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일상-1
매년 역대급이라는 지독한 더위.
우리는 올해도 무사히 녹아버리지 않고 살아남아 있다.
인간의 몸이 어처구니없게 연약한 것 같으면서도
신이 우리를 만드실 때 다 생각이 있으셨구나 싶기도 한 게
미친 더위와 맞서서도 용케 이겨낸다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일본의 여름은 습기와의 싸움이다.
같은 고온이라도 습하지 않으면 웬만큼 참을 만 한데
그야말로 숨이 턱턱 막히고 에어컨을 빵빵 틀며 준비하고 예쁘게 꾸며 나간다 해도
훅 들어오는 일본의 더위는 온몸과 얼굴을 순식간에 땀으로 젖어 버리게 만든다.
일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수건을 목에 걸치고 다니나 했더니
이젠 아침부터 야외 활동이라도 있는 날에는 페이스 타월과 큰 물통 한 개 정도는 가지고 다니는 게 당연시되어 버렸다.
"덥다 덥다, 아니, 벌써 10월 아니야? 미친 거 아니야 날씨?"
가족에게 이 말을 한 게 분명 며칠 전인데
일본 우리 집 거실에 '두둥' 코타츠 이불을 등장시키고 말았다.
계획 같아선 날 좋은 날 베란다에서 광합성 잔뜩 시켜 뽀송뽀송 햇빛 냄새를 가득 머금게 해 등장시킬 생각이었다만,
부카츠(중학교 동아리 활동-일본 보통의 공립 중학교는 공부와 동아리 활동의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내후년부터는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예정이지만, 보통 학교 수업은 5,6교시 오후 세시쯤 끝을 내고 매일 방과 후 두 시간씩 운동부면 각 종목의 운동을 문화부면 그림이나, 악기등을 연습한다. 주말에는 각종 시합으로 바쁘고 방학 때도 거의 매일 동아리 활동을 하러 학교에 나간다 )를 끝내고 해 질 녘 때쯤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양 볼이 추위에 빨개져 있는 걸 보자마자 무거운 엉덩이를 재빨리 일으켜 코타츠 이불을 내어 왔다.
마침 마트에서 사두었던 조기 귤(早出しみかん)-(알이 작고 아직 푸른빛을 띠고 있는 것들도 있지만 내 기준 가장 맛있다. 비싼 편 )이 몇 개 남아 있길래 놓아두니
'아, 겨울이 왔구나' 실감이 났다.
전기 코드를 꽂고 금세 따뜻해지는 이불속에서 자전거 통학으로 추위와 두 배는 더 싸워야 하는 아이도 몸을 녹이고, 복슬복슬한 털로 뒤덮인 개 주제에 추위를 잘 타는 반려견 모카도 어느새 코타츠 속으로 몸을 쏙 숨겼다.
우리 집은 13년 전 지은 주문 주택인데, 다행히 한국의 온돌과 같은 방식으로 거실 전체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유카단을(床暖) 설치한 집이다.
유카단으로 바닥을 따듯하게 해도 겨울에는 에어컨 히터를 작동해야 한국 집의 절반 정도의 따뜻함을 겨우 유지하는 정도이다.
그나마 우리 집은 지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고 창 유리가 이중창이라 다른 일본 집보다 훨씬 따뜻한 편이다.
어디선가 일본은 바깥보다 집 안이 더 춥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그건 사실이다. 한 겨울 일본에 사는 지인의 집에 놀러 갈 일이 생긴다면 발목을 감싸는 양말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꼭 챙기시라 하고 싶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결혼 전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드라마를 보며
코타츠를 알았고, 그에 대한 로망이 있던 나였지만
비교적 따뜻한 집이라 필요가 없었기에,
아이를 키우는 집이어서 이미 살림으로 맥시멀 한 집이었기에
코타츠를 사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몇 년 전 일본 정부가 전기세를 어마무시하게 올려버렸고
밤에는 히터 대신 유탐포를, 아침에는 유카단만 틀기로, 웬만해선 거실 에어컨은 틀지 말자. 뭐 그런 룰을 내 나름대로 정하고 살던 중.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코타츠를 사게 된 것이었다.
결론은.
진작 살걸 왜 이제야 샀나 싶을 정도로 좋다.
유카단을 틀지 않으니 가스 세도 절약이 되고,
무엇보다 온 가족이 코타츠에 모여 앉아서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스킨십을 계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10대 아이 둘과 18년 차 부부인 우리, 그리고 모카까지 옹기종기 앉거나 누워 숙제도 하고 핸드폰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그리고 나베요리까지 모든 걸 코타츠에서 해결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이도 끈끈해질 수밖에 없더란 말이다.
그러니 글을 읽는 누군가
코타츠 살까 말까 고민이 된다면
꼭 사세요!! 참 좋습니다.
그리고
이번 겨울도 얼어붙지 말고 또 살아남아야 합니다.
(사진은 어제 오후 세시. 요즘 읽고 있는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얼핏 술술 읽히는 문체 같지만 담고 있는 의미가 깊어 천천히 읽는 중.
퇴근하고 집에 와서 잠시 잠깐 가질 수 있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