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차, 새로운 만남
서로의 국적을 확인하니, 체코 리퍼블릭이라고 한다.
순간 도미니크와 잔이 얼마나 좋아하던지.
어제부터 컨디션이 좋더니 오늘도 잘 걸은 것 같다.
잘 걷는다는 것은 내게는, 어깨가 더 이상 많이 아프지 않다는 뜻이다.
잠시잠깐 너무 어깨가 아파서 짐 맡기는 서비스를 이용할까도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참을 만하다.
캐시는 '진정한 순례자라면 자기 짐은 자기가 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나는 가끔 캐시가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그랬다. '사람마다 고유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라고.
'어떤 이들에게는 배낭 맡기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그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라면 그것 또한 인정해 줄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물론 힘들더라도 자기 배낭을 자기가 메고 걷는 것이 의미 있긴 하다'라고.
이런 캐시 앞에서 약한 소리를 할 수가 없다.
요즘은 잔이나 캐시나 나나 다들 각자 걷는 편이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그런데 어제부터 합류한 도미니크와 나탈리에와 함께 걸으면서 서로 잠시 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게 되었다.
나탈리에는 어제 도착한 알베르게에서 만났다.
나와 캐시와 잔과 도미니크가 각자의 베드에서 짐을 풀면서 저녁을 뭘 먹을까,
슈퍼는 열었을까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탈리에가 지금 모든 슈퍼가 문을 닫았고, 딱 한 군데 열었는데 원하면 같이 가 줄 수 있다고 씩씩하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서로의 국적을 확인하니, 체코 리퍼블릭이라고 한다.
순간 도미니크와 잔이 얼마나 좋아하던지.
사실, 까미노에는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사람들은 무척 드물었다.
오히려 한국인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동유럽국가라는 동질성과 소비에트유니온에서 독립한 나라라는 점이 이들을 왠지 모르게 친밀하게 만든 것 같았다.
도미니크와 나탈리에는 더구나 같은 나라였다가 독립했기 때문에 각자 자국어로 이야기를 나누어도 서로 소통이 된단다.
내가 지난번에 홍콩친구와 일본인친구를 만났을 때 왠지 모르게 서로에게 애정을 느꼈던 것 같은 그런 감정일 것이다.
나탈리에는 아직 공부중이다.
예술과 철학을 전공한단다.
나는 예술이라고 해서 그림인줄 알았더니, 예술사를 공부한단다.
나중에 교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교사 되기가 어렵냐고 물었더니 교사 되기는 쉬워도 좋은 교사 되기가 어렵지 않겠냐고 한다.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전에 잔에게 물었을 때 잔은 교사자격을 얻기가 쉽지 않다고 해서 그런 뜻으로 물은 건데 잘 전달이 되지 않았다. 어쨌건 참 야무진 학생이다.
카미노를 위해 준비도 많이 해왔고, 사진 찍기를 좋아해서 니콘 카메라도 들고 다닌다.
이곳 프로미스타는 생각보다 큰 도시이다.
지금은 자전거레이스가 열리고 이곳 바로 알베르게 앞을 지나는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와 멘트가 방송으로 나가고 있는 중이다.
날이 무척 좋다.
하늘은 푸르고, 햇볕은 따뜻하고…….
정말 축복받은 날씨 같다.
다만 어젯밤에 베드버그에 물린 것 같아 걱정이다.
침낭과 배낭 그리고 온갖 옷가지들을 말리고 있다.
잘 나아야 할 텐데…….
잔이 좀 더 심해서 약국에 가서 항히스타민제를 샀다.
나는 좀 더 참아보겠다고 했다.
가려움을 참고, 옷가지들을 소독하면 좀 낫지 않을까?
오늘 저녁도 아주 맛있었다.
나는 스페셜 샐러드와 라자냐 스피나치를 주문했는데 정말로 맛이 좋았다.
후식이 없어서 약간 아쉬웠는데, 잔이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
매일매일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오히려 살이 찌진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2015년 9월 5일, 프로미스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