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 기다려 얻은 샌드위치

# 8일 차, 도보 일주일차

by 아샘
우리나라의 보통의 패스트푸드점이라면
불가능한 일들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손님들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렸다가,
제 차례가 오면 원하는 샌드위치를 요구하고,
아저씨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정성껏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셨다.




이동 : Los Arcos --> Logrono



로스아르코스에서 로그로뇨까지는 너무나 지루한 길이었다.

오늘은 좀 긴 길을 걸어야 해서 아침 일찍 6시 50분에 출발했다.


걷다 보니 산솔이 보인다.

그리고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길 저 너머에 태양이 나오려고 했다.

붉은 하늘과 지평선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렇게 아름다운 새벽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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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솔에 도착해서, 첫 번째로 보이는 슈퍼에 들어갔다.

그 슈퍼에서는 일반 식품도 팔고, 한쪽 옆에선 보카디요(바게트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았다.

슈퍼아저씨께서는 바게트를 열심히 만드셨다.

나름 최선을 다하는 데 매우 느렸다.

우리는 계속 기다렸다.

내 뒤로도 5-6명이 아저씨의 보카디요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치즈가 좀 허접해 보이면 새로운 치즈를 꺼내, 정성껏 샌드위치 속에 담았다.

주문이 다 달랐지만, 그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셨다.

" 저는 치즈와 토마토만 넣어주세요. "

" 저는 치즈와 햄도 넣어 주세요. "

" 저는 이 바게트가 너무 커요 3분의 2만 주세요. "

요구사항도 많고, 사람도 많고…….

우리나라의 보통의 패스트푸드점이라면 불가능한 일들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손님들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렸다가, 제 차례가 오면 원하는 샌드위치를 요구하고,

아저씨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정성껏 샌드위치를 만드셨다.

내 앞에 불과 4명 정도의 손님이 있었는데, 거의 20분은 기다렸던 것 같다.

아저씨도 힘이 드시는지 바게트를 만들면서 한 숨을 쉬시며, 머리 위에 손을 얹기도 했다.

기다리는 손님들도 그 한숨이 이해가 된다는 듯 웃었다.




브리드를 또 만났다

어제 브리드에게 인연이 있으면 우린 또 만날 거라고 했는데,

우린 인연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오늘은 그녀에게 노란 리본을 주었다.

그녀는 무척 고마워했다.


햇볕만이 내리쬐는 길을,

샘도 거의 없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많이 힘들었다.

겨우, 겨우 도착했다.

아, 반가운 로그로뇨!

날아갈 듯했다.


너무 힘들어 걷는 중에 샹그리아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캐시가 한 턱을 쏘겠단다.

저녁을 먹기 전 로그로뇨 광장 카페에서 샹그리아를 마셨다.

필그림 메뉴는 늘 맛있다.

와인과 앙트레와 본식 그리고 후식까지 이어지는 필그림 메뉴가 10유로 안팎이다.

샹그리아가 약간 취기를 주었는데,

저녁을 먹으며 와인을 마시니 좀 더 취했다.

난 아이스크림을 쏘겠다고 했다.

오늘은 걷기 시작한 지 일주일 된 날이었다.

기념으로 조그만 세리머니를 하고 싶었다.


저녁 식사 후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로그로뇨의 밤거리를 쏘다녔고,

그렇게 도보 일주일을 스스로 대견해했다.




요즘 나는 도무지 아무 생각이 없다.

그저 걷는다.

생각하는 것이라곤,

내일 어디까지 갈까?

뭘 먹을까?


내 배낭에는

한 두 벌의 옷(겉옷과 속옷)과 세면도구, 노트와 책 한 권이 전부다.

그리고도 행복하다.


이렇게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신기하다.

내 생애 처음이다.


나는 늘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조차 어둡고 가난한 집안환경 때문에 어린 마음에도 고민을 한가득 짊어지고 살았다.

말을 잘 안 하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잘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마 이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대학에 가야 한다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지냈고,

대학에 가서는 어쭙잖은 사회변혁에 나도 발을 내딛고 싶다며 또 고민하는 청춘으로 지냈던 것 같다.


회사에 들어가서는 월급이 마약이라며 늘 스트레스에 절어서 살았고,

결혼을 해서는 회사 다니랴 아이 키우랴 정말 시간이라는 것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바빴다.


유능한 워킹맘이 되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대안교육과 대안적인 삶을 엿보았고,

결국 귀촌을 했다.




귀촌이 곧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인가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늘 고민과 생각이 많은 여자였고,

모험을 좋아한다고 여겼던 나는,


회사에서 전에 없던 여직원회를 꾸려 산후 휴가를 쓴 최초의 여사원인 것이 제법 자랑스러웠고,

그런 와중에 내가 살던 지역의 공동육아어린이집 설립 부모였다는 것도 뿌듯했고,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며 귀촌을 결정한 것 모두 부끄럽지 않았던 나는,


그런 치열함으로 귀촌생활을 또 하고 있었다.


대안학교 초등교사로 두 번째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는 또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아이디어도 많고, 잘하고 싶은 욕심도 많았다.


이런 나 자신이 좋았다.





어느 날 갑자기 거울에 비친 목주름이 유독 거슬렸다.

이렇게 앞으로만 달려도 괜찮은 건지 두려움이 생겼다.


그리고,

어쩌다 주어진 여유,

이렇게,

도보를 한다.


끝까지 완주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

내 다리가 허락하는 대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뭔가 큰 목표를 정하지 않기로 했다.

걸으면서 뭔가를 발견해 내면 좋고, 아니어도 좋다.


그리고 난 지금 정말로 아무 고민도, 아무 생각도 없다.

나의 걱정과 고민은 정말 단순한 것 뿐이다.

먹는 것과 자는 것 그리고 옷을 빠는 것.


그런데 참 많이 행복감을 느낀다.


함께 있는 사람들이 좋고, 걷는 길이 사랑스럽다.


난 스페인 까미노를 정말 사랑하게 된 것 같다.



2015년 8월 28일, 로그로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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