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실레마을, 코니아 박물관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건물에,
딱히 관리인도 없어 보이는 건물에, 호모 사피엔스 탄생의 시간이 담겨있었다....
3성급 1인당 1만 원 정도의 호텔 조식은 아주 간단했다. 오이와 토마토 슬라이스, 에크멕(빵)은 우리나라 바게트 빵 같았고, 5-6종류의 발라먹을 것( 크림치즈, 체리 잼, 딸기잼, 버터, 뉴텔라 등)과 삶은 계란, 블랙 올리브 그리고 차이. 호텔 주인인 것 같은 프런트 담당 아저씨는 영어가 잘 안 되는 분이셨다. 대신 웃음이 많았다. 차이는 무한대로 주신다. 빵도 무한대로 먹을 수 있다. 고로, 아침식사는 절대로 부족하지 않다.
코니아에 온 목적은 저녁에 있기 때문에 낮에는 여분으로 얻은 시간인 것 마냥 여유롭게 즐기면 되었다. 차가 있기에 코니아의 이웃마을, 튀르키예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는 실레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진눈깨비가 날리기 시작했다. 실레마을은 마치 인도의 느낌을 풍겼다. 다 쓰러져가는 건물들 사이로 아기자기하게 차려놓은 상점이 늘어서 있는데, 각자 개성 있는 예쁜 카페들이었다. 집시 풍이 느껴지기도 했다.
실레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하맘이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벽돌로 만들어진 4개의 돔 안에 목욕탕이 있겠지. 조금 걷다 보니 자미( 모스크 )가 보였다. 문은 잠겨 있었다. 위로는 바위산이 넓게 펼쳐져 있는데, 중간중간 동굴이 보였다. 아마도 카파도키아의 동굴 도시도 이런 모습이겠지? 가지 못해 섭섭한 카파도키아를 상상해보았다. 마을 가운데로는 개울이 흐르는데 오늘은 얼었다. 진눈깨비가 걷는 걸 힘들게 하고 춥기도 했다. 뮤지엄을 방문하기로 했다. 전시관으로 다가가니 안에서 문을 열어준다. 고객은 우리뿐이었다.
실레마을의 처음과 끝, 실레마을이 코니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아주 알찬 공간이었다. 전시물을 구경하는데 직원이 박물관 안내서 한 권을 준다. 박물관장의 인사말과 박물관 소장품에 대한 역사와 내용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 책만 통독하면 실레마을 박사가 될 듯하다! 영문 버전이라 고맙긴 한데, 그걸 다 읽어내기가 쉽진 않다. 우리말로 된 리플릿도 사실은 자세히 안보잖아?
13세기 아나톨리아는 공동목욕탕, 공교육 기관, 상인들, 이슬람 성직자들, 교육자들의 성지였으며, 특히 알라딘 군주 시절 코니아는 셀주크 제국의 수도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이 몰려들었으며, 오스만 제국은 마드라사에서 시인과 예술인들을 양성했다. 이곳 실레마을에는 4개의 마드라사가 있었고, 초등교육기관의 역할을 했는데, 1882년에는 28개의 교육기관에 208명의 여학생과 325명의 남학생이 있었고, 이슬람인이 아닌 경우 3개의 교회학교에서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박물관내 실레마을 사람들의 라이프에 관한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보았다. 코니아가 오스만 제국 때의 수도였고, 실레 또한 그 주변 도시로서 주요 예술가와 시인들 그리고 과학자들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박물관 리플릿에 의하면 실레는 터키의 문화유적이 상당한 지역이며 기원전 7000-8000전부터 시작하여 로마 유적, 셀주크 유적, 오트만 유적 그리고 공화국 시대의 유적까지를 포함하고 있어 매우 중요한 곳이라 한다.
박물관에는 전통가옥의 모습, 기원전부터 내려오던 코니아와 실레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 관련된 사진들, 그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소개되었다. 예술인들과 기술자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세계적 수준의 기술로 아나톨리아가 전 세계 카펫 시장의 중심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터키는 섬유제품이 유명하다. 아주 작은 마을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깊은 역사를 품은 실레였다. 실레뮤지엄은 이러한 자부심을 담아 소장품도, 그 소개자료도 모두 공을 들였다.
마지막으로 실레마을에 있다는 아야엘레나(성 헬레나) 성당을 찾아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었다. 로마에 기독교를 국교로 정했던 콘스탄티누스 1세의 어머니가 엘레나였으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성지 순례 도중 코니아에 들러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확실히 성당에 들어오니 성화가 가득하다. 예수님과 성모마리아 그리고 제자들의 모습이다. 이슬람을 믿는 오스만 제국에서도 이렇게 온전히 성당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실레박물관에 소개되었던 비이슬람인들을 위한 아이들 교육기관으로 역할을 했다는 성당 중 하나가 바로 이 엘레나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성당 밖에는 실레 포토존이 있어,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사실 엘레나 성당을 찾아다닐 때부터 진눈깨비는 짙어졌고, 우산도 없었다. 몸이 쉴 곳이 필요했다. 근사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이미 사람들이 가득했다. 금방이라도 함박눈이 내릴 것 같은 어두운 날씨와는 달리 레스토랑 안은 경쾌하고 즐거웠다. 우리도 그들 틈에서 튀르키예의 전주 한정식 같은 전통식단으로 점심을 먹었다. 테이블 위에서는 더블 폿이 차이를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었다.
Stone Works Museum of Fine Minaret라고 했다. 모스크의 기둥을 수놓은 스톤 아트 작품이라 해야 할 것이다. 역시 박물관의 관람객은 우리와 학생들처럼 보이는 그룹이 전부였다. 유럽의 돌은 우리나라와 달리 대리석이 많다. 그래서 돌에 조각을 하거나 디자인을 하기가 적당했을 것이다. 미나레트는 모스크 건물에 세우는 기둥이니 당연히 이슬람 경전에 관한 내용이 조각되었을 것이고, 주로 아랍 글자들과 아라비안 문양이 주를 이뤘다. 천사 그림 정도가 그림의 형태이다. 이슬람에서 천사는 선행 혹은 도움을 뜻한다고 한다. 조각을 하기 전 데생처럼 그려진 돌조각도 있었는데, 역시 예술작품이 탄생하려면 사전에 연습이 필요하겠지.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구글맵을 켜고, 도심 가운데에서 좁은 골목을 한참을 걸어갔다. 그냥 상가건물처럼 생겨 지나칠 뻔한 건물이었다. 입장료도 없어 내심 별로 볼 것이 없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아무리 초라한 박물관이어도 코니아는 로마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원형이자, 셀주크 왕국의 수도 아니었던가? 그 작은 건물은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로마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석관이 즐비했고, 제대로 전시물로 등재하기도 전처럼 보이는 타일들이 벽에 그대로 눕혀져 있다. 아직 고증도 되지 않아 유물의 명칭도 부여되지 않은 것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들 모두 기원전후의 작품들이었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니 그저 놀람과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기원전 2000년 전으로 기록된 아시리아 시대의 돌 욕조는 지금 들어가 목욕을 해도 될 정도였고, 물 주둥이가 가냘픈 물병들이며, 작은 인장들 속의 무한한 그림들이며, 그들이 말하는 고대 유물은 적어도 기원전 7000-8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들이었다.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어머니상, 사람의 형상을 본뜬 물병, 어린 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들도 보였고, 화병과 화병 받침도 신기했고, 사람 모양의 항아리도 재미있었다. 유물들은 고대에서 비잔틴제국으로, 이어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시대를 아우르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건물에 딱히 관리인도 없어 보이는 건물에 호모 사피엔스 탄생 때부터의 시간이 담겨있었다....
저녁은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건물로 들어가 보았다. 이름은 "Maruf Türbeönü Lokantası"
혹시나 코니아가 가실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다른 식당도 몇 군데 가보았지만 이곳이 맛도, 분위기도, 가격도 좋았다. 오크라 수프와 탄디르 수프 그리고 치즈 에크맥 피데를 시켰다. 모두 만족스러웠다. 다만, 아이린은 시중에 파는 것을 주니 다른 음료를 시키면 좋을 것 같다. 후식으로 차이 혹은 커피를 무료로 제공해 준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메블라나 문화센터로 가야 한다.
2022년 1월 22일, 코니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