사람의 청년들이다. 도로 상황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그냥 운전할 만하다고 한다. ( 정보 둘. )
날이 밝아졌다. 최종 결정은 운전을 담당한 파트너가 결정하기로 했다. 앙카라까지 가기로 했다. 앙카라까지만 가고 카파도키아는 건너 뛰고 코니아로 가 보자고 했다. 사실, 방법도 없다. 앙카라를 가면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갈 수는 없고, 카파도키아를 못 간다면 그 다음 큰 도시 코니아로 가는 수밖에. 이 겨울 튀르키예 여행을 계획하면서 호기롭게 정했던 일정들이 처음부터 줄줄이 취소될 판이지만,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 앙카라로 출발이다.
두 번째 최악의 상황이 닥쳤다. 휴게소에서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것이 난코스였다. 눈이 너무 많이 쌓였다. 차가 가다가 붕 소리만 내고 전진이 안되더니 시동이 꺼진다. 다시 시동을 켜고 겨우 앞으로 조금씩 가고 있는데, 이번엔 앞에 가던 큰 트럭이 후진을 한단다. 식은땀이 흐른다. 우리 뒤에도 차가 따라왔다. 비상등을 켜고 조심스럽게 후진한다. 트럭은 후진후 우리 차 옆에 주차를 하고는 우리에게 앞으로 가라고 한다. 이제는 하늘에 운을 맡기며, 차가 멈추거나 미끌거리지 않기를 바라며, 성부와 성자와 성신님께 기도를 올리며 조심히 앞으로 갔다.
겨우 고속도로에 들어섰고, 오직 하나의 차선만 열린 고속도로 눈 길을 천천히 달렸다. 나중에 파트너가 말하길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운전이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 달리니 눈이 없다. 차량 앞유리가 엉망이다. 휴게소에 들렀다. 들른 김에 뭐 좀 먹을까? 미리 가격 지불하고 식사도 우리가 가져다 먹고 다 먹은 그릇 또 우리가 가져다 놓아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온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음식을 시키고 식사비를 지불하고, 메뉴를 우리가 가져가려 했다. 그랬더니 주문받은 점원이 먼저 식탁에 앉으란다.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준다. 다 먹고 나서, '네카다르?' 하고 요청하니, 영수증을 가져다준다. 또 잔돈도 가져다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레스토랑급 서비스가 이어진다. 아, 여기는 인건비가 싼 튀르키예였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인가 보다. 우리는 주문 조차도 주로 키오스크를 이용하지 않던가? 그러고 보니 예전에 유럽여행 때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먹으려다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했던 때가 떠올랐다. 이미 유럽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그랬고, 우리나라도 그런 선진국이 된 것이다. 튀르키예 휴게소에서 렌틸콩 수프 하나 먹으며 대접받는 기분이 들자, 지난밤의 모든 고난(?)이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무사히 왔다는 소리다. 운이 따랐고, 하느님이 기도를 들어주셨고, 우린 또 그에 보답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긴 거다. 앙카라에 도착하고, 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예약해 두었던 '알바, 앙카라' 호텔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체크인하고, 샤워하고 짐 좀 정리하고 잠깐 쉬고 나니 3시가 넘었다. 오늘 일정은 호텔에서 아느트카비르까지 걸어서 산책하고 오는 것으로 정했다.
호텔이 앙카라 중심가에 있어 도시 분위기를 느끼기 좋았다. 마치 서울의 강남 같았다. 드디어 빵을 사 먹었다. 시미트와 팥앙금이 들어있는 빵이었다. 차이와 함께. 가격은 24리라. 한국돈으로 약 2,000원이니, 둘이 각각 천 원 정도를 들여 따뜻한 차이와 빵을 맛있게 먹은 것이다. "와, 시미트가 이렇게 맛있어?" 진심 시미트에 애정이 생긴다. 갑자기 튀르키예가 너무 좋아졌다.
아느트카비르에는 4시 조금 넘어 겨우 도착했다. 입구에 배낭을 맡기고, 잠시 언덕을 오르니 신전 같은 멋진 사각형 건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더 멋진 것은 그곳에서 사방에 펼쳐진 풍경이었다.
아느트카비르는 웅장한 무덤이라는 뜻이다.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은 1차 대전 이후 터키의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이끈 영웅이다. 오스만 제국 때까지 이어져 오던 1,300년 동안의 칼리프 제도를 탈피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교육제도 개편 및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며, 여성 선거권까지 부여했단다. 그래서 '아따튀르크(튀르키예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부여받았고, 그의 무덤은 앙카라의 상징이 되었다.
이슬람을 믿는 아랍의 여러 나라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자유로운 나라, 튀르키예 국민들은 정말로 그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아니, 나도 그에게 감사하고 싶다.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다니 말이다.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사태처럼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는 순간 인간의 자유가 억압된다는 것을 익히 보아왔으니 말이다. 우리나라로 보면 일제 강점기 중이었던 1923년에 위의 개혁정책을 주도했던 튀르키예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은 앞을 내다보는 선구자로 존경받아 마땅할 듯싶다.
지난 밤의 나의 호들갑스러움이 조금은 부끄러운 날이다. 이스탄불에 도착한 지 한 달은 된 것 같다.
2022년 1월 19일, 앙카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