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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애 Sep 18. 2021

변한 건 그를 보는 나였다

남편의 대장암 수술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행운을 맞이한다. 길에서 줍는 크고 작은 액수의 지폐, 네잎클로버를 보기 위해 허리를 굽혀 적의 총알을 피한 나폴레옹의 일화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 행운이 우리 부부에게는 2021년 4월에 찾아왔다. 2센티 크기의 대장암으로.


남편은 정말 우연히 대장에서 2센티 크기의 암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 조산 후 병원에 자주 다녔던 나때문에 그는 본의아니게 의사를 함께 자주 만나게 되었는데, ‘남편분은 어디 불편한 곳 없냐’ 는 의사의 물음에 나는 ‘평소 방귀를 자주 뀌고, 트림을 자주 한다. 소화를 잘 못시키는 것 같다’ 고 답했고, 이에 대한 처방으로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 패키지를 권유한 의사 덕분에 대장에서 용종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단순한 용종인 줄 알았던 2센티의 그것은 암이었고, 놀랄 겨를도 없이 수술날짜를 급히잡아 대장절제술을 하게 되었다. 호주에서 대장을 절제하게 되다니... 불쌍한 우리 신랑... 슬픔도 잠시, 나는 가장정신을 발휘하여 그의 든든한 보호자가 될 것을 다짐했다.  


떨리던 수술 당일, 우리는 서로가 초조함을 애써 감추는 것을 느꼈다. 나는 괜시리 수술복을 입은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남겼고, 공연히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의사, 간호사의 말을 삼십 평생 배운 영어를 총동원해 귀담아듣곤 그에게 통역해주었고, 그의 손에 떨리는 내 마음이 전해질까 두려워 손도 많이 잡아주지 않은채, 파란 눈의 간호사가 끄는 침대에 누운 그를 수술실로 보냈다. 마치 출근길 배웅하듯 ‘이따 봐’라는 자연스러운 인사와 함께.


나는 억겁 같은 시간을 몸소 체험하며 그를 기다렸다. 파란 부직포로 된 옷을 입고, 머리에는 할머니들이 파마할때 쓸 법한 비닐캡을 쓴 그의 모습이 마지막이 된다는 무서운 상상을 가까스레 떨쳐내며 그를 기다렸다. 종교도 없지만 그때서야 신을 찾고 싶지는 않았다. 괜히 신을 찾으면, 그의 신경을 거스르게되어 일을 그르칠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평소엔 찾지도 않으면서 이제야 자기를 찾으면 얼마나 괘씸할까?


어디까지 생각이 닿았을까. 전화벨소리에 놀라 시계를 보니 4시간 반이나 지나있었고, 간호사에게서 수술을 잘 마쳤다고 연락이 왔다. 회복실에서 ‘어디 아픈데는 없는지’ 물어보려는데, 통역이 필요해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간호사가 남편을 바꿔주었다.


“오빠?”

“웅...”


수화기 너머로 전해져오는 마취에서 덜 깬 그의 목소리. 처음 들어보는 어눌한 발음이 나를 목이 메이게 하고, 내 눈 앞을 흐리게했다.


“오빠, 간호사가 어디 아픈데는 없냐고 하네. 몸 좀 괜찮아?”

“…웅.”

“아이고... 잘했어... 너무 수고했어... 진짜 수고많았어...”

“허허...웅.”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간호사에겐 전화로는 통역에 어려움이 있으니 내가 회복실로 직접 가겠다고 했다. 수술에 대한 불안감만큼 입원 준비물을 가득 채운 캐리어를 끌고,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다시피했다. 회복실에 들어서서 보게 된 그의 모습에 내 심장은 발끝까지 내려앉았다가 다시 튀어올랐다. 여태까지 본 그의 얼굴 중 가장 나약한 모습이었다. 그가 늙고 병들었을 때의 모습을 스포일러 당한 듯이 뒷통수가 얼얼했다. 헝클어진 머리에 초점없는 눈, 거기에 달린 눈곱. 그리고 반쯤 열린 입술 사이로 나오는 늘어진 테이프같은 말투.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런 모습이어도 사랑해줄거야?’


이런 모습의 그가 말도 안 통하는 파란 눈의 의사, 간호사들에게 몸을 맡기곤 얼마나 불안했을지 나는 상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내가 우는 모습을 보면 환자 본인은 얼마나 무서울까. 내가 웃어주어야 ‘아, 내 모습이 지금 썩 나쁘지 않구나!’ 하고 느낄 것 같아 선물을 안겨준 것처럼 웃으려 애를 썼다.


시간이 조금 지나 마취가 풀리자 그가 말을 한 두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현애가 고생 많았어”

“현애~ 고생 많았어~”

“현애~ 오래기다렸지~”


차가운 수술실에서 대장을 절제하는 큰 일을 겪으면서 밖에서 기다릴 내 생각만 했구나. 아직 정신이 개운하지 않았던 그는 내 손을 꼭 쥔 채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나에게 고마움, 미안함을 표현했다. 마치 그렇게해야 마취에서 깨어날 수 있는 것처럼.


‘아픈 곳은 없냐, 춥진 않냐’ 는 질문에 그는 자꾸 영어로 대답을 했고, 나에게 윙크를 하고, 간호사들에겐 땡큐를 남발했다. 농담도 계속하면서 자꾸 나를 웃기려고 하기에 이제 슬슬 마취에서 깨어나는구나 싶어 반가웠다. 장난기가 가득한것이 꼭 9년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술에 취한 그 모습이었다. 정말 변함없는 사람. 2011년에 만난 그 모습 그대로인 사람. 정말 변한것은 사랑인가, 아니면 그를 보는 나인가.


그와의 10년동안 그의 취향은 더이상 ‘새로운 발견’이 아닌,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만 다가오게 되었고, 그의 다정함은 이제 잔소리가 되었다. 나 밖에 모르던 그 사람은 이제 친구도 없는 외톨이가 되었고, 내 이야기를 경청해주던 모습은 10년 후,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일 뿐이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투는 교묘하게 사람을 시켜먹는 능구렁이가 되었다. 사실 그는 변한게 없었다. 내가 그를 평가하기 시작했고, 내 기준이 변한거지.


오늘도 그의 도시락을 싸면서 생각해본다. 청춘남녀들의 사랑을 넘어서, 모든 생명체를 아우르는 ‘사랑’이란 ‘귀찮음을 무릅쓰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예를 들면 사랑하기 때문에 귀찮음을 무릅쓰고 퇴근 후 에너지를 소비해서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아침도 챙겨주고, 바쁜 시간 쪼개서 안부를 물어보고, 함께 산책을 나가고 하는 것이다. 대상이 비생물이어도 마찬가지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봉사활동, 취미활동에 참여하고, 정보를 이리저리 알아보고, 덕질하는 것이 사랑이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나를 바칠 수 있다면 사랑인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운동을 하고, 좋은 요리를 찾아가서 먹고, 좋은 책, 컨텐츠를 보는 것이 사랑이다. 결국 귀찮음을 무릅쓴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귀찮음에 대해 이윤을 계산하기 시작하는 사람만 변하는 것이다.




맹목적일 때 가장 순수하고

합리적일 때 가장 무미건조한 것,

사랑은 그렇게 이율배반적이다. <사랑의 팡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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