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안에서

단편-1

by 새벽공기

부모 중 누군가 중병인데도 내 삶에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은 가족 중 누군가가 다 짊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우연히 본 누군가의 말 인용-


“요즘 암 다 걸려요, 나도 오 년 전에 간암 수술 했잖아, 옛날엔 술 겁나 좋아했는데, 이젠 술도 한 방울 안 마셔”


”어이고, 고생하셨네요. 이젠 그럼 완치되셨다는 거네요? “

그냥 눈 감고 자고 싶었지만 보기 드물게 친절하신 기사님이 감사해서 당신은 힘을 내어 대답했다.


”그렇지 오 년이면 완치라고 하더라고. 이제 치료법도 많아져서 괜찮아, 손님도 엄마 걱정 너무 말아요. 나도 일도 다 때려치우고 죽는 날만 받아놓은 사람처럼 살다가 지금 봐봐, 이렇게 택시 운전 하면서 잘 살잖아 “


엄마의 갑작스러운 입원소식에 손과 발과 또 입이 되어줘야 하는 당신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삼주에 한 번씩 다니는 중이다.


이번엔 패혈증이었다. 항암으로 부작용이 오는가 싶더니 대상포진에 걸렸고, 그게 대상포진인 줄 몰랐던 엄마는 또 항암을 하러 갔다. 담당 선생님에게 다리를 보여줬지만

아프지 않다는 엄마의 말만 믿고 또 주삿바늘을 꽂은 것이었다.


당신의 아빠는 당신의 성장 속도와 비슷하게 청력을 잃어갔다.

드문드문이라도 이어지던 말이 어눌해지는 속도도 당신이 콩나물시루 자라듯 쑥쑥 크는 것과 비례했다.


당신의 오빠는 대한민국 어디선가 잘 살고 있으면 다행일 사람이었다. 언젠가 경찰에서 전화가 오지 않을까 , 돈 갚으라 깡패가 찾아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다가도 일본까지 못 찾아오겠지 라며 안도의 숨을 쉬기도 했다.


평생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팔고 어묵을 팔고 각종 찌개와 볶음밥과 군만두를 팔아가며 먹고살던 당신의 엄마는 일 년 전 처음으로 반듯한 아파트를 마련했다. 그 집을 쓸고 닦고 일본에 있는 당신과 당신의 딸들이 놀러 오길, 사위가 와도 조금 당당할 수 있길 편하게 쉬다가 가기를 손녀들 방학날만 기다렸다.


어느 날부터 인지 배가 살살 아팠고 화장실을 가면 자꾸 피가 섞여 나왔다.

가게 문을 닫고 찾아간 병원에서 바로 입원하라는 말이 떨어졌고, 이 주간의 입원과 검사 끝에 눈을 뜨자 난소하나를 이미 적출당한 상태였다.


췌장암 4기- 복막전이, 난소전이 왼쪽난소 적출

원발암 췌장인지 난소인지 미정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당신의 아빠 대신 대신 겨우 정신을 차린 당신의 엄마에게 담당 간호사가 건네준 종이 몇 장에서 겨우 눈에 들어온 글자 들이었다.


’띵동 떙똥 띵동댕동댕 띵동대동 띵동대동데엥~!!‘


’어? 엄만가? 이 시간에? 지금 출근 준비 중인 거 알면서 왜? ‘

사십 대 중반을 향하면서도 여전히 숱 많고 직모인 당신은 머리를 말리다 말고

전화를 받는다.

생각한다.

‘4기라는 게 안 좋다는 건지 초기가 4기라는 건지 1기가 초기였던가’

뭐 그런 것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일단 회사에 몸을 옮겨야 하기에 당신은 전화를 끊는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주보호자-배우자 의사소통 불가. (치매초기증상의심)

일본에 있는 차녀 당신의 이름

전화번호-국제전화


어딘가에 적혀 있던 엄마의 정보 였다.


치매초기증상 같다는 당신의 고령의 아빠가 항암 치료에 엄마를 데리고 가고 데리고 오고

당신은 교수님을 만날 때 시간을 맞춰 병원으로 향했고 또 바로 돌아오길 반복하던 일 년이었다.


당신이 한국을 떠난 이십 년 사이에

간호사는 선생님이라 불리고

의사 선생님은 교수님이라 불리게 되었다.

국밥집 이모님을 이모라고 정겹게 부르지 못하게 되었을 때와 비슷하게 낯설었지만

당신은 필사적으로 적응해 나갔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제쳐두고 교수님을 신 인 양 받들었다.

집에서 공항-비행기-버스-택시를 타며 이동시간만 여덟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가서 오분도 안 되는 시간만이라도 영접할 수 있는 교수님은 감사한 존재였다.


“피부가 무슨 오징어 껍질처럼 변해가

점점 손에 발에 힘이 안 들어가서 이제 혼자 걷지를 못하겠네”


이주, 삼주만에 만나는 엄마는 처음에는 잘 걷고 밥도 잘 먹고 동네 슈퍼까지 함께 나가더니 다음에 만났을 땐 보행기로 집안을 겨우 걸어 다녔다.

당신에게 물려 준 숱 많던 머리칼도 다 없어져 민머리에 눈썹까지 없어진 엄마는 이젠 거의 누워서 잠만 잔다.


당신은 차 안에서 비행기 안에서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쓰기도 했다.

엄마의 변화를, 간병의 힘듦을, 암이란 무서운 존재를 그러다 끝내 이만한 것도 감사하다고 썼다.


그렇게 또 몇달을 버텨냈다.


당신의 엄마는 70세 생일을 맞았다.

100세 인생이라 난리 들인데, 이제 겨우 70세가 된 엄마를 바라본다.


자는 엄마의 얼굴을 뒤로하고 새벽 일찌감치 일본 집에 돌아갈 전철을 타러 가던 길이었다.

밤새 기저귀를 갈고 섬망이 온 엄마를 상대하다 온몸에 힘이 빠져 전철역 엘리베이터를 택했다.


이제 곧 백세를 앞둔 것 같은 백발의 살아남은 자들이 빽빽한 엘리베이터 안.

숱 많은 검은 머리의 내가 작은 캐리어를 돌돌 굴리며 좁은 공간에 발을 들였다.


‘썅놈들 젊은것들은 계단 있는데 좁아터진 엘리베이터에 타고 지랄이야” 탈 거면 빨리 타지 뭘 꾸물거리고 우물쭈물을 해. 제일 싫어 느려 터진 것들 “


엘레에이터 제일 앞쪽에 서있던 백발의 땅딸막한 노인의 혀끝이 당신에게 닿았다.


당신도 몇 마디를 뱉어냈고 엘레베이터에서 탈출 했다.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눈앞이 아득히 멀어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영감탱이, 씨발 뭘 좋은 걸 처먹고 살았길래 아직도 살아있냐

너 같은 거 안 잡아가고 왜 우리 엄마한테 암덩어리를 준 건데

암이나 옮아라 미친 영감탱이야!!! “


다음날 아침부터 인터넷 뉴스에는 엘리베이터 패륜녀로 당신의 쓰러진 얼굴이 도배되었고 영상이 이곳저곳에 퍼져나갔다.

악플이 달리고 당신의 신상이 공개되고 있었다.


당신은 화가 나지 않았다.

서울 도시 한복판의 어느 병원의 병실에서 가만히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당신은 이제 좀 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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