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일상-2
우리 가족은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층짜리 주택에 살고 있다.
예를 들자면 못 말리는 짱구에 나오는 짱구네 집보다는 작고, 넓은 마당은 없으며 도라에몽에 나오는 진구네 집보다는 조금 신식인 집이다.
이런 집들이 스무 채 정도 모여서 주택가를 형성하고 있다.
(*주택회사에서 땅을 사들여 구획을 나누고 땅을 분양하는 방식. 分譲(ぶんじょう)주택지. 서양권에서는 subdivision으로 알고 있음)
주택가의 이름은 들을 때마다 촌스러워서 웃음이 피식 나오는 스마일 타운!
스마일 타운에 터를 잡고 집을 지은 지 올해로 십 년이 되었는데
우리도 물론이고 대부분의 이웃들이
짱구네 아빠가 갚느라 그토록 고생하는 35년 모기지론을 받아 집을 지어 이사를 왔다.
가족 구성원도 비슷해서 아이들의 나이도 고만고만하다.
십 년전 나의 큰 아이가 돌쟁이였고
초등학생들이 아침마다 두세 명 무리를 지어 학교를 가는 모습이 보였는데
지금은 삼십 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여 등교를 한다.
스마일 타운의 구석에 작은 놀이터가 하나 있는데 놀이터 바로 앞에 있는 집에 ‘키타노’라는 이름의 가족이 살고 있다.
내가 아는 보통의 일본 주부는 남의 시선을 의식해 부지런을 떨며 현관은 반짝하게 닦아 놓고
철마다 꽃도 갈아 심으며 빨래는 새벽에 널었다가 해 떨어지기 전에 걷어버리는데
키타노 부인은 그런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집 앞엔 이미 시들어버린 나무와, 지붕 밑으로 들여놓지 못해 녹이 슬어버린 자전거 몇 대가 나뒹굴고 있다.
발포주 캔이 한가득 들어 있는 재활용 봉투 여러 개와 창살 빠져버린 우산 한가득이 옆집과의 무릎 높이 담벼락 사이에 마구 끼워져 있다.
키타노네는 아이들이 많다.
다섯 명. 딸부잣집으로 딸이 네 명이고 막내가 아들이다.
키타노 부부는 아직 마흔 살이 채 되지 않았는데
그들의 첫째 딸이 십 년 전 내가 이사 왔을 때 그 세명의 초등학생 중 하나였으니 이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키타노 부부는 동네 슈퍼에서 곧잘 부부싸움도 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집으로 유명세가 있지만
스마일 타운의 그 어떤 가족보다도 서로를 아끼며 살부비고 살아가고 있는 가족인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오늘 해 질 무렵 놀이터에 간 내 딸아이를 부르러 갔다가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키타노네 첫째 딸과 마주쳤다.
마지막 모습을 보았던 게 작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 즈음, 어색한 화장과 계절과 맞지 않는 옷을 걸쳐 입
은 때 였다. 그따부터 몇 달이나 지났다고 이젠 어울리게 화장도 하고 허리까지 긴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은 모습이
흡사 티브이에 나오는 아리아나 그란데를 연상시켰다.
잠시 나와 목례를 한 우리 동네 아리아나 그란데는 집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키차이가 삼십 센티는 날듯한 훈남친구의 자전거에 올라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몇 초 안 되는 짧은 스침이었지만 난 키타노네 첫째 딸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기와 자신감을 읽었다.
연애를 막 시작하는 사람들의 설렘과 서로를 향한 작은 배려도 본 듯하다.
왠지 돈 내고 봐야 하는 청춘멜로드라마를 불법으로 봐버린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나도 함께 설레었다.
언제 이렇게 까지 자라 버린 걸까
시간의 흐름에 잠시 놀랐다가 흐뭇하게 엄마 미소가 피어났다.
부디 예쁘고 야무진 사랑을 하길 바라며
나의 스마일타운은 오늘도 역시 분주하고 밥 짓는 냄새가 풍기고 강아지들이 짖어댄다
여긴 아이들이 예쁘게 피어나고 있는 꽃자리이다.
사진-스마일 타운의 우리집 현관 (백엔샵에서 사온 크리스마스 리스가 너무나 작다. 내년엔 큼지막한것을 달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