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메블라나 수피댄스 명상
의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요했고, 세마젠들은 겸손했고, 그들을 이끄는 선승들은 평화로웠고, 관중들은 그 거룩함에 숙연해졌다
세마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가장 완벽한 춤이다. 신의 춤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신을 만나 하나 되고자 하는 춤이다. 춤꾼은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던진다. 다만 신의 부름에 따라 몸과 영혼을 움직인다. 둥글게 둥글게 돌고 또 돈다.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자신의 영혼에 거룩한 신의 영접이 올 때까지 돌고 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2009. 서울신문
인간이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은 인간으로서 잘난체하지 않으려는 마음, 세상에 인간이 최고 존재가 아니라는 겸허함의 표현이라고 본다. 그런 시선으로 종교를 바라보게 되면 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들이 존경스럽다. 스님이 참선하는 모습이나 신부님이 철저하게 금욕하는 모습을 보면 공손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슬람의 메블라나 종파에서는 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으로 춤을 춘다. 춤이 곧 명상이자 기도다. 두 손을 공손하게 두 어깨에 마주대고 고개를 비스듬히 젖히고 하늘을 향해 한없이 돈다.
매주 토요일 오후 7시에 열리는 수피댄스(세마라고 불린다)을 보기 위해 우리는 메블라나 문화센터에 있었다. 드디어 25명의 세마젠(수피댄스를 추는 사람들)이 무대위로 공손하게 나오고, 음악에 맞추어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수행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세마의식의 중간 혹은 막바지에는 세마젠들이 이따금 신음 소리를 내기도 하고 숨가뿐 호흡소리가 나기도 했다. 아마도 명상에 깊이 몰두하면서 무심코 내뱉어지는 소리가 아닐까 한다.
튀르키예 고유 악기와 음악이 체육관을 꽉 채웠지만 의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요했고, 세마젠들은 겸손했고, 그들을 이끄는 선승들은 평화로웠고, 그들을 바라보는 관중들은 그 거룩함에 숙연해졌다. 세마젠의 스승이 되는 분이 먼저 걸어나와 신에게 경배하고 이어 세마젠들이 한 명씩 나와 공손하게 인사하고, 춤 추기 전 또 스승과 마주하여 인사하는 시간만 꽤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아마도 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그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은 아닐까?
댄스는 네 번 정도 반복되었고, 반복될 수록 세마젠들은 좀 더 신께 가까이 갔던 것 같다. 의식이 다 끝나자 세마젠들은 신께 마지막 경배를 드리고 춤추기 위해 벗어두었던 검은색 겉옷을 입고 조용히 퇴장했다.
메블라나 종단은 터키 코니아 지방을 중심으로 전세계 이슬람권에 퍼져 있는 이슬람 신비주의 교단이다. 이슬람 신비주의를 우리는 수피즘으로 부르고, 그 수도자들을 수피라 일컫는다. 13세기 잘랄레딘 루미(Jalaluddin Rumi: 1207~1273)라는 페르시아의 대철학자에 의해 창시된 이 종단은 불쌍한 이슬람 민중들에게 어렵고 경직된 코란의 말씀이 아닌 실천적 명상과 기도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글자를 아는 지식인들에게만 열려 있던 하나님의 진리가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이슬람 역사에서는 일종의 영성 혁명이었다. 루미는 종교적 관용과 깊은 인간의 사랑을 전한 인류의 대스승으로 그의 사상을 추종하는 공동체가 메블라나 종단이다. 이 종단은 특히 세마라는 회전춤을 통해 신과 합일하는 독특한 수피즘을 발전시켰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2009. 서울신문
남에게 친절하고 도움주기를 흐르는 물처럼 하라
연민과 사랑을 태양처럼 하라
남의 허물을 덮는 것을 밤처럼 하라
분노와 원망을 죽음처럼 하라
자신을 낮고 겸허하기를 땅처럼 하라
너그러움과 용서를 바다처럼 하라
있는 대로 보고, 보는 대로 행하라
메블라나 종파의 7가지 가르침이라 한다. 용서와 포용을 설파하는 수피즘. 나는 세마젠들의 수피댄스를 보며, 그들의 공손한 자세가 무척이나 와 닿았다. 자신을 낮추고 신에게 헌신하는 자세는 그들의 가르침인 용서와 포용과 맞닿아 있고, 세마를 보는 내내 그들처럼 나도 늘 낮추고 용서하고 포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한 일이다.
영상으로 잠깐만 소개한다.
역시나 새벽부터 코니아 전체가 눈 속에 들어가 있다. 새벽 6시쯤 창밖을 보니 이미 2-3cm 정도 눈이 쌓였고, 함박눈이 하염없이 온 하늘을 덮었다. 눈 속의 모스크와 메블라나 박물관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이럴 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이렇게 새벽부터 눈이 가득할 줄은 몰랐다.
부끄러운 일
잠시후 호텔 건너편 모스크 앞 수도가에서 4명의 여성들이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다. 막 깡충깡충 춤을 추며 뭔가 노래를 했다. 이윽고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잘 들어보니, 한국어였다! " 예수님....아멘...할렐루야...."라는 소리가 들렸다. 한국인 여성 4명이 모스크 앞에서 눈이 소복히 쌓인 그 한가운데서 새벽에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아, 부끄럽다. 한없이 경건하고 거룩한 전 날의 느낌이 또 다른 종교인들로 인해 사라져 버렸다. 자신들이 보기에 이단이라고 여기는 종교시설 앞에서 자신의 종교가 우위라는 그 태도도 문제지만, 그렇게 하려면 적어도 타국인에 대한 배려를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새벽에 그렇게 크게 소리치면 되나? 한, 40여분을 그렇게 노래하고 기도하더니 마지막 기도를 하고 되돌아갔다. 어디로 가는 지 잘 모르겠지만, 이후 10여분 뒤에 모스크에서 아침 첫 기도소리가 났다. 휴~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는 하루를 코니아에서 더 묵기로 했다. 해가 나자 드디어 제설차가 지나다니고, 버스가 다니고, 상가 주인들은 집 앞의 눈을 치웠다. 아무리 치워도 계속 눈이 내렸다. 이럴 때는 멈춤이 필요하다. 이럴 때 기도하고 싶다. 자연 앞에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기도하고 기다리는 일 밖에.
점심시간쯤 눈이 잠시 멈췄다. 아니, 아주 보슬하게 흩날린다. 시내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타일박물관에 들렀다. 터키식 옥색 타일들이 전시된 곳이었다. 그 곳은 카라타이 마드라사라고 불리는 학교건물이었다고 한다.
박물관내에는 건물의 구조와 마드라사의 역할 그리고 카라타이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소개되어 있다. 카라타이는 셀주크시대 고관을 담당했던 인물이며, 마드라사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마드라사는 그 시대 교육기관의 역할을 했다. 이 건물 내부가 오스만시대 타일들도 채워져 있다. 일부는 떨어져 나갔지만, 13세기 지어진 건물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 내부의 타일들이 여전히 완벽하게 빛나는 것 만으로도 박물관의 가치는 제법 큰 것 같다.
날도 춥고, 딱히 할 일이 없어 도시를 그냥 걸었다. 눈을 치우는 사람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로 얼음이 되어 미끌미끌한 도로를 뒤뚱뒤뚱 걸어다녔다. 알라딘 공원 안에서는 일요일 오후를 만끽하는 청년들과 가족들이 눈싸움을 했다.
코니아가 보수적인 동네인 것 같기는 하다. 물론 추워서이기도 하겠지만 여성들의 경우 머리를 드러낸 사람들을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 히잡을 쓰고 다녔다. 눈 길에서 눈싸움하고 노는 사람들도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여학생들도 눈싸움하고 놀고 싶을 텐데… 코니아 사람들은 앙카라 사람들만큼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지 않았다.
내일은,
날이 좋아서,
안탈리아로 가야하는데....
적어도 눈의 공포로 부터 벗어날 지역으로 얼른 가야 할 텐데....
기도해야겠다.
기도밖에 할 것이 없다.
2022년 1월 22일 ~ 23일, 코니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